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사람] 김수경 박사 “中희토류 공급망 리스크···해법은 ‘비축+리사이클’ 투트랙”

[인터뷰] 김수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 희토류 취약점, 원광 아닌 제련·영구자석···中 통제 땐 전기차·풍력 직격탄 재활용 세계 최고지만 대체·저감 선진국 반 수준···도시·해외 광산 투자 병행 “사서 쓰는 시대 끝났다”···기업 R&D 전환·희토류 전문 인력 양성이 관건

2025-11-11     노태하 기자
김수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 [사진=노태하 기자]

[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한국이 희토류 공급망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희토류 원자재가 아니라 중간재(소재·부품) 의존도다. 결국 영구자석에 쓰이는 정광이나 산화물 같은 중간재를 중국에서 들여올 수 없게 되면 전기차 모터 등 후단 산업 전체가 멈출 수밖에 없다.”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김수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는 한국의 희토류 공급망 리스크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김 박사는 “한국은 희토류 원광뿐만 아니라, 이를 정제·가공하여 만든 고순도 산화물이나 영구자석 같은 핵심 중간재의 9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며 “당장 호주나 베트남에서 원광을 가져와도 이를 제련하고 자석으로 만들 국내 인프라가 전무하다. 중국이 원광이 아닌 제련 기술이나 자석 완제품 수출을 통제할 경우 전기차 모터, 풍력 터빈 등 핵심 산업 전체가 멈출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취약점”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핵심 희토류 비축량의 증대, 중장기적으로는 희토류 관련 기술의 국가 R&D 투자 및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공공 비축 물량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중국의 수출 통제에 대비할 ‘완충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현재 약 100일분 수준인 핵심 희토류 비축량을 최소 180일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재활용과 대체기술 상용화를 추진하면서 해외 광산 투자 등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 특히 폐가전·폐자동차 등에서 희토류를 회수하는 ‘도시광산(Urban Mining)’ 기술을 즉시 지원하고 희토류 사용을 줄이는 저감·대체 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시광산’은 지하에서 캐는 광산이 아니라 폐가전·폐차·폐배터리 등 버려진 제품 속에 들어 있는 금, 구리, 니켈, 희토류 같은 금속을 다시 뽑아 쓰는 개념이다. 더 이상 쓰지 않는 제품을 폐기물이 아닌 ‘2차 자원 저장고’로 보는 것으로 자원 빈국인 한국이 해외 광산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 불안을 줄이는 데 중요한 전략으로 꼽힌다.

김 박사는 현재 대체·저감 기술 개발의 목적은 희귀한 네오디뮴 의존도를 줄이는 것으로 이를 통해 성능과 경제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체·저감 기술의 핵심 타깃은 네오디뮴(Nd)이다. 17개 희토류 중 가장 희귀하고, 제련 과정도 복잡해 에너지 소모가 많다. 하지만 이 원소가 들어간 자석은 고온에서도 강한 자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대체하기가 가장 어렵다. 그래서 프라세오디뮴(Pr), 터븀(Tb), 세륨(Ce) 등 비교적 풍부하고 다루기 쉬운 원소를 활용해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가장 큰 난제는 물성과 경제성 확보다. 네오디뮴 수준의 자기적 특성을 구현해야 하는데 대체 소재는 입자 크기 제어와 제조 공정에서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며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동일한 성능을 내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결국 앞으로의 기술 개발은 성능과 경제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네오디뮴(Nd)은 영구자석을 만드는 핵심 원소로, 상업적으로 쓰이는 자석 가운데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은 재료다. 같은 출력의 모터·발전기를 더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어 전기차 구동 모터, 영구자석형 풍력발전기, 로봇·가전·하드디스크 등 다양한 전자부품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이 때문에 미국은 네오디뮴을 청정에너지 기술 공급망의 ‘중요 소재(Critical Material)’로 지정하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도 네오디뮴을 포함한 희토류 자석 소재를 전기차·풍력 보급을 좌우하는 핵심 광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 [사진=노태하 기자]

김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희토류 3R(재활용·Recycle), 대체·Replace, 저감·Reduce) 기술 중 재활용 분야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대체·저감 분야는 아직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는 과제로 남아 있다.

그는 “한국은 희토류 재활용 기술의 경우 용매추출을 통한 분리·정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네오디뮴(Nd), 프라세오디뮴(Pr), 터븀(Tb) 등 원소를 각각 분리해내는 능력을 이미 확보했다. 일부 공정은 100점 만점에 100점에 가까운 수준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한국이 주도권을 가진 몇 안 되는 분야”라며 “특히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폐자석에서 99.9% 고순도의 희토류를 회수하는 공정 기술을 이미 확보했지만 아직 경제성과 규제 문제로 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 대체·저감 기술은 아직 독일·일본 등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현재 기초 연구 단계를 넘어 재료연구원(KIMS)이 비희토류 자석(Mn-Bi)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며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며 “이러한 기술이 본격 상용화된다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결국 재활용 기술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대체·저감 연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희토류 기술 자립의 완성형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박사는 한국이 희토류 자립화를 위한 기술 개발에 있어 산업 구조와 기술 역량 측면에서 분명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반도체, 전기차, 가전 등 희토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요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희토류 관련 기술이 개발될 경우 즉시 구매해 줄 확실한 내수 시장이 있다는 의미로 기업과 연구기관 모두에게 강력한 기술개발 동기가 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또한 국내에는 이미 막대한 양의 폐가전과 폐자동차가 축적돼 있어 이 자체가 하나의 ‘도시광산’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반도체·철강·석유화학 산업에서 축적된 정제 및 공정 제어 기술력이 더해진다면 희토류 재활용과 고순도 정제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그간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희토류를 직접 연구·개발하기보다 사서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해왔지만 공급망 불안이 커지면서 이제는 그런 전략이 통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대기업들은 그동안 연구개발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R&D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기보다 그냥 완제품을 사오는 게 빠르고 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중국이 수출을 제한하거나 가격을 올리면 ‘사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끝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박사는 희토류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관련 전문 인력 양성 역시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국내에는 희토류 제련·재활용을 담당할 전문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자원공학 관련 학과가 구조조정으로 대부분 사라져 인력 양성 기반이 거의 붕괴된 상태이며 이는 기술개발과 산업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수 대학에 남아 있는 자원공학·에너지자원공학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 동시에 희토류 재활용·소재 분야에 특화된 계약학과나 전문대학원을 신설하고 지질자원연구원(KIGAM)·재료연구원(KIMS) 등 국책 연구기관을 인력 양성 허브로 지정해 산업계와 연계한 실무형 전문 인재를 체계적으로 길러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