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고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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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새 정부 출범 후 기존 탄소중립·친환경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원자력 발전 확대를 골자로 한 체제 개편으로 변화가 일면서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유수 글로벌 수요기업을 중심으로 강화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인 ‘RE100’ 가입이 본격화됨에 따라 우리 대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면서 정부의 에너지 체제 개편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6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국내 제조기업의 RE100 참여 현황과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14.7%가 글로벌 수요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응답기업 가운데 대기업은 28.8%, 중견기업은 9.5%였으며, 글로벌 수요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은 시점과 관련, ‘2030년 이후’가 38.1%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면서 직접적인 RE100 가입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캠페인이다. 최근에는 미국 내 완성차 업계를 비롯해 애플, 구글, 혼다 등 유수 글로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RE100 캠페인 동참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22개 기업이 이미 RE100에 가입했으며, 삼성전자도 연내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만 바라보는 정부…탄소중립 실현 ‘먹구름’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은 ‘탈원전 폐기’와 ‘원전 생태계 복원’에 방점이 찍혔다.

특히 기존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 달성이 아닌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등 원전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탄소중립 이행에 나서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 사용량을 소폭 조정한 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줄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원전 비중이 32.8%까지 늘어나면 신재생에너지를 제치고 최대 전력원으로 자리하게 될 전망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최근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친환경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이달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 허들은 더욱 높아졌다. IRA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소비자와 청정에너지 제조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관련 기업들의 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전기차 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해외 수요기업들의 친환경 기조는 더욱 강화되고 있어 기업들의 입장이 난처해진 상황”이라며 “사실상 IRA가 허들규제로 작용할 수 있는데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는 관련 내용을 뒷받침해줄 만한 지원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RE100, 사실상 친환경 족쇄”

[사진=이뉴스투데이 DB]
[사진=이뉴스투데이 DB]

RE100은 명목상 구속력 없는 자발적 캠페인이지만, 이미 RE100을 달성한 기업이 다시 부품 등을 공급받는 협력회사에 RE100을 요구하는 등 사업 수주를 두고 이뤄지는 의무적 참여 방식이다.

실제 애플의 경우 2018년 4월 사무실과 데이터센터, 소매점 등에서의 RE100 달성을 계기로, 2030년까지 전 사업 활동에서 RE100 달성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SK그룹 7개사와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22개사가 RE100에 가입했다.

삼성은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 미비 등을 이유로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RE100 가입에 나서지 않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연내 가입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LG그룹은 주요 계열사가 잇따라 RE100 가입에 동참하고 있다. LG이노텍은 지난 7월 RE100에 합류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월 국내 배터리업체 중 처음으로 가입을 결정했다. LG전자도 최근 반기보고서를 통해 지난 6월 말 ‘RE100 이니셔티브 가입 신청 건’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에는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4개 계열사가 RE100 이니셔티브 가입을 승인받았으며, 향후 주요 사업장에 태양광 패널을 배치하는 등 직접적인 행보에 나설 계획이다.

SK는 그룹의 주도하에 2020년 국내 기업 최초로 RE100에 가입했다. 현재까지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C, SK실트론 등 8개사 계열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주요 기업들의 RE100 가입이 이어지고 있지만,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인한 인정 과정의 한계가 해결되지 못한 상황이다.

비용 측면에서의 부담도 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내 제조기업의 RE100 참여 현황과 정책과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RE100 참여에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비용 부담(35%)을 꼽았다. 이어 관련 제도 및 인프라 미흡(23.7%), 정보 부족(23.1%), 전문인력 부족(17.4%)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김녹영 대한상의 탄소중립센터장은 “현재 RE100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기업 협력사가 1만 개 이상으로 파악되는 만큼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증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지난달 RE100에 가입돼 있거나 가입하려는 국내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구체적인 정책 방향 수립에 대한 정부 입장을 피력했다.

장 차관은 “수출기업을 포함한 우리 기업들의 RE100 이행이 매우 중요해지지만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공급 여건이 외국에 비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라며 “장기적으로 RE100이 국제적 투자장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우리 기업이 원활하게 RE100을 이행하도록 구체적 정책 방향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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