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준연씨는 “원전 수출은 외교에서 한국의 위상과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유준상 기자]
변준연씨는 “원전 수출은 외교에서 한국의 위상과 국격을 높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유준상 기자]

[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국내 전력사업은 정체기에 들어섰다. 해외 먹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원전 수출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국가만 할 수 있다. 원전을 포기하는 건 유능한 복싱선수가 스스로 링에서 내려온 격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의 ‘주역’ 변준연 비전파워 회장(전 한국전력공사 부사장)의 말에는 최근 곳곳에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국 에너지 업계에 대한 무거운 성찰이 담겼다.

2009년 12월 한국은 UAE 원전 수주를 따내며 최초로 토종원전인 APR-1400을 해외에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UAE 원전은 수주액만 200억달러(23조원) 규모에 달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당시 변 회장은 한전 해외사업본부장과 원전수출본부장을 역임하며 UAE 원전 수출을 주도했다. 그는 “협상 실무자로서 UAE로부터 원전 계약 최종 승인을 받아냈을 때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고 회상했다.

변 회장은 UAE 원전 수주에 앞서 대북경수로 사업을 주도했던 경험도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일환으로 추진된 대북경수로사업은 북한이 핵시설을 해체하는 대신 북한에 에너지 수급을 위해 경수로(KSNP 1000Mw)를 놔주는 국제 컨소시업 프로젝트였다. 그는 “대북경수로 사업이 UAE 원전 계약을 체결하는데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36년간 몸담아온 한전을 일으킨다는 일념하에 2018년 4월 한전 사장 최종 후보에 올라 김종갑 사장과 경합을 벌이기도 했지만 탈락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추진으로 ‘원전 수출’ 전망이 어두워진 요즘, UAE 원전 수출의 대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본지는 세계 에너지 시장 곳곳을 누비며 활약했던 변준연 회장을 만나 원전과 에너지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변 회장과의 일문일답.

[인터뷰] 변준연 비전파워 회장

변 회장은 자신을 “한전에서만 36년간 몸담은 한전맨”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유준상 기자]
변 회장은 자신을 “한전에서만 36년간 몸담은 한전맨”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유준상 기자]

Q. 한전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대학 재학 시절 친형을 따라 해병대를 가려고 했는데 당시 학장님의 권유로 병영특례제도의 수혜를 입어 한전에 입사했다. 당시 대학에서 평균 B 학점 이상에 전기기사 자격증을 따고 공기업을 들어가면 군 입대를 면제시켜주는 제도가 있었다. 한전에 입사한 후에는 해외사업 수주 분야에서 두루두루 실무 경험을 쌓았다. 뉴욕과 LA 등 두 번의 미국 주재원을 거쳤고, 해외 수주 실무 경험으로 직원에서 처장을 거쳐 해외부사장을 두 번 역임했다. 부사장이 등기이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전에 입사와 퇴사를 세 번씩이나 한 셈이다. 원전 수출을 내 손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었는데 한전 재직 시절 꿈이 영글어 현실이 됐다.”

Q. 대북경수로사업 총괄팀장직을 수행했던 이력이 눈에 띈다. 대북경수로사업이 무엇인가

“1994년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적 우려 속에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채택되면서 추진된 사업이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조건으로 북한 금호지구에 1000MW급 경수로 2기를 건설해주고 경수로 완공 전까지 대체에너지로 연간 50만톤의 중유를 제공해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EU‧일본‧한국 등 4개국 정부로 구성된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KEDO)’가 사업 주체가 돼 이끌어갔다. 그러나 북측이 핵무기를 비밀리에 개발한다는 의혹이 일면서 2005년 11월에 결국 사업이 폐기됐다. 공정률은 34.5%다.”

Q. KEDO 소속으로 북한땅을 밟은 소감을 말해 달라

“한번 가면 한 주에서 두 주씩 30차례 넘게 북한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중국 북경을 거쳐 평양행 고려민항을 타거나 속초항에서 초고속 정기운항선을 통해 북한 양화항으로 가는 노선을 이용했다. 방북하며 느낀 점은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시차가 큰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풍경은 꼭 1970년대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평양은 전력 인프라와 시설 등이 잘 갖춰졌지만 그 외 지역과의 수준 격차가 매우 크다.”

Q. 북한이 한국형 원전을 원했었나

“북한은 당초에는 한국형 원전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북한은 금호지구에 러시아 원전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1993년 김영삼 대통령께서 KEDO 집행이사국에 한국이 예상 사업비 46억불 중 70%를 분담하겠다고 제안하면서 한국형 원전이 최종 채택이 됐다. 이외 일본이 22%, 미국이 8%를 분담하고 EU는 연간 50만톤의 중유비를 각각 책임지기로 했다.”

