[이뉴스투데이 김영욱 기자]  윤석열 정부는 과학기술 경쟁 심화 속에서 국가 경쟁력을 육성하기 위해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 등을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서 민간의 투자 확대를 위한 세액공제 혜택도 제공 중이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6.3% 증가한 5조원을 지원한다.

이 중 첨단바이오, 인공지능, 사이버보안, 양자, 반도체, 이차전지, 우주 등을 7대 핵심분야로 지정, 투자를 대폭 확대한다. 2024년 국가 주요 R&D 예산을 감축하는데 정부가 주안점으로 둔 분야는 강화하는 것이다.

과학기술 연구 현장에서는 이런 정부 방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정부가 과학기술이 곧 국가 안보와 연관된다면서도 지원 분야를 취사선택하고 있는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연구는 없다는 목소리이다. 

R&D에서 가장 홀대받는 대표적 연구과제는 ‘감염병’이다. 2019년 ‘코로나19’가 등장하고 전 세계를 강타할 때 ‘넥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다수였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등 감염병은 인류역사와 동반됐는데 등장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감염병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해 방역 역량을 길러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멕 당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백신 개발에 나섰지만 줄줄이 실패·사업을 철수했다. 결국, 미국의 ‘화이자’와 ‘모더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감염병’을 괄시해서는 안된다.

윤석열 정부가 ‘기술패권 경쟁 시대’와 ‘과학 방역’을 강조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감염병 대응’에도 중점을 둬야했었다.

특히 전 정권에서 팬데믹 기간 내 성과를 거두기 위한 단기 과제들을 꾸준히 냈던 것을 감안해 ‘장기적 연구과제’를 늘려야 했다. 그러나 감감무소식이다. 이러니 ‘전 정권 흔적 지우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듣는 것이다.

물론, 기술패권 시대 속에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주도권 싸움 중인 ‘반도체’, ‘이차전지’, ‘모빌리티’도 중요하다. 한정된 국가 예산 내에서 주도권 싸움을 위해 투자를 늘린 것과 정부출연연구소들과 유관기관들이 한 분야를 나눠먹고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도 공감한다. 

그렇다면 단계적으로 개편하면서 국가 주요 R&D 예산을 깎지 않았으면 될 일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인건비와 경상비를 전년 수준으로 유지했으니 문제없다고 설명하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연구비를 삭감해 연구과제를 전면 검토해야 한다고 한다.

미래 대비에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어 진행 중인 과제를 철수할 순 없고, 전 과제 예산을 줄여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제 중 다소 먼 미래를 준비했던 것은 대폭, 근시일 내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소폭 줄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러자 경쟁력 있는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으며 연구기관들이 ‘돈이 되는’ 수탁과제에 중점을 둬 단기적인 결과물만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연구자들이 자율성을 해친다며 반대해온 연구과제중심 운영제도(PBS)도 확산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PBS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면 연구자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며 연구자 유치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어서다.

올 1월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카이스트, 유니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등 4대 과학기술원 예산도 삭감될 예정이다. 이 중 카이스트는 당시 글로벌 석학 유치로 이공계 전문 인재 육성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이른바 ‘스타 과학자’ 유치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결국 윤 정부의 '혁신'은 국가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요소가 넘쳐나는 것이다. 이는 IMF 속에서도 줄이지 않은 주요 R&D 예산을 감소시킨 데 대한 악순환, 연구 분야를 쇼핑한 결과물이 될 수 있다. 

조성경 1차관이 지난달 임명된 후 “우리 미래세대가 과학기술의 꿈을 키우고, 혁신의 자신감을 갖고, 온 열정을 쏟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 예산을 제대로 투입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 보자”고 말한 바 있다.

R&D 예산 삭감 발표 일주일이 지난 지금, 과학계는 이번 ‘혁신’을 보고 꿈을 키우고 자신감을 갖고 열정을 쏟겠다고 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오히려 ‘과학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존중' 높이어 귀중하게 대하다를 의미한다. 작년 출범 이후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미래를 수도 없이 강조했던 정부가 ‘존중이 없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과학계를 ‘이권 카르텔’이라며 그 어느 실사례도 소개하지 못한 것, 연구개발을 마치 쇼핑하듯 선택적인 모습을 보인 결과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국가 R&D를 쇼핑 리스트에 골라 담지 말고, 실체 없는 ‘카르텔’이라고 지정한 것을 반성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춰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과학계에서 사라져가는 존중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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