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열 정치사회부장
안중열 정치사회부장

여야가 최근 정치뉴스를 도배했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협의체 가동과 본회의 개정안 상정(9월 27일)에는 합의했지만, 왜곡보도 차단과 함께 언론 자유 보장을 동시에 확보할 묘책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언론중재법을 손질, 허위‧조작 보도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과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의 실효성 제고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불리는 개정안은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토록 하고 있고요.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까지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은 있었는데 방향 설정에선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언론 보도 피해자나 조직, 왜곡 보도에 극도로 피로했던 국민의 공통 질문이기도 하지요.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언론의 자체 검열로 압박하고 공익 문제를 놓고 벌이는 쟁론까지 제한하고 있습니다. 언론사 경영진에게 징벌적 배상 책임이 커지면 의혹 제기에 앞서 과도한 자기검열과 데스크나 경영진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받는 기자가 벼랑끝으로 몰리게 되죠.

형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허위사실에 대해 형사 처벌도 억울한데,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추가됩니다. 형사법이나 행정법의 기본 룰을 무력화시키는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으니 위헌 소지까지 있습니다.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 조작 보도 등 고의나 의도와 함께 중과실이 있다고 추정될 경우’를 놓고 소송이 시작되면 기자가 직접 뉴스의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합니다. 고발이나 비판을 기초로 한 탐사보도를 준비하는 기자에겐 심리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죠.

고위중과실 추정에 걸려 특정 매체의 보도를 인용하는 이른바 ‘받아쓰기’ 역시 제한됩니다. 분명 촘촘하게 취재를 했음에도 정정 혹은 후속 보도가 이어지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소송이 걸리면 취재과정에서 흘린 땀과 노력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기자는 사실관계만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알 권리가 사라집니다. 해당 보도를 접하지 못한 국민에겐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슈는 해당 보도를 직접 접하지 못한 독자나 시청자에겐 남의 일이 되죠. 언론의 책무인 국민의 알 권리는커녕 언로의 순기능까지 막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당이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임원 보도에 대해 제한했던 소송도 여전히 논란이 논란거리입니다. 공직자라도 현직에게만 적용되는 만큼 사표를 낸 뒤나, 가족 혹은 보도 연루자가 얹제든 소를 제기할 수도 있는 맹점 때문이죠.

마지막 개정안에서 국정농단처럼 공익 보도에서 만큼은 예외조항으로 수정한 배경인데요. 하지만 향후 기자와 원고 사이에서 법리적으로 일어날 공익 해석 다툼까지 막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조항이 너무도 모호해서죠.

논란이 됐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민주당 내부나 청와대에서도 우려하고 있어 제외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특정 언론에 깊어진 불신을 고려한 정치권은 빈손으로 끝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UN의 수정촉구 서한과 청와대의 중재, 민주당 내 신중론 수용은 결국 언론중재법 협의체 구성을 이끌어냈는데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까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던 여당이 여론의 역풍을 의식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입니다.

여야 협의체가 언론중재법을 개정한 뒤 타율적으로 강제하는 소송전을 가정해봤습니다. 결론적으로 당장 책임 보도의 정착이라는 개정안 취지를 살릴 지엔 물음표가 남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지금도 원고가 반론권을 행사하지 않은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언론과 기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도에 대한 법원 판단 잣대도 충분히 엄격합니다. 고의성 혹은 중과실 여부는 기존 제도와 법에서 가짜뉴스를 충분히 걸러내고 있고요.

왜곡보도를 막기 위한 정치적‧국민적‧사회적인 숙의는 분명 필요합니다. ‘왜곡보도 차단’이라는 언론중재법 개정의 기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지금껏 자행해 왔던 책임 없는 보도행태도 분명 반성해야 하고요.

다만 여당이 강행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 방향이 표현의 자유 이상을 침범하고 언론을 옥죄는 도구가 돼선 곤란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진영간 갈등을 봉합하고 궁극적으론 언론개혁의 마중물이 돼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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