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보다 정치가 우선했나”… 포항시의회 ‘그래핀 조례’ 파동, 쌍방 고소전으로 확산
제326회 포항시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신상발언
[이뉴스투데이 대구경북취재본부 정창명 기자] 포항시의회가 미래 전략산업을 위한 ‘그래핀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그래핀 조례)’를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조례가 본회의에서 단 한 차례의 문제 제기 없이 부결된 데 이어, 이를 둘러싼 의원 간 공방이 명예훼손·무고 혐의 고소전으로 번지며 의회 운영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갈등은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의회 내부의 미묘한 정치적 지형과 힘겨루기가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논란의 핵심은 지난 6월 상임위원회에서 전문적 검토를 거쳐 원안 가결됐던 그래핀 조례가 본회의에서 아무런 추가 논의 없이 부결된 과정이다.
안건 내용은 상임위 심사 당시와 동일했으며, 본회의에서도 사회적·법적 문제점이나 논리적 반대 사유가 공개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통상 상임위 결론이 본회의에서 존중되는 지방의회 관행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뒤집기는 극히 이례적이다.
일부 의원들은 조례의 산업적 파급력과 예산 투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조속한 통과를 주장했지만, 반대 측은 표결 직전까지 별다른 설명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더 나아가 회기 당시 특정 국회의원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정책이 아닌 정치 논리가 개입됐다”는 지적이 시의회 안팎에서 확산됐다.
9월 21일 재상정된 조례가 결국 통과되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누적된 갈등과 불신이 이후 고소전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됐다.
조례 부결 이후 김민정 의원은 언론 인터뷰와 SNS 등을 통해 “본회의 부결은 절차적 정당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반발한 일부 의원은 김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최근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리고 불송치 처분했다.
김 의원은 25일 열린 제326회 임시회 본회의 신상발언에서 “명예훼손 혐의가 무혐의로 종결된 만큼, 무고죄 고소 등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이 문제는 개인 간 감정싸움이 아니라 의회 운영의 원칙과 선례의 문제”라며 “정당한 의정활동을 형사적으로 억압하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정책 논의가 위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핀 조례는 김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방진길·백인규·백강훈·안병국·김상민·박희정·김만호·박칠용·김은주·전주형·최광열·김성조 의원 등 13명의 공동 발의자가 참여했다.
조례는 포항이 그래핀·첨단신소재·2차전지로 이어지는 신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핵심 정책이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포항테크노파크, 그래핀스퀘어 등 주요 연구기관·기업들도 지역의 그래핀 산업 육성을 위해 조례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례의 산업적 의의보다 의원 간 정치적 갈등과 고소전이 더 주목받는 현실이 오히려 지역 미래전략 논의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의회 스스로 의정 절차와 운영 기준을 정비할 수 있는 자정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김 의원 또한 “의장이 유사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준과 대응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의장단의 책임 있는 판단을 촉구했다.
포항 그래핀 산업은 글로벌 기술 경쟁 속에서 지역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 중요한 전략산업 조례가 통과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이 앞서며, 의회의 책임성과 전문성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났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정책적 합리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의회를 움직이는 기준이 돼야 한다”며 “이번 사태가 오히려 의회가 제 기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포항시의회가 이번 갈등을 통해 정책 중심 의회, 절차에 충실한 의회, 투명하고 책임 있는 의회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