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공사 현장에서 마주하는 ‘안전제일’. 건설사가 전하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자 신뢰의 다짐인 이 문구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빛바랜 거짓말이 돼 버렸다. 이른바 ‘후진국형 사고’로 분류되는 부실시공으로 인한 각종 사고가 빈발하면서 우리 건설업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극도로 치달은 상태다. 이에 최근 발생한 주요 대형사고의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고 더 나은 건설현장 문화 조성을 위한 대책이 무엇인지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보강 작업을 위한 잭 서포트가 설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보강 작업을 위한 잭 서포트가 설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등 지난해부터 빈발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고를 놓고 공공발주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각종 사고·부실공사의 발주, 설계, 시행, 시공, 감리 전 단계에 이르는 건설업계의 해묵은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최근 LH가 발주한 주요 사업에서 전관 특혜를 비롯한 설계·감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공공부문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이한준 LH 사장이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수습의 첫 단추를 끼우는 등 전면 대응에 나섰지만, 부실시공의 여파는 더욱 확산하고 있다.

 


◇총체적 부실이 낳은 인재, LH 책임론 대두

[사진=연합뉴스, 그래픽=고선호 기자]
[사진=연합뉴스, 그래픽=고선호 기자]

LH는 지난달 7일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와 관련, 인천검단사업단에서 이 사장 주재로 긴급 현안회의를 열고 GS건설의 전면 재시공 결단을 적극 수용해 조속한 사고수습에 필요한 절차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LH는 부사장을 책임자로 입주민 지원 태스크포스(TF)도 신설했다.

인천 검단아파트는 LH가 발주한 공공분양 현장으로 기본설계 용역부터 품질관리까지 사업 전반적 부분의 총괄 관리자다.

무엇보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된 설계단계의 철근누락과 관련해 정부가 LH 책임을 지적한 터라 이에 대한 대응이 필연적인 상황이다.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발주처인 LH는 철근누락 문제가 있었던 설계서 검토 및 제안, 대안 제시 등에 시공사인 GS건설과 공동으로 관여한다.

설계서에 관한 변경사항 등 승인부분도 최종적으로 발주처의 역할인 것으로 파악된다.

사고가 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은 무량판 구조로 32개 기둥 모두에 전단보강근(철근)이 필요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기둥 15개에 철근을 적용하지 않은 설계서가 통과됐다. 무량판구조는 하중을 받쳐주는 수평 기둥 없이 위층 수평 수조인 슬래브를 수직 기둥이 직접 지탱하는 구조다.

앞서 GS건설은 검단아파트를 시공책임형 CM 방식으로 수주한 것은 맞지만 지하주차장 무량판구조 설계 등 기본구조 설계부분은 발주처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규철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5일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조사 결과발표 자리에서 “설계서는 발주처인 LH가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구조”라며 “어느 주체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현장 품질관리 확인 과정에서도 관리 주체인 LH의 실책이 드러났다.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르면 발주처는 시공사가 품질관리를 적절하게 하는지 연 1회 이상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LH는 이번 인천 검단아파트에서 레미콘 자재품질 등 현장 품질관리 확인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계단계와 품질관리 등 부분의 구체적 책임소재는 사고조사위의 최종 보고서와 관계 법령 검토 등을 거쳐야 분명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발주, 설계, 감리, 점검 등 전 과정에서 드러난 총체적 부실에 대한 책임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수면 위 떠오른 ‘관피아’ 의혹…국민 불신 고조

이번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 시민사회 일각에서 LH를 중심으로 한 ‘전관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단 아파트) 공사의 설계·감리를 맡은 업체가 LH 전관 영업업체“라며 “국토교통부는 설계·감리·시공업자를 비난만 할 뿐 원인으로 충분히 지목될 수 있는 전관 특혜 문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 설명에 따르면 LH 출신을 영입한 건설업체들이 그간 사업 수주 과정에서 혜택을 받은 것은 물론, LH가 이들의 부실한 업무 처리를 방치하면서 최근의 각종 부실시공 사태가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경실련 측은 전관 영입업체 부실 설계 봐주기, 전관 영입업체 부실 감리 봐주기, 공공사업 전관 영입업체 밀어주기 등에 대해 이날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LH 설계용역 수의계약과 건설사업관리용역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 과정에서 불공정한 평가가 벌어졌는지 확인하고 공정한 평가체계가 만들어지도록 시정을 강력히 권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2021년 경실련은 2015∼2020년 LH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 건설사업관리용역 경쟁입찰 290건에 대한 수주 현황 분석 결과 LH 전관 영입업체 47곳이 용역의 55.4%(297건), 계약 금액의 69.4%(6582억원)를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LH에서 퇴직하고 재취업한 곳에 '몰아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LH는 전관 특혜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를 적극 수용하고 비위행위가 발견되면 즉시 고발조치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이뤄진 국토부 차원의 종합점검에서 LH의 발주로 준공된 아파트 중 15개 단지의 지하주차장에 ‘전단보강근’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 역시 부실건설 병폐를 척결할 것을 천명함에 따라 LH의 입장은 더욱 위태로워진 상황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부실시공 사태와 관련, “돈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건설 이권 카르텔’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시사해 강도 높은 수위의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윤 정부가 관행으로 여겨져 오던 건설 산업의 고질적인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엄정한 행정 및 사법적 제재 방침이 예고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라며 아파트 부실 공사 자체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빈발하고 있는 부실시공 사태에 대해서도 설계·시공·감리 전 과정에 발생한 총체적 부실을 뿌리 뽑고 이 같은 사태를 키우고 방조한 ‘이권 카르텔’의 해체를 시사했다.

또한 LH 등 정부기관 출신의 요직자들이 이후 설계·감리업체에 취직해 건설업계 내부에서 부실감독·부실시공의 문제를 일으키는 일명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시키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전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전격 전수조사를 지시한 것도 설계·시공·사용승인까지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살피겠다는 의지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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