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을 운영하다 보면 시술에 효과가 없다며 치료비 환불을 요청하거나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환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특히 미용 목적의 비급여 시술을 위주로 하는 병·의원은 환자의 컴플레인에 수시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당 법무법인의 자문 거래처 중에 몇몇 곳은 의료진이 종종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해 변호사가 합의를 대신해 주곤 하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어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강남에서 안과를 운영하는 전문의 A 원장은 초등학생에게 드림렌즈를 처방해 주면서 다른 환자와 시력을 착오했다. 환자 측이 어지러움을 호소해 확인해 본 결과 A 원장이 드림렌즈 도수를 처방하는데 실수를 했음이 밝혀졌다. 이에 A 원장은 즉시 사과하고 다른 렌즈를 맞춰주겠다고 했으나 환자 측에서는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했다. 아이가 미국으로 수련회를 갈 수 없게 됐으니 1000만원의 배상금을 달라는 것이다.

환자 보호자 측의 논리는 이랬다. 아이가 당장 미국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렌즈가 없어서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련회 비용 상당과 위자료를 병원에서 배상해야 한단다. “안경을 쓰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날선 반응이 돌아왔다. 애가 절대 안경을 쓰고는 수련회를 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난리친 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하며 보호자는 눈물을 훔쳤다.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담동에 소재한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 보호자는 “안경을 쓰면 미국으로 갈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구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주장은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설립되기 전이었기에 이렇다 할 중재기관도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이 의료배상공제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사고 접수 신고를 해보자고 했지만, 그것도 귀찮다며 무조건 현금을 달라고 했다. 이럴 땐 어느 정도의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이 좋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합의금에 정해진 기준은 없다. 2019년을 기준으로 사람이 사망하였을 때 약 1억원 정도 위자료가 책정된다고 하지만, 실제 위자료를 정할 때에는 참작해야 할 사정이 너무 많다. 의료사건 판결문을 보면 원고들의 나이, 재산, 가족관계, 의료 사고의 경위 및 결과,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참작해 산정한다고 애매하게 기재해 놓을 뿐이다.

그렇다고 환자가 요구하는 금액이 모두 손해배상금으로 인정돼야 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손해배상금을 구성하는 항목은 기왕치료비, 향후치료비, 일실수익(장해가 발생한 경우), 개호비(개호가 필요한 경우), 위자료 등으로 구성되는데, 거기서 다시 한 번 의료진의 과실 정도에 따라 ‘책임제한’을 한다. 즉 재판까지 가게 되면 배상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제한적이므로 예상되는 판결 금액 언저리에서 합의를 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예를 들어 A 원장의 경우를 보면 렌즈에 효과가 없었으므로 치료비는 환불하고 앞으로 치료가 필요하거나 장애가 남는 것은 아니므로 위자료 정도만 배상해 주면 될 것이다. 아이가 미국으로 수련회를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은 아주 간접적인 손해인데 드림렌즈와 인과관계를 인정하긴 어렵다. 위자료를 산정할 때 이런 안타까운 사정이 있음을 감안해 금액을 조금 상행 조정할 수 있는 정도다. 

그렇다면 결국 판결까지 가더라도 이 사건은 1~200만원 수준의 위자료 외에는 딱히 배상해줄 내역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1000만원의 배상 요구는 너무 과도하고 300만원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 보상이 될 것이다. 

다만 환자가 자꾸 찾아오거나 인터넷 등에서 병원을 비방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 간접비용 등을 고려해 그 이상의 금액으로 합의하는 것도 틀린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위 드림렌즈 사건에서 A 원장은 500만원을 주고 환자 보호자와 합의했다. 예상되는 판결금액보다는 훨씬 많은 금액이지만 합의 기간이 길어지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에 금전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조기에 분쟁을 종결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환자와 치료비 환불, 배상 등에 관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적정한 합의금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합의를 하지 않았을 때 지출하게 될 시간과 비용(예상되는 손해배상금, 소송비용), 스트레스 등을 감안하면 각자의 사정에 따른 적정 합의금 도출이 가능하다. 그 금액을 한도로 협의를 시도해보고,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을 때 의료분쟁조정, 소송 등을 고려해볼 것을 권한다.

<오승준 변호사 약력>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외래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의료,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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