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림