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선언한 24일 오전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수많은 화물차들이 멈춰 서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선언한 지난 24일 오전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수많은 화물차들이 멈춰 서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이뉴스투데이 박현·노해리·고선호·박예진 기자] 28일 정부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의 첫 협상 테이블이 결렬되면서 다시 한번 긴장과 전운이 드리워졌다. 산업계는 화물연대 총파업 닷새 째인 이날을 1차 분수령으로 보고, 협상 타결을 기대했으나 결국 파업 장기화의 길목에 서게 됐다. 오는 30일 2차 교섭과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등 변수 속에서 산업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시멘트 출하 9% 수준…건설현장 ‘셧 다운’ 가능성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시멘트 운송이 막히면서 레미콘과 건설업계 내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시멘트업계에서는 28일 비조합원 BTC 1000여 명을 통해 출하를 재개할 예정이었으나 비조합 직원의 출근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운송길은 여전히 막힌 상태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화물연대 집단 운송거부로 인해 주말 시멘트 출하량이 9000t으로 떨어졌다. 이는 기존 계획량인 10만3000t의 9% 수준으로 사실상 출하가 마비됐다.

운송이 막히자 이를 원료로 하는 레미콘 공장도 운영이 중단됐다. 지난 25일부터 삼표는 전 레미콘 공장에서 생산을 멈췄고, 유진기업은 수도권을 제외한 일부 지역 공장에서만 생산량을 줄여 운영했다.

건설현장에서는 3~7일분으로 비축해뒀던 건축자재 물량이 떨어지면서 ‘셧다운’에 임박했다. 지난달 어렵사리 재착공에 들어간 둔촌주공도 예상치 못한 파업에 골조작업 등을 멈추고 전선 설치 등 대체 작업을 진행하면서 공사를 이어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C건설사 관계자는 “이번 주가 넘어가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셧다운에 들어가게 될 현장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정부가 업무 재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화물연대가 정부의 지시를 따른다면 파업이 일어났겠느냐”고 토로했다.


◇“출하 앞당겨 급한 불 껐지만…” 화물차량 운행 절실


철강업계는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철강재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자 초비상이다. 지난 6월 파업 당시 8000억원 규모로 주요 업종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어 전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파업 첫날인 24일부터 철강제품 출하에 어려움을 겪은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태풍 침수 피해복구작업에 필요한 설비·기자재 반입과 폐기물 반출을 위해 현장 화물차량 운행이 절실한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사전에 마련한 대체 운송수단 등으로 대처 중이다.

현대제철도 이번 파업으로 인천·울산·포항·당진·순천 등 전국 5개 공장의 물량 대부분을 정상 출하하지 못했다. 철강재 출하 시기를 앞당겨 급한 불은 껐지만, 운송거부가 장기화될 경우 심각한 상황도 초래할 수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오늘 아침까지 32건의 애로사항이 접수됐다”면서 “납품 지연으로 인한 위약금 발생과 해외 바이어 거래선 단절이 16건으로 가장 많고, 집단운송거부로 인한 물류비 증가 10건, 원·부자재 반입 차질에 따른 생산중단이 6건으로 뒤를 잇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업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는 선박 건조 필수 자재인 후판과 기타 기자재 운송에 자체 화물차량을 투입하거나 해상운송 방안을 모색 중이다. 또 운송 일정·경로를 조정하며 파업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의 여파로 주유소 휘발유 공급에 차질이 생긴 28일 서울 한 주유소 가격 게시판에 휘발유 품절 문구가 부착되어 있다. 4대 정유사(SK,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차량 중 70~80%가 화물연대 조합원이어서 재고가 떨어진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

