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퇴사 과정에서 ‘권고사직’ 처리를 해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직원들이 있다. 예전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렇게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실업급여 부정수급은 범죄에 해당해 형사처벌 및 행정처분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널리 알려지며 최근엔 사업주들이 이를 꺼려하는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왜 돈도 안 드는 것을 안해주냐?”면서 화를 내고 협박하는 직원들도 종종 있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가 시발점이 되어 퇴사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곤 한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직원을 괴롭히기 시작하면 결국엔 회사가 잃을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대응을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동안 직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라도 받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직원이 업무 과정에서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을 때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업주들이 많아 그 방법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일단 직원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또는 퇴사 과정에서 업무상 과실 또는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 회사는 원칙적으로 민법 제750조에 따라 불법행위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첫번째는 명백한 고의 또는 과실에 관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 직원이 재직하는 동안 자신과 친분관계가 있는 거래처와 계약을 주도하며 회사에 현저히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했고, 그로 인해 회사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직원이 재직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거래를 거듭할수록 손해가 쌓여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그 거래처와의 계약서, 직원이 해당 거래처와 친분관계에 있다는 다른 직원들의 진술서, 손해를 입증하기 위한 원가 자료, 타 거래처들과의 계약 샘플 등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변호사, 법무사 등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소송 진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단순한 실수에 불과하고, 결재라인에서도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오롯이 직원의 잘못이라고는 볼 수 없다. 반면에 대표자 또는 임원에 대한 보고를 누락했다거나 해당 거래내역을 조작했다는 등 정황은 소송에 유리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다음으로 회사가 입은 구체적인 손해액을 대략적으로 계산하고, 입증해낼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사례의 경우, 불리한 계약으로 인해 거래를 거듭할수록 적자가 났다면 그 적자의 폭이 바로 손해액이 될 수 있다. 반면에 특정 직원의 실수로 인해 회사의 매출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경우라면, 그 매출 하락의 원인이 다양하게 있을 수 있기에 확실한 손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피용자의 업무수행과 관련해 행해진 불법행위로 인해 직접 손해를 입었거나 피해자인 제3자에게 사용자로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 결과로 손해를 입게 된 경우에 사용자는 사업의 성격과 규모, 시설의 현황, 피용자의 업무내용과 근로조건 및 근무태도, 가해행위의 발생 원인과 성격, 가해행위의 예방이나 손실의 분산에 관한 사용자의 배려의 정도, 기타 제반 사정에 비춰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만 피용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7. 4. 27. 선고 2016다271226 판결 등 다수). 다만 단순히 업무가 지연됐다거나, 이미지가 손실됐다거나 하는 것은 명확한 손해로 보기 어렵다.

최근 거래처 회사의 직원이 퇴사 과정에서 회사 서버에 접속한 후 회사의 핵심 기술이 담긴 데이터를 추출해 자신의 개인 이메일로 전송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회사에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면 회사가 얼마의 피해를 입게될 것인지 추산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에 이 회사는 당장에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해당 직원을 불러 자신의 행위에 대한 확인서를 쓰도록 하고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이 발견되면 그에 따른 모든 손해를 배상할 것임을 약속받았다.

이처럼 당장의 손해가 불분명한 상황이라면 훗날의 분쟁을 대비해 필수적인 증거만 확보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오승준 변호사 약력>

법무법인 BHSN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외래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의료,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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