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4월부터 의료사고 피해구제와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되고, 지난 2016년 일부 케이스에 대한 강제 조정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았다는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보내는 안내문에는 “조정이 성립되는 경우에는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다”, “조정절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전문적인 의료감정 및 조정결정을 받아보시라”는 등의 안내가 기재돼 있지만, 정작 어떻게 답변서를 작성하고 대응해야 할지, 조정을 해보는 것이 좋을지 그냥 무시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럴 땐 어떤 것부터 준비하면 좋을까? 

분쟁절차가 시작됐음을 고지 받았다면, 먼저 조정신청서의 내용을 꼼꼼히 읽고 조정신청서에 기재돼 있는 환자가 누구인지, 어떤 시술을 받은 사람인지 체크하는 것이 첫 번째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진료기록부를 제출해야 하므로, 현재로부터 1~2달 안에 진료기록부를 복사해간 환자 중에 조정신청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보통 진료기록부를 복사하기 전에 의료사고 발생을 주장하거나,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치의가 기억 못하는 환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환자가 누구인지 파악했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의료과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환자에 대한 보상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체크해볼 필요성이 있다. 만약 의료진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라면 보다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아예 조정에 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도 전문가가 있어 잘못이 없는 의료진이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 잘못이 없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반면 오진, 시술 과정에서의 과실, 설명의무 위반 등 사소한 잘못 하나라도 인정되는 상황이라면 앞으로의 분쟁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갈지 신중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피부과 시술 중에 피부 괴사가 발생했고, 보형물 외에 별다른 원인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 소송까지 가기 전에 신속히 합의를 보고 피해를 보상해 주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소송까지 가더라도 어차피 배상은 해줘야 하며, 미리 조정이 성립한다면 형사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시술에 과실이 있는지, 환자에게 지금까지 충분한 보상을 해준 것인지, 환자가 요구하는 배상액이 타당한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럴 때에는 주변의 법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거나 다른 전문의들과 의견을 교환해 보는 것도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큰 방향이 정해지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절차에 응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에서는 환자가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등급 제1급에 해당하게 된 경우가 아니면 조정절차에 응할 의무가 없다. 피신청인(의료인)이 14일 이내에 조정절차에 응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조정신청이 기각된다. 

반면 조정절차에 응하기로 결정했다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을 하게 된다. 환자들은 감정인이 병원 편이라고 하고, 의사들은 감정인이 환자 편이라 불공정하다고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감정은 의외로 객관적인 편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환자 측이 요구하는 보상의 수준이 합리적이라면 조정 절차에 응하여 감정을 받아보고, 조정안까지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가 됐던지 간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기다리면 된다. 조정절차는 기각될 것이고, 이후 어떤 스텝을 밝을 것인지는 다시 환자의 몫이다. 환자 측에서는 민사소송을 통해 정식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고, 형사 고소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반면에 조정이 기각된 것을 보고 앞으로의 절차 진행을 포기할 수도 있다.

최근에 상담을 요청해온 A 성형외과 원장의 경우 우리 법무법인 소속의 전문가들이 아무리 검토해도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자의 단순 불만족이라 판단하고 위 절차들을 설명해준 후 A 원장으로 하여금 선택을 하도록 했다.

A 원장의 선택은 의외였다. A 원장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에 응하겠노라 했는데, 그 이유는 지속적인 병원 방문과 전화, 인터넷을 통한 비방이 지겨워 조정 절차를 통해 조금이라도 돈을 주고 사건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재원의 조정부도 A 원장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환자를 잘 타일러 상황을 이해시키려 했고, 결국 아주 작은 금액에 합의서를 작성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무조건 의료인들에게 불리한 결정만 내리는 기관은 아니므로, 분쟁이 시작됐다는 취지의 문서를 송달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제도의 취지를 이용하도록 하자.

 

 

<오승준 변호사 약력>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외래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의료,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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