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금산분리 완화 공방···“AI 명분? 기술투자 아닌 SK 중심”
박상인 서울대 교수, "금산분리 금융안정 지키는 마지막 장치. 작은 구멍 내면 전체 무너져" 강신형 충남대 교수, 한국 CVC 재무적 투자 중심으로 운용되는 구조적 한계 지적 김자봉 회장, "대기업·벤처기업 R&D 혁신 공동체서 하나 될 때 가장 큰 에너지 발현" 전문가들 “규제완화 출발점이 아니라, 제도적 기반과 지배구조 건전성 먼저 검증돼야"
[이뉴스투데이 전주영 기자] 은행법학회와 경제와정의포럼이 20일 은행회관에서 ‘공정거래와 금산분리제도의 정책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공동 개최한 세미나에서 금산분리 논쟁이 정면으로 다뤄졌다.
이날 발표에 나선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정부와 산업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금산분리 완화 요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교수는 “기술·AI 투자 명분을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특정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반도체특례법을 둘러싼 논의와 SK하이닉스 자본조달 이슈를 언급하며, ‘자본조달이 막혀 금산분리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현실과 다르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한국 기업집단의 출자구조를 예로 들며, 과거 규제완화가 특정 기업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졌음을 상기시켰다. 특히 SKC&C 지분 확대 과정, 벤처지주회사 제도 도입 등을 언급하며 “이전 규제완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집단이 누구였는지 이미 확인된 사례”라고 말했다. 즉, 금산분리 완화를 기술투자 전략으로 포장하지만 실질적 목적은 계열사 통제력 유지라는 것이 박 교수의 분석이다.
CVC 완화 요구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사내 VC 투자는 이미 제도적으로 가능한데, 회사 자금을 활용한 벤처투자까지 허용하라는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외부자금 유입을 꺼리는 이유를 “전략 노출 우려”로 설명하며, 결국 계열 자금을 동원해 벤처투자를 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피력했다.
또한 “한국은 대기업–스타트업 관계가 여전히 종속적이고 기술 탈취 논란도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금산분리를 완화할 경우 혁신 생태계가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책 추진 방식과 관련해선 “이전 정부의 규제완화 흐름이 현 정부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금산분리 완화 논쟁의 본질을 “특정 총수의 이해관계에서 출발한 요구”라고 규정하고, “금산분리는 금융안정과 지배구조를 지키는 마지막 장치인데 작은 구멍을 내기 시작하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금산분리 논쟁과 함께 CVC 제도·통계의 근본적 왜곡 문제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강신형 충남대학교 경영학부 부교수는 “한국은 CVC를 지나치게 좁게 정의하고 있어 실제 기업 내부의 전략투자 생태계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S&P500 기업 대부분이 사내 CVC 부서 중심으로 운용하는 점을 예로 들며 “한국처럼 독립 법인 형태만 CVC로 인정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정부 발표 통계와 실제 데이터 간의 괴리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2023년 중기부 CVC 통계는 사내 조직이 집행한 투자를 거의 반영하지 않아 과소 집계된 수치”라며 “정책 논의의 기반인 데이터부터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CVC가 재무적 투자 중심으로 운용되는 구조적 한계도 지적하며 “R&D·기술 협력 중심의 글로벌 CVC 생태계와 거리가 있다”고 했다.
김자봉 은행법학회 회장은 개회사에서 금산분리를 “비용과 편익의 엄격한 분석이 필요한 공공정책”이라고 규정했다. 김 회장은 “최근 대기업의 금융활동 규제 완화 요구가 제기되고 있지만, 슘페터적 기술 선도 성장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금산분리 완화인지에 대해서는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기술 선도 성장을 향해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R&D 혁신 공동체에서 하나 될 때 가장 큰 에너지가 발현된다”며, 이번 세미나가 생산적 논쟁과 R&D 혁신 공동체 조성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도 축사에서 “대기업 금융지배의 폐해는 이미 외환위기에서 확인됐다”며 “금산분리 완화는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 위원장은 “공정위는 독과점과 경제력 집중을 최소화하면서도 첨단산업 투자 생태계를 지원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규제완화를 둘러싼 단순한 찬반이 아니라, 정확한 데이터 확보를 출발점으로, 지배구조의 위험과 혁신 생태계의 취약성까지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술·반도체 투자 명분 속에 금산분리 완화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규제완화가 출발점이 아니라, 제도적 기반과 지배구조의 건전성이 먼저 검증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세미나는 은행법학회와 경제와정의포럼이 공동주최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강신형 충남대학교 경영대학교 교수가 발표자로 참여했으며, 사회는 정혜련 경찰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맡았다. 패널토론에서는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좌장으로,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본부장·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