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김영석 한국북극항로협회 회장. [사진=안경선 기자]
지난달 31일 김영석 한국북극항로협회 회장. [사진=안경선 기자]

[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북극항로는 단순한 지름길이 아니라 준비된 나라만이 열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다. 한국은 충분히 북극항로 개척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저와 협회가 그 길을 여는 가교가 되겠다.”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김영석 한국북극항로협회 회장은 북극항로 개척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했다.

북극항로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북극해의 주요 항로로, 러시아 북부를 따라 이어지는 북동항로와 캐나다 북부를 통과하는 북서항로로 구분된다. 업계는 북극항로의 상업적 개척이 단순한 해상로 개방을 넘어 기후변화 대응, 국제 물류 질서 재편, 에너지·자원 안보 확보, 신해양산업 창출을 아우르는 국가 전략사업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한국 산업계가 북극항로 개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이익을 제시했다.

그는 “첫째는 운송시간 단축이다. 한국–북유럽 구간을 예로 들면 수에즈 운하를 경유할 경우 약 2만2000km를 항해해야 하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약 1만4000km로 40%가량 거리가 줄어든다. 항차당 10일 이상 단축돼 선박 연료비, 용선료, 선원 인건비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둘째는 탄소 배출 절감 효과다. 항차 단축으로 인한 연료 절감은 CO₂, SOx, NOx 배출을 크게 줄여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유럽연합(EU)과 국제해사기구(IMO) 시장에서 ‘친환경 운송 솔루션’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셋째는 조선·항만 등 연관 산업의 파급효과다. 북극 운항에는 내빙선, 고성능 LNG 추진선, 자율운항 기반 디지털 항해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한국 조선업은 이미 LNG 운반선과 내빙 탱커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수주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 항만은 단순한 환적 허브를 넘어 친환경 연료 공급, 수리·검사, 보험·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극지 거점항만’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금융·보험·IT·인재 양성 등 서비스 산업의 동반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북극항로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로 지정학적 리스크, 운항비용 불확실성, 계절적 수요 한계를 꼽았다.

김 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러시아 제재가 강화되면서 보험료 할증, 금융거래 제약, 선박 입출항 제한이 심각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또 쇄빙선 이용료, 러시아 북극항로청(NSR Administration) 통행료, 빙해보험, 계절별 운항제약으로 인해 총 물류비 절감 효과가 기대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북극항로 상용화는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북극항로는 7~10월 여름철에만 안정적 운항이 가능하고 겨울에는 사실상 닫힌다. 따라서 안정적 연중 서비스가 어렵고 화주들이 장기 계약을 망설이는 요인이 된다. 이상 세 가지가 요인들이 맞물려 현재 북극항로의 ‘경제성 방정식’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결국 상용화의 핵심은 이 불확실성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러시아 제재로 인한 제약 속에서도 국제 규범을 준수하며 과학기술·제3국 협력·기술수출 등 합법적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원칙은 국제 제재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다. 다만 제재의 틈새에서 합법적 협력 공간은 존재한다”며 “예컨대 과학·기술 협력(빙해 연구, 기상 관측, 안전 구조 훈련)은 제재 대상이 아니며, 국제기구 차원의 공동 프로젝트로 추진 가능하다. 또한 제3국 협력을 활용할 수 있다. 북유럽, 캐나다, 일본과 같은 국가와 공동 연구·실증 프로젝트를 추진해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고, 다변화된 협력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술·서비스 수출이라는 새로운 방식도 있다”며 “한국 조선소는 내빙 LNG 운반선을 이미 세계적으로 공급한 경험이 있고 한국 선급과 보험사는 북극 리스크 평가 모델을 수출할 수 있다. 이런 분야는 제재와 무관하게 해외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31일 김영석 한국북극항로협회 회장. [사진=안경선 기자]
지난달 31일 김영석 한국북극항로협회 회장. [사진=안경선 기자]

김 회장은 현재 여러 제약 속에서도 기술·서비스·항만 인프라를 제공하는 ‘지원자(Enabler) 전략’을 통해 한국이 북극항로를 직접 운항하지 않고 북극항로 활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가령 빙해 예측 AI, 위성 기반 항해 지원, 친환경 추진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다. 한국이 이러한 기술을 국제표준화와 함께 선도한다면 북극항로를 직접 운항하지 않더라도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부산·울산·광양 등 국내 항만을 북극항로 서비스 허브로 발전시키는 것도 전략이다. 환적, 친환경 연료 공급, 수리조선, 보험·금융 서비스가 결합된 복합형 허브 항만 모델을 구축하면, 북극항로의 부가가치를 국내에서 흡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국가에서 컨트롤 타워 구축과 법·제도 정비, 데이터·인력 인프라 확충을 통해 북극항로의 실질적 상용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컨트롤 타워와 표준화 체계가 필요하다”며 “현재는 해수부, 산업부, 국토부, 외교부, 환경부, 해경 등 부처별로 역할이 분산되어 있어 종합 전략이 약한데 북극항로는 외교·안보·산업·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힌 과제이므로 대통령 직속 또는 국무총리 산하의 ‘북극항로 국가전략위원회’와 같은 통합 조직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IMO Polar Code에 맞춘 국내법 정비, 북극 운항선박 안전·보험 규정, 해상구조·오염대응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며 “현재 우리 선박이 북극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보험·책임 체계가 불명확하여 큰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인프라와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 빙해·기상 예측, 위성통신, 항로정보를 체계적으로 축적·공유해야 하고, 북극항해 경험을 가진 항해사·기관사·도선사 양성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이미 자국 해운사와 함께 북극 실증항해를 수차례 수행하며 인력 풀을 넓히고 있다. 한국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 회장은 민간에서도 국내 해운·에너지 기업들이 북극항로 진출을 위해 규제 대응, 기술 역량 강화, 금융 구조 혁신 및 전문 인력 양성 등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민간 차원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첫째, 규제·리스크 대응이다. 국제 제재 준수, 보험 체계, 환경규제 대응을 위한 내부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둘째는 기술·운항 역량 확보다. 내빙 선박 설계, 디지털 항해 시스템, 저온물류 운송 능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 국제 공동 시뮬레이션과 시범 항차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금융·사업 모델 혁신이다. 북극항로는 초기 비용이 크고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공동 보험풀 구성, 컨소시엄 형태의 투자, 장기 화물 계약 등을 통해 안정적 수익구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전문 인력 양성이 핵심이다. 북극 경험을 가진 항해사·기관사뿐 아니라 보험·법률·물류 전문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업은 실제 프로젝트 참여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 북극전략의 궁극적 목표를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며 자립적인 극지 역량 확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안전·지속가능·자립적 극지 역량 확보가 목표다. 이를 위해 안전 측면에서는 선박과 선원을 보호하고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최우선이다. 지속가능 측면에서는 북극항로를 ‘저탄소 물류 솔루션’으로 발전시켜 세계 해운의 그린 전환에 기여해야 한다”며 “자립 측면에서는 조선·해운·항만·금융·IT가 연결된 한국형 극지 가치사슬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경로 이용자’가 아니라 ‘극지 운영 모델 제공자’로 도약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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