캐도 원전 부지 공사 착공 기념식에서 북한 고위급 간부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변준연 회장]
KEDO 원전 부지 공사 착공 기념식에서 북한 고위급 간부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변준연 회장]

Q. 대북경수로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면 남북한이 어떤 수혜를 봤을지 궁금하다

“발전소는 첨단 소재의 집약체이기 때문에 북한이 자체적으로 운영‧관리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우리 기술진이 투입돼 조작과 유지 및 보수를 맡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원전에는 국내산 제품이 탑재됐기 때문에 고장이 나 수리하고 교체할 때 자연스럽게 ‘기술적 종속’ 구조가 형성되고 남북 간 기술‧기자재‧인력의 교류가 활발히 진행된다. 북한도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많은 인력을 기술자로 길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미 연인원 2만명 이상, 물자 30만톤의 교류가 이뤄졌다. 남한의 경우 UAE 원전 수주를 이끌어내는 데에 밑거름이 됐다.”

Q. 대북경수로사업이 UAE원전사업 수주에 도움이 됐다는 말인가

“해외원전 수주에서 짧은 시간에 영어로 완벽하게 입찰 서류를 작성하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북경수로사업을 추진하는 전(全) 과정에 영어가 통용됐다. 수십 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축적된 영어 기반 자료들을 UAE사업에 활용할 수 있었다. 대북경수로사업이 추진된 10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교류와 협상으로 길러진 감각과 노하우가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수주 인력도 마찬가지다. 대북경수로사업 수주는 직원 수천명이 아닌 정예화된 20~30명을 중심으로 추진됐는데 이들이 UAE 원전 사업에서도 주축이 됐다. 사업비 1조원이 투입된 대북경수로사업이 23조원을 벌어들인 UAE원전사업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Q. 대북경수로사업과 UAE원전사업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대북경수로사업 원자력사업 총괄처장을 역임하면서 실무 전체를 총괄했다. 예산, 조직, 인력, 협상 등을 집행하고 관리했다. 경험을 인정받아 UAE원전 수주에서도 원전수출본부장을 맡아 협상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공로로 직급이 한전 해외부사장으로 승격됐다. 원래 한전에 부사장직은 한명이었지만 UAE원전 사업을 계기로 해외 에너지 수주를 총괄하는 해외부사장직이 탄생한 비화다. 그 무렵 산업분야 최고 훈장인 금탑산업훈장도 받았다.”

북한 금호지구에 건설이 중단된 채 남은 경수로 전경. 2005년 11월에 폐기된 이 사업의 공정률은 34.5% 수준이다. [사진=변준연 회장]
북한 금호지구에 건설이 중단된 채 남은 경수로 전경. 2005년 11월에 폐기된 이 사업의 공정률은 34.5% 수준이다. [사진=변준연 회장]

Q. 2018년 4월 한전 사장 후보자에 올랐었다. 출마 계기가 있다면

“에너지 분야의 적극적 해외사업 진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국내 전력사업은 포화상태로 정체기에 들어섰다. 전력사업의 해외 진출은 비공식적 국토를 확장할 수 있다. 국내와 동일하게 해외에 발전소와 각종 인프라를 짓고 운영해서 그 나라 요금을 받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전 세계에 한전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는 게 꿈이었다. 한전을 국내 최고의 에너지 인재를 양성하는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가졌다.”

Q. 적극적 해외사업 진출을 위해 제도개선이 시급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해외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기술력과 사업 능력은 금융이 뒷받침돼야 발휘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금융 투자에 매우 소극적이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갖고 해외 장기 대규모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뢰도를 쌓아야 한다. 한국은 금융이 뒷받쳐주면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 해외 시장에서 기술력과 사업 능력을 발휘하며 막대한 수혜를 볼 수 있다.”

Q.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나라는 주종에너지인 원자력과 석탄을 없애고 거꾸로 보조에너지인 재생에너지를 주종에너지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주력이 될 수 없다. 에너지 정책은 ‘레인보우(Rainbow)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각 에너지는 무지개와 같이 여러 가지 색깔을 내기 때문에 다양한 에너지를 함께 써서 상호보완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인류는 자원 고갈 위기에 처해있는데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의 97%를 수입해서 쓰고 있다. 거기에 수입의 80%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에너지 최빈국이란 증거다. 에너지 공급이 단절되면 모든 게 마비되는데 정부 조직이나 정책 입안자, 정치인들의 관심이 너무 약하다. 국가가 에너지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에너지 외교에 국민 생존이 달렸다.”

Q. 한국이 에너지 위기라는 소리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없나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고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원전은 한국이 유일하게 수출 가능한 에너지다. 원전 수출은 외교에서 한국의 위상과 국격을 높이는 일이다. 원전 수출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국가만 할 수 있다. 원전을 포기하는 건 유능한 복싱선수가 스스로 링에서 내려온 격이다. 원전을 포기하면 미국, 일본 등 경쟁국들에 신의 선물이자 최고로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원전은 신기술이 나올 때까지 30~40년간 브릿지 에너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본다. 원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전체 에너지 수입의 0.5%에 불과하지만 전기 생산의 무려 30%를 차지한다. 원자력은 동시대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고 효율이 높은 에너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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