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업본부 ‘적자’ 논란?···의무 ‘공공’ vs 경쟁 ‘민간’ 이중 난제

택배 물량 2배 성장에도 점유율 9.4→4.3%↓ 주말 배송 불가·민간 대량 계약 이탈 원인 지목 도서·산간 등 취약지역 전담, 손익 불균형 발생 해외 배송 대행·고령 맞춤 서비스 등 특화 전략 “민간이 하기 어려운 ‘사회 공헌’에 집중 예정”

2025-11-24     김진영 기자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국내 택배 물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우정사업본부가 오히려 역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우편사업 적자가 누적되면서 조직을 공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이는 단순한 ‘경쟁력 저하’로 보기보다 공공기관에 민간 수준의 속도와 서비스를 요구하면서도, 제도·노동·투자 환경은 공공 구조에 묶어 둔 이중적 조건이 누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9~2023년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택배 물량은 27억8980만 통에서 51억5785만 통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우체국택배 물량은 2억6324만 통에서 2억2227만 통으로 줄었고, 점유율도 9.4%에서 4.3%까지 하락했다.

그럼에도 우체국택배는 서비스 품질 평가에서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 택배·소포 서비스평가’에서 우체국 소포는 일반택배 C2C·B2C 부문에서 모두 최고 등급(A+)을 받았다. 친절성·안정성·물류취약지역 배송 품질 등 주요 항목에서도 경쟁사 대비 높은 평가를 기록. 소비자 만족도는 높지만, 구조적 제약으로 시장 점유율은 떨어지는 ‘품질-실적 괴리’가 나타난 셈이다.

우체국택배는 주 5.5일 근무 체계로 인해 일요일 배송이 사실상 어렵다. 반면 민간사는 주말·야간 배송까지 포함해 서비스 시간대를 확장해 왔다. 이 차이가 소비자 선택과 기업 물량 배분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특히 대형 커머스는 주말 대응력을 핵심 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 우체국의 서비스 구조가 시장 흐름과 맞지 않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기에 집배원이 공무원 신분으로 분류돼 근로시간·휴일 규정이 엄격한 점도 변수로 꼽힌다. 민간 택배사처럼 탄력적 근무조 편성이나 야간·특근 중심 운영이 어렵고, 노동환경 보호 기준도 상대적으로 더 높다. 이런 제도적 장벽은 근로자 보호라는 공공적 목적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시장의 서비스 속도 경쟁에서 우체국을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하는 요인이라는 해석이다.

기술 투자에서도 발생하는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우정사업본부는 공공기관 특성상 자동화 설비 도입이나 물류센터 신증설 시 심사·승인을 거쳐야 한다. 민간 대비 절차 기간이 길어 신규 기술 도입 속도가 늦어지고, 그 결과 도입 시점에는 이미 시장의 표준보다 뒤처지는 사례도 나타난다.

물량 구조에서도 우체국택배는 민간과 다른 제약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대형 플랫폼·기업 계약은 대부분 민간사로 이동, 우체국은 개인·소량 발송 중심의 고객군을 유지하고 있다. 인력 운영 역시 민간 대비 유연성이 낮다. 토요일 위탁 인력 운영은 가능하지만, 근로 규정·비용 구조로 인해 성수기 물량 급증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단기간 물량이 많이 늘어나는 온라인 쇼핑 성격상 인력 배치의 유연성은 기업 고객에게 중요한 선택 기준이라는 것이 업계 공통된 시각이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소규모 온라인 판매자들이 초기에 우체국을 많이 이용하지만, 판매가 늘어 대량 물량을 맡기기 시작하면 민간 대형사로 이동하는 흐름이 반복된다”며 “결국 우체국에는 소량·개별 발송만 남고, 대량 물량은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배송 비중도 경쟁력 격차로 이어진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체국은 울릉도·도서·산간 등 민간이 기피하는 지역을 사실상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선박 상하차 인력을 따로 두기 어렵고, 집배원이 이를 직접 수행할 수 없어 이런 공공적 역할을 진행할수록 비용 구조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우정사업본부의 역할을 단순히 시장 경쟁력 기준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우체국은 전국 2500여 창구를 기반으로 4대 은행을 포함한 9개 금융기관의 기본 금융서비스를 제공, 점포 축소로 금융 사각지대가 된 농·어촌의 ‘대안 인프라’ 역할을 맡고 있다. 민간이 기피하는 자월도·승봉도 등 도서 지역 배송도 우체국망으로 보완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도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형 서비스’가 이어지고 있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 농·산·어촌의 별정우체국 상당수는 해외 배송 대행, 고령층 맞춤 서비스 등 자구책으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취약지역의 우체국은 국제우편·생활민원·고령층 금융서비스를 맡으며 지역 소멸 속에서도 ‘마지막 근린 인프라’ 역할을 수행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집배원이 순찰·돌봄 역할까지 겸하며 공공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우체국택배의 역성장은 공기업의 경영 성과로만 평가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공공서비스 의무와 시장 경쟁력이 충돌하는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공공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조정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주말·일요일 배송이 사실상 기본 서비스가 됐지만, 우정망은 노동·제도적 제약을 고려해야 해 같은 방식으로 따라가기 어렵다”며 “대신 민간이 하기 힘든 취약지역 생활서비스·고령층 돌봄·국제우편 특화 등 우체국만의 공익 기능을 강화해 새로운 역할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편·택배 수익만으로는 적자 구조를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역 기반 공공서비스, 금융·생활 인프라 기능을 확장해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힐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