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킹덤'. [사진=넷플릭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다. 종교적으로 봤을 때 그것은 신이 정한 질서와 능력에 도전하는 행위로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신의 전능함에 도전하는 상상은 있어왔다. 

중국에서 그것은 ‘강시’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미이라’로 불렸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들어졌다. 이들 중 굳이 과학적인 존재를 찾자면 프랑켄슈타인이 가장 가깝다. 

영국 작가 메리 셸리의 1818년 소설에 처음 등장한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자의 뼈로 만든 거대한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생기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원래 프랑켄슈타인은 살아난 시체가 아닌 그것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빅터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에 의해 살아난 괴물은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갖는다. 어쨌든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영화탄생 이래 굉장히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정세에 불안을 느낀 독일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해오던 기괴한 영화세계를 바탕으로 문학 속 괴물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이때 등장한 영화들이 드라큐라와 미이라,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이다. 이들은 소위 ‘초기 공포영화의 4대 천왕’으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KBS 만화 ‘두치와 뿌꾸’에서 두치와 함께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빵 뿌꾸빵”에 맞춰 춤을 출 뿐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지금 공포영화의 슈퍼스타라면 단연 좀비다. 좀비는 앞선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를 살리려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결과물이다. 본래 좀비는 아메리카 서인도 제도 부두교 주술로 살린 시체를 의미한다. 

영화 역사에서 좀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끈질기게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다 최근에는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고 국내에서도 넷플릭스 ‘킹덤’과 영화 ‘부산행’이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좀비의 시작은 원래 종교적이었다. 저주나 주술로 죽은 시체를 살려내고 이것이 산 사람의 인육을 탐낸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냉전시대에 이르러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커지자 방사능에 오염된 시체가 좀비로 변한다는 설정이 등장했다. 

‘좀비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로메로가 만든 1968년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는 방사능에 오염된 좀비가 마을을 습격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조지 로메로는 이후 ‘시체들의 새벽’, ‘죽음의 날’을 만들면서 좀비를 소재로 냉전시대의 불안과 인간 계급사회의 부조리를 담아낸다. 

본격적으로 좀비에 과학을 더한 영화는 스튜어트 고든의 1985년작 ‘리애니메이터(국내명: 좀비오)’다. 의과대학을 배경으로 어느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죽음을 정복한다는 명목으로 시체를 살리는 약물을 개발한다. 그는 시체를 살려냈지만 살아난 시체들은 인간을 공격하고 잡아먹기 시작한다. 

이들을 기점으로 좀비영화가 붐을 타는 듯 했지만 80, 90년대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슬래셔 영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유럽에서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지알로 무비가 인기를 끌면서 좀비는 다시 마이너로 숨어든다. 

그러나 좀비는 그 특유의 생명력답게 게임을 통해 다시 부활한다. 슈팅게임 ‘바이오하자드’와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는 바이러스 실험 중 탄생한 좀비가 만드는 아포칼립스를 보여준다. 이 중 ‘바이오하자드’가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고 전 세계적 사랑을 받으면서 좀비영화는 본격적인 메인스트림 장르영화로 자리잡는다. 

'28일후'.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여기에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나 대니 보일의 ‘28일후’ 역시 좀비영화가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대 영화에서 좀비를 만드는 방법은 바이러스와 약물, 독초 등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로 죽은 시체를 살리는 일이 가능할까? 

과학적으로 죽은 시체를 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죽었다는 것은 근육이 경직되고 신진대사가 멈췄다는 의미다. 이것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근육이 움직여야 하고 ‘걷는 동작’에 대한 뇌 활동이 이뤄져야 하는데 시체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만에 하나 ‘28일후’처럼 산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처럼 움직이는 일이라면 가능성은 있다(일부 ‘물려서 감염되는’ 좀비영화의 경우에도 물려서 죽었다가 좀비로 깨어난다는 설정이다). 

바이러스가 뇌를 지배해 포악한 행동을 유도하도록 하고 사람을 잡아먹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경우 좀비는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아닌 그냥 ‘인간’의 몸이다. 잠복기 없이 증상이 즉각 발현되는 만큼 통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좀비영화를 본 의사들은 감염자를 구분하기 쉽기 때문에 격리조치를 통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초기에 구역을 봉쇄할 수 있다면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은 빠른 시일 내에 막을 수 있다. 만에 하나 살살 물려서 잠복기가 존재한다 해도 일단 물린 상처가 있고 조금씩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충분히 격리시킬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좀비바이러스보다 코로나19가 훨씬 무서운 전염병이다. 언제나 현실이 영화를 이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이기게 될 줄은 몰랐다. 좀비를 그렇게 무서워하며 영화를 봤는데 알고 보니 우린 지금 좀비보다 더 무서운 녀석과 싸우고 있다. 그 무서운 녀석을 막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자들에게 새삼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 글은 본지에서 연재하는 ‘씨네마 사이언스’의 마지막 글이다. 문과 출신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출입기자가 이 주제를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 ‘문과적 관점에서 과학’(차마 ‘인문학적 관점에서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을 전하겠다는 취지로 글을 시작했다. 비록 이 연재는 여기서 끝나지만 언젠가 어느 곳에서 기회가 닿는다면 좀비처럼 다시 부활해서 문과적 과학을 전할 자리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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