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톡] 전투기용 헬멧, 조종사의 ‘눈과 뇌’를 바꾸다

조종사 안전장구에서 상황 인식 장비로 발전 바이저에 다양한 정보 시현···KF-21에도 적용

2025-11-09     김재한 기자
F-35 전투기에 적용되는 3세대 헬멧장착디스플레이(HMDS). [사진=미 공군]

[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현대전 이전의 전투기 조종사 헬멧은 폭발, 피격, 탈출 상황에서 강풍과 파편, 충격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역할이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공중 전장은 다르다. 낮과 밤이 구분 없는 작전, 더욱 다양해진 위협,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장상황 탓에 조종사들에게 더 많은 정보처리와 빠른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과거 안전장구에 불과했던 헬멧은 이제 조종사의 임무수행을 돕는 필수장비로 자리잡게 됐다.  

4세대 전투기 시절까지 전투기 내부의 계기판과 ‘전방시현기(Head Up Display, HUD)’는 조종사의 주된 정보 소스였다. 하지만 조종사가 시선을 아래로 떼거나 HUD 바깥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정보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발생했다. 미사일 경고음, 전자전 위협, 항법 정보, 표적 추적 등 수많은 신호가 수시로 쏟아졌다. 상황 인식능력(situational awareness)이 몇 초만 떨어져도 조종사는 치명적 위협에 노출된다.

이 흐름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 바로 ‘헬멧 장착 디스플레이(Helmet Mounted Display, HMD)’의 등장이다. 1980년대부터 미군이 실전투입한 HMD는 조종사가 바라보는 시야, 즉 시선과 머리 각도에 따라 필요한 데이터를 헬멧 바이저에 실시간으로 투영해준다. F-16, F-15E, F/A-18 등 4~4.5세대 전투기에서 미사일 표적지정, 경고 신호, 아군·적군 위치를 전방·좌우 어디서든 직관적으로 확인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첨단 헬멧이다.

5세대 전투기를 대표하는 F-35의 ‘헬멧 장착 디스플레이 시스템(Helmet Mounted Display System, HMDS)’은 헬멧 기술의 정점이다. 기존 HUD마저 조종석에서 없애고 조종사 헬멧만으로 센서 융합 정보, 전 방위 시야, 적외선·전자전 데이터, 심지어 조종사가 볼 수 없었던 전투기 바로 아래 영상까지 실시간으로 헬멧 바이저에 투영한다. 이 덕분에 조종사가 비행 각도에 상관없이 위협, 표적, 장비 상태 등 전장 전반의 흐름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로 조종사 ‘판단’ 체계의 혁신이다. 이전에는 인간의 뇌가 모든 정보를 직접 분별해 판단했다면, 지금은 컴퓨터 시스템이 1차로 가공해 즉시 필요한 정보만 조종사에게 보여준다. 전투기의 고속기동, 높은 중력가속도 환경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피로를 크게 줄이고, 움직이는 시야를 곧바로 데이터로 변환하는 새로운 감각이 조종사 경험 전체를 바꾸고 있다.

헬멧장착디스플레이를 착용하는 KF-21 조종사. [사진=방위사업청]

한편, 국산 전투기인 KF-21에도 이 같은 첨단 헬멧이 적용된다. 이스라엘 방산기업인 엘빗 시스템이 개발한 ‘헬멧 장착 조준시스템(Joint Helmet Mounted Cueing System, JHMCS) II’은 조종사의 머리 방향과 시선에 따라 미사일·센서·레이더 등이 동기화돼 조종사가 바라보는 곳을 즉시 표적으로 지정하고 즉각적인 무장 운용이 가능하다.

특히 고해상도 컬러 디스플레이와 광각 시야각, 주야간 모드 전환, 야간투시경(NVG) 완전 호환 기능을 갖춰 어떤 기상과 임무 환경에서도 탁월한 가시성·상황인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첨단 헬멧은 오늘날 전투의 본질까지 바꾸고 있다. 과거엔 눈이 빠른 조종사, 판단이 빠른 에이스가 우위였다면 지금은 최적의 데이터를 받는 조종사가 임무, 생존, 전투의 승리를 결정하고 있다. 특히 향후에는 ‘조종사의 두뇌와 감각 확장 플랫폼’으로 발전해 공중전의 핵심 장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