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전한울 기자] 올해 초 생소한 한 단어에 대해 정계와 학계 관계자들이 모여 심도있게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의 주제는 ‘경제안보’.

분명 익숙한 두 단어의 결합이지만 막상 합치고 보니 생소하기 그지 없다.

정의에 대한 의견마저 아직 분분하다. 4차산업혁명과 기술패권경쟁으로 인해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대변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본래 경제학적 의미는 인간의 기본생활을 위한 경제기반을 보장하는 것이다. 개인의 경제·사회생활로 국한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제안보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한껏 팽창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글로벌 대전환과 경제안보’ 세미나에 모인 여러 학자들은 경제안보를 국가생존 이슈와 깊숙이 연관지었다.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유무형의 경제적 충격으로부터 국익을 방어하는 것이 현재 학계가 바라보는 경제안보다. 과거 지정학적 요소에 묶여있던 안보라는 개념이 국가경제·산업과 밀접하게 연계된 것이다.

이처럼 경제와 산업은 이제 외교 수단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특히 기술패권경쟁·자국보호주의 심화로 경쟁국과 ‘제로섬 게임’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기술·산업을 지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국익을 지키기 위한 전방위적인 외교전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최근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진행 중인 ‘편가르기식 외교전’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최근 중국의 급속한 성장세를 막기 위해 동아시아 반도체 강국인 △한국 △일본 △대만을 묶어 공급망을 재편하려 하고 있다. 더불어 반도체지원법인 ‘칩스 플러스’ 법안을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는 반도체 관련 투자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러나 저러나 목표는 하나다. 중국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배제한다는 것.

이번에도 우리나라는 ‘2강 체제’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미국 측 계획에 동참하자니 최대시장인 중국의 대규모 반발이 우려되고, 불참하자니 글로벌 공급망에서 낙오되는 ‘최악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국가 경제안보의 핵심인 IT산업 중에서도 수출 의존도가 최고 수준인 반도체 부문에서 말이다.

어느 쪽을 택하던 일정부분 피해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대한 적극적이고 균형 잡힌 외교전으로 업계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20조원 규모에 육박하면서 차세대 미래먹거리로 꼽히는 게임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당국이 현지사업 라이센스인 ‘판호’ 발급을 계속 미루면서 국내 업계에선 최대시장인 중국 진출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와 관련해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열린 게임업계 간담회에서 전방위적인 외교적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세부적인 논의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진핑 주석의 국빈방문과 같은 외교적 노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판호 문제를 해결하긴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점차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국제정세를 보면서 거울을 보듯 우리 정부의 대응상황을 살펴보게 된다.

아쉽게도 경제안보 대응을 위한 준비상황은 아직 미흡하다.

미국과 일본은 거버넌스와 법률 등 전방위적인 내부역량을 결집해 경제안보를 굳건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신설하면서 내부역량 결집에 나섰지만 법제와 거버넌스가 뒤따라오지 않는 형국이다.

행정력이 각 부처에 흩어져 컨트롤타워가 부재해서다. 우리나라 행정부처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히는 ‘부처간 칸막이’ 현상의 연장선인 셈이다. 산업과 외교간 융합전략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자명하다.

바야흐로 경제안보 시대다.

국제정세가 소용돌이로 빠지면서 더 이상 외교적 노력 없이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개천에서 용나기 힘들어진 만큼 과거의 찬란했던 ‘반도체 신화’ 또한 그저 신화일 뿐이다. 주변국과 긴밀한 연계와 협력 없이는 발전도 미래도 없다.

정체되면 낙오된다. 선도국보다 늦은 출발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해 계속 뒤처진다면 이는 국가 경제 정체요, 추락의 지름길이다. 

개인이 좋은 물건과 집을 얻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처럼 정부는 미래 기술·사업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활동으로 산업에 막힌 혈을 뚫어줘야 할 때다.

이것이 4차산업시대를 짊어질 정부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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