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명함을 주고받다 보면 명함이 여러 개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들은 2개 이상의 명함에 대표, 이사, 고문 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고용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으니 꼭 상근이 아니더라도 회사에 적(籍)을 두는 것은 가능하고, 고용주와 근로자가 협의만 잘 된다면 다른 여러 회사의 임·직원을 겸직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여러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종종 “근무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명함을 만들어줘도 되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와 조율 역할을 하게 될 사람에게 ‘공동대표’ 명함을 만들어주는 경우, 해외 영업을 위해 현지 브로커에게 ‘지사장’ 명함을 만들어주는 경우 등이 있다. 이럴 때 회사에 어떤 피해가 오지는 않을까?

먼저 “회사 직원도 아닌 사람이 명함을 만들어서 다니면 불법인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명시적인 고용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외부적으로 직함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법률에서 특별히 금지하지 않는다. 심지어 몰래 다른 회사의 명함을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에도 명함이 ‘사문서’에 해당하지 않기에 위조죄로 처벌하기 어렵다. 사기, 업무방해 등의 정황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할까.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명함과 직함을 부여함으로써 일종의 대리권을 수여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민법에 따르면,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 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그 제삼자간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심지어 권한을 넘는 행위를 한 경우에도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민법 제125조, 126조). 그 사람이 ‘이사’일 경우에는 회사의 책임이 더 명확하다.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기타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한 이사의 행위에 대하여는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상법 제395조).

예를 들어서, 회사의 ‘공동대표’ 명함을 사용하여 외부 투자자와 협상을 하던 A가 회사의 허락 없이 투자자에게 무언가 ‘약속’을 한다면, 회사는 영문도 모르고 약속을 이행하라는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그것이 대리권을 위임한 ‘본인’의 책임이다. 그리고 A가 자신의 임무와 관련하여 불법행위를 저질러 제3자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회사는 사용자로서의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민법 제756조).

A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A의 역할과 책임을 계약서를 통해 잘 규정해 놓지 않는다면, 훗날 근로자의 성과 관련한 분쟁을 겪게 될 수도 있다. A가 최저임금, 퇴직금 등을 주장하며 노동청에 진정을 넣는다면, 대표자가 직접 출석하여 여러 소명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끔 리스 차량을 제공했더니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반환하지 않는 경우,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경우 등에 대해 상담이 들어오기도 한다. A와 내용증명우편을 주고받거나 크고 작은 민·형사 분쟁까지 가게 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상황을 대비해, A의 역할과 책임 등에 관해 상세한 계약서를 작성해 놓을 것을 추천한다. 주로 컨설팅 계약서, 업무위탁계약서, 프리랜서 계약서 등을 활용하는데, 앞서 언급한 여러 케이스들을 고려해 필요한 내용을 미리 잘 규정해 놓는다면 문제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발생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승준 변호사 약력>

법무법인 BHSN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외래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의료,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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