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풍,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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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김종현 기자] 내분에 휩싸인 영풍과 고려아연이 여전히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장씨 가문과 최씨 가문 동업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서린상사를 두고 갈등이 재연되고 있어 이목이 쏠리고 있다. 더욱이 영풍 측은 유상증자 무효 소송을, 고려아연 측은 사실상 결별을 선언하는 등 갈등의 폭만 키우고 있어 자칫 승자 없이 양쪽 모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영풍과 고려아연은 지난 19일 고려아연의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사상 첫 표대결이 이루어진 가운데 사실상 승자 없는 무승부로 마무리되면서 갈등의 불씨만 키웠다.

주총 당시 고려아연 측은 배당안건을 챙겼고 영풍 측은 정관 변경을 부결시킴으로써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은 주총 이후 더 극심해졌다.

당장 영풍은 지난해 하반기 고려아연이 현대자동차그룹의 해외법인인 HMG글로벌을 대상을 진행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영풍 측은 해당 유상증자가 적정했는지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고려아연을 이끌고 있는 최윤범 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후 지난 22일 대표이사 사퇴 결정을 내려 사실상 이사회 의장 역할로 선회했다. 고려아연 측은 이사회 독립성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법적 대응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사진=고려아연]
[사진=고려아연]

◇ 무승부 주총 후폭풍···흔들리는 동업의 근간

문제는 이 같은 같등의 불씨가 현재 공동 경영하고 있는 서린상사로 옮겨붙었다. 고려아연 측은 서린상사 내에서 영풍과의 협력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린상사는 영풍그룹을 함께 창업한 장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우호의 상징이었다. 고려아연 측이 지분 66.7%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지분율 33.3%를 갖고 있는 영풍 측이 경영권을 갖는 구조다. 실제 장씨 일가 창업 3세인 장새환 대표가 서린상사 경영을 하고 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서린상사를 통해 원료 등을 구매하고 양사의 비철금속 제품을 유통해 왔다.

이미 갈등의 불씨는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지난해 하반기 서린상사를 인적분할하기로 합의하고 논의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상사 관계자에 따르면 고려아연 측은 그간 서린상사에서 고려아연 관련 업무를 분리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만큼 인적분할을 통해 신설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었다.

이에 대해 영풍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인적분할 방안을 논의했고 장 대표가 이룬 성과 부분을 존속법인에 남기기로 하고 분할 이후 지분 문제 등은 현금 청산하기로 얘기가 돼 있었다”면서 “하지만 고려아연 측이 돌연 관련 논의를 중단하고 갑자기 이사회 개최를 요구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린상사 이사회는 영풍 측 3명, 고려아연 측 4명으로 구성돼 왔지만 지난해 서린상사의 인적분할 추진을 위해 고려아연이 요구한 1명이 추가된 상황이다.

고려아연 요청으로 지난 14일 임시 이사회를 열었지만 영풍 측 인사가 불참했고 고려아연 측 1명도 개인적 사정으로 불참하면서 정족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무산됐다. 이에 주총도 무산된 상황이다.

다만 고려아연 측은 최대주주로서 이사회를 열어 4명의 사내이사를 추가하겠다는 안건을 강행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업계는 고려아연이 신규 이사 4명을 추가로 선임해 서린상사 경영권을 온전히 확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은 또다시 27일 오전 11시 임시 이사회를 소집했지만 영풍 측 이사 3인이 불참했고 최창걸 명예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또다시 무산됐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 측은 법원 허가를 받아 직접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행법상 이사회 불성립 등으로 주주총회 소집이 지연되면 일정 지분 이상을 가진 주주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이날 임시 이사회가 불발되자 영풍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그동안 양사가 합의해서 진행해 오던 서린상사 인적분할 작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갑자기 이사회 장악을 시도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서린상사의 이사회 및 주주총회가 파행된 근본적인 책임은 고려아연에 있다. 이로 인해 서린상사가 입게 되는 피해와 영풍이 입게 될 피해를 막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고려아연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서린상사가 법적으로 반드시 열어야 하는 주주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이사회를 열려 한 것”이라며 “영풍 측 인사들이 또다시 불참하면서 서린상사가 법 위반 상태에 놓이게 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전했다.

업계는 서린상사가 고려아연 수중으로 넘어갈 경우 영풍이 측이 불리하다는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영풍은 그간 고려아연과 원료를 공동으로 구매·판매하는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인지도, 규모의 경제 등에 힘입어 높은 협상력을 누려왔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영풍과 고려아연 본사.[사진=영풍]
영풍과 고려아연 본사.[사진=영풍]

◇ 전초전 된 서린상사···고려아연 지분 확보 돌입

다만 장 대표가 이끌면서 서린상사의 실적도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린상사가 쪼개지는 것만으로도 양측 모두 타격을 감수해야 상황이다.

이처럼 서린상사가 양 가문 갈등의 전초전으로 떠오르면서 향후 영풍그룹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서린상사가 양측이 합의된 동업 관계를 깨트리는 표지석이 될 경우 지분 경쟁을 통한 후폭풍은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전히 동업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영풍과 신사업을 위해 분리를 선택하겠다는 고려아연이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본격화하면서 내홍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재계 일각에서는 지분 관계만으로도 계열 분리 가능성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영풍 측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아연의 지분 가치는 시총 기준 약 3조원(27일 기준)에 달한다. 반면 최씨 집안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의 지분 가치는 약 1250억원에 불과해 지분교환을 추진한다고 해도 고려아연 측은 최소 2조8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분리된 그룹 간 상호 지분율은 3% 미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고려아연이 영풍의 주요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풍이 순순히 내놓을 리는 전무하다는 게 재계 얘기다.

이 때문에 양측은 고려아연 지분 확보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 일각에서는 “영풍과 고려아연 측이 지분 경쟁에 돌입할 경우 사실상 사업 경쟁력 측면에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면서 “사업성 강화 및 실적 개선을 위해 필요한 자금들이 상당수 지분 매입으로 소진될 경우 양측 모두 성과 없이 역량만 소진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영풍 측은 이달 들어 고려아연 보통주 6만4801주를 사드리며 지분율 0.31%만큼 끌어올렸고 최 회장 역시 장내매수를 통해 지분 8700가량을 사들여 지분 0.04%를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나타냈다.

이에 재계에서는 지금이라도 양 가문의 화해와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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