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사진=노태하 기자]](https://cdn.enewstoday.co.kr/news/photo/202509/2335637_1158578_5110.jpg)
[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원자력발전업계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 대해 다시금 공론화 절차를 갖자는 정부 제안에 대해 신규 원전 건설을 지연 또는 무산 시키기 위한 정부의 절차적 명분 쌓기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다.”
26일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최근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제안한 11차 전기본상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 대한 공론화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원전업계가 정부의 공론화를 우려하는 것은, 과거 탈원전 정책 기조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원전 건설 계획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원전 축소 명분 쌓기로 이어졌던 만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 교수는 “우리는 정부가 제안하는 공론화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에 대해 공론화를 했다”며 “당시 설치된 공론화위원회는 원래 두 호기의 건설만을 논의하고 결정하도록 설치됐는데 마지막에 시민참여단 설문조사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부에 장기적인 원전 축소를 권고했다. 이는 애초 위임된 범위를 벗어난 권고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기조 속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했으나, 거센 반발에 직면하자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공론화위원회를 가동했다.
그 결과 건설 재개 찬성 여론이 우세해 공사는 이어갔지만 동시에 원자력 발전 전반에 대해서는 축소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를 근거로 위원회는 건설은 재개하되 원전 축소를 권고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통해 탈원전 정책 기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명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공론화를 제안한 것이 단순히 신규 원전 여부만 묻는 절차가 될지 아니면 기존 원전 건설 계획까지 확대 해석돼 원전 축소 명분으로 활용될지 우려가 크다”며 “결국 공론화라는 것이 신규 원전 건설을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키기 위한 절차적 장치로 악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업계에 자리잡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 교수는 신규 원전 건설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원전 건설 관련 기술력과 생태계가 붕괴될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가장 먼저 붕괴가 예상될 분야로 원전 기자재 업계와 원전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저 수십 년간 원전 설비 제작에만 매진해 온 원전 전문 중소·중견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 원전 생태계의 실핏줄과도 같아서 이들이 멈추면 생태계 전체가 마비될 것”이라며 “한번 무너진 생산 기반과 흩어진 숙련 인력은 복원하는 데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는 영구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적으로 취약해진 원전 생태계 속 중소·중견기업들이 우리 원전 기술 유출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 교수는 “일감 공백이 길어지고 재정적으로 취약해 질 경우 이들은 해외 자본의 M&A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게 된다”며 “이는 단순 기술 탈취를 넘어 우리 기업의 신뢰도를 이용해 미래 시장까지 빼앗는 고도의 전략이므로 정부는 핵심 원전 기업들을 국가안보 차원의 전략 자산으로 지정하고 강력한 제도적 방화벽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래 원전 인력 양성 시스템의 붕괴도 예상했다. 그는 “원전에 대한 부정적인 정부 정책과 시그널은 젊은 학생들에게 ‘원자력에 미래가 없다’라는 강력한 신호로 읽히게 될 것”이라며 “당장 카이스트, 유니스트를 포함한 여러 대학의 원자력공학과가 우수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이는 우리 원전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근본부터 훼손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신규 건설이 없으면 기업의 신규 채용이 끊기고 일자리가 줄어드니 우수 학생들도 오지 않게 돼 국내 원전업계는 ‘일자리 감소 → 인재 유입 감소 → 학문 기반 붕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문 교수는 국내 원전 생태계의 건재함은 ‘팀코리아’ 수출 경쟁력의 심장과도 같다며 신규 건설이 중단되면 수출 경쟁력 역시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약화될 경쟁력으로 △예산 내 적기 건설(On Time, On Budget) 역량 △장기 부품 공급 보증력 △운영 실적(Track Record)에 따른 설득력 등을 꼽았다.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사진=노태하 기자]](https://cdn.enewstoday.co.kr/news/photo/202509/2335637_1158579_5135.jpg)
문 교수는 “미국과 영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공급망이 무너지면 필연적으로 비용 상승과 공기 지연을 유발해 지금과 같은 건설 공기와 예산으로 원전을 지을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원전 설계 기술은 있지만 자국 내 공급망이 무너져 현재는 자체적인 원전 건설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가장 최근 조지아주에 건설된 보글(Vogtle) 3·4호기는 애초 추정치보다 2배 많은 300억달러가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영국은 현재 서머싯주에 힝클리 포인트 C 원전을 건설하고 있는데 이 건설을 프랑스 원전 기업인 EDF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는 “발주국이 중시하는 ‘장기 부품 공급 보증’ 역시 약속할 수 없게 된다”며 “원전은 60년 이상 운영되므로 발주국은 안정적인 부품 공급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국내 생태계가 무너진다면 이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수주 협상에서 결정적 약점을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신규 원전은 우리 기술의 안전성과 성능을 전 세계에 증명하는 ‘살아있는 쇼룸(Showroom)’이기 때문에 신규 건설이 끊길 경우 운영 실적(Track Record)이 끊기는 셈이 돼 우리의 원전 수출 제안은 세계 시장에서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교수는 국내 원전 생태계의 약화는 원전 건설 이후 추가적인 수익 창출 창구가 되는 원전 운영·정비(O&M) 계약 기회마저 날려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원전 수출은 건설 이후 원전 운영·정비 사업은 원전 운영기간 동안 지속되는 만큼 이른바 ‘알짜 사업’이지만 발주처가 핵심 부품 공급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파트너에게 자국 원전의 수십 년 미래가 달린 사업을 맡길 리 없다”며 “결국 우리는 발전소만 지어주고 더 큰 수익이 나는 후속 사업은 경쟁국에 내주는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문 교수는 원자력이 단순한 전력 수단이 아니라 경제·산업·안보를 아우르는 핵심 전략 자산임을 강조했다.
그는 “원자력의 가치를 단순히 ‘에너지원’ 중 하나로만 보는 것은 그 거대한 전략적 가치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국가 안보 측면에서도 가령 우리가 세계 원전 건설 공급망에서 반도체의 TSMC처럼 ‘대체불가’의 지위를 확보한다면 이는 강력한 안보 자산이 될 것”이라며 “전 세계가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한국의 안정을 지켜주려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문 교수는 AI 혁명으로 급증할 전력 수요 속에서 원자력의 전략적 가치와 에너지 공론화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AI 혁명 시대에 살고 있으며 원자력 없이는 AI 시대를 선도할 수 없다. 메타, 아마존, 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원자력에서 얻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공론화를 하고자 한다면 ‘신규 원전 건설 찬반’이라는 단편적인 주제가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을 위한 최적의 에너지 믹스는 무엇인가’라는 더 크고 본질적인 주제를 갖고 해야 한다”며 “국가 에너지믹스라는 큰 그림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신규 원전 건설이나 재생에너지 확대 여부는 그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정책 수단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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