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이 나날이 높아지며 정맥주사, 백내장 수술 등과 관련한 보험금 지급 거절 사례, 부당하게 검사지, 현미경 사진 등을 요구하는 경우 등 소규모 분쟁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부 보험사에서 병원을 상대로 ‘환자를 대위한 채권자 대위소송’ 또는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해 일선 병원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나 법을 조금 공부한 사람들이 보기에 이 소송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여 보험금을 수령한 사람은 환자인데, 엉뚱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보험사는 병원에 대한 소송요건을 갖추기 위해 채권자대위, 부당이득, 불법행위 등 여러 법이론을 차용하고 있는데 청구가 인용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먼저 채권자대위권(보험사가 환자에 대한 채권자로서 병원에 대한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을 대신 한다는 개념)의 성립에 관해서는 페인스크램블러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2018가단5177529 사건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위 판결에서는 아주 명쾌한 논리가 전개되었는데, 주요 부분을 인용하자면 “당사자가 치료자와의 신뢰관계에 기초해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에 의해 형성된 치료에 관한 법률관계에 보험사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입해 그의 결단에 의한 법률관계를 부정하고 직접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할 수 있게 허용한다면 이는 피대위자의 권리 행사를 부당하게 간섭하는 것이 돼 우리 사법질서의 근본원칙인 사적자치와 자기책임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험사의 청구를 각하하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환자가 병원에 내지 말아야 할 치료비를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환자와 병원 사이의 문제이므로 보험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험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보험사들은 병원이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으로 청구 원인을 변경하였다. “병원의 불법행위로 인해 환자가 보험사에 실손의료보험금을 청구하였으니, 그 상당액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과연 이런 논리가 성립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사기죄’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무장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 환수가 이루어지는 사례를 참고해 보면, 그 이면에 “사무장병원이 마치 정당하게 설립한 의료기관인 것처럼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기망하여 요양급여를 편취하였으므로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병원의 공단에 직접 요양급여를 청구해 돈을 받았으므로 사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사기죄를 구성하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국민건강보험법 조문에 따른 부당이득금 환수 처분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손보험의 경우 병원이 환자에 대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진료를 하면 그만이고 보험사와 직접 컨택할 일은 없다. 환자가 본인부담금이나 비급여진료비용을 납부한 후에 그 영수증을 가지고 보험금을 청구해 직접 보험금을 지급받기 때문에 병원이 보험사를 직접 기망할 여지는 거의 없는 것이다.

보험사는 특정 질병이 없는 환자를 마치 질병이 있는 것처럼 허위 진단을 했다거나 비급여진료비용을 높이 책정해 보험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전문가인 의사의 진단을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고 비급여진료비용 책정에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즉 보험사가 직접 병원을 상대로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를 하더라도 법원에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보험사가 실손보험과 관련하여 병원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각하되거나 기각될 확률이 높다. 개개의 사건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험사의 입장에서 억울하게 지급한 보험금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적어도 병원을 상대로 직접 배상을 구하는 소송에는 무리수가 있다는 말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사기’에 해당할 정도의 기망행위가 있었다거나 환자와 병원 간의 공모관계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부분은 보험사들에게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기에 보험사가 민사소송을 통해 확보하는 자료를 토대로 형사 고소를 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진단에 관한 자료를 확보하고 민사소송에 제출할 자료의 범위를 적절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실손보험과 관련해 보험사로부터 직접 소송이 제기되었다면 법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으니 크게 당황할 필요는 없겠지만 만연하게 대응할 경우에는 더 복잡한 사건에 연루될 수도 있으니 주변 법조인이나 전문가에게 상의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으시길 바란다. 

<오승준 변호사 약력>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외래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의료,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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