◇물류길 막히자 ‘텅텅’ 빈 주유소…에너지 대란 ‘목전’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정유 운송 차량도 멈춰 서면서 전국 주유소 재고 물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공급 가능한 물량이 1~2주 치에 불과한 상황으로, 파업 장기화 시 큰 혼란이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판매량에 따라 재고 부족이 예상되는 주유소를 대상으로 탱크로리를 우선 배차하는 등 파업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지만 국내 4대 정유사 차량 운전자 대부분이 화물연대 조합원이어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추가적인 공급난을 피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한편 대한송유관공사는 현재 전국 11개 저유소의 수송·저장 등에 대한 내부 비상 대응 조직을 운영, 비상시 신속하게 출하할 수 있도록 산업부·경찰청 및 정유업계와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등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정부도 화물연대 파업 이후 곧바로 정유업계 및 관련 협회 등과 비상 상황반을 구성해 운영 중에 있으며, 이를 통해 탱크로리 파업 참여 현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비롯, 정유공장·저유소 등 주요 거점별 입·출하 현황, 주유소 재고 등에 대한 실시간 관리에 나선 상태다.


◇유통 ‘동맥경화’에 중소기업계 내수·수출활로 ‘비상’


중소기업계는 유통에서부터 건자재, 제조, 서비스 등 전 부문에서 화물 대란에 따른 피해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앞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중고로 인한 절체절명의 경영악화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물량 해소는 물론, 해외 거래처 주문 소화도 불가능한 수준까지 물류의 동맥경화가 심화되면서 유통뿐만이 아닌, 제조단계로까지 추가적인 피해 확산이 우려된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는 화물연대 운송거부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 피해 중소기업에 대한 추가 지원 검토에 나선 상태지만 당장 수 천, 수 억 원대에 이르는 단기 매출 피해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여겨지면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존립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중소기업중앙회와 벤처기업협회 등 10개 중소기업 관련 단체는 입장문을 내고 “화물연대는 지난 6월 집단운송거부를 통해 이미 1조6000억원 규모의 물류 차질을 일으킨 바 있는데 불과 5개월 만에 또다시 국민경제에 극심한 손해를 끼치는 집단운송거부에 나서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화물연대가 집단운송거부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안전운임제는 원래 목적인 교통사고 예방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화물연대 총파업 이틀째인 25일 광주 서구 기아 광주공장에서 임시번호판을 단 완성차들이 적치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파업으로 완성차를 옮기는 카캐리어 운송이 멈춰서면서 기아 측은 대체인력을 고용해 개별 운송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로드탁송 ‘임시방편’…파업 장기화 땐 출고 대기 또 늘어나


완성차 업계는 생산 차량 적치와 개별 탁송에 애를 먹고 있어 후속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28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선 탁송차량(카캐리어) 운행이 멈춰 현대차 배송센터 직원들이 직접 차를 몰고 출고센터로 옮기는 ‘로드 탁송’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이날 조합원들과의 충돌을 우려해 경찰 에스코트를 요청, 순찰차와 경찰 오토바이가 화물차를 안내해 1000여 대를 직접 옮겼다. 현장에선 특별한 마찰은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 오토랜드 광주공장에서도 지난 25일부터 5000여 대를 로드 탁송하고 있다. 기아 측은 내부 직원 등은 앞으로도 하루 평균 생산량 2000대를 매일 같은 방식으로 출하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진 임시방편으로 생산 물량을 적치하고 개별 운송을 하는 등 문제가 없지만, 파업이 길어져 기존 출하장과 임시 보관 장소가 꽉 찰 경우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차량 출고 대기기간이 길어지고 있는데, 이번 파업까지 장기화할 경우 출고 시기는 더욱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위기경보  ‘심각’ 격상…업무개시명령 사상 첫 발동 시사


한편 28일 오후 2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부와 화물연대의 협상에서 국토부 측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 △그 이외 품목 확대 수용 불가 △조속한 현장 복귀 등의 입장을 전했으나, 화물연대 측은 △업무개시명령 철회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해 대화는 그대로 종료됐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오는 30일 세종청사에서 다시 만나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 

2차 협상과는 별개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도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해 업무개시명령을 심의·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육상화물 운송 분야 위기경보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 조정한 다음 조치로 보이며, 명령 이후에도 업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화물운송자격이 취소되거나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75%에 달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며, 물류 부문은 산업의 동맥과 같은 핵심 분야”라면서 “운송거부로 초래되는 산업 전반의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파업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은 지양하고, 정부와 화물연대 양측이 상생 차원에서 한발씩 물러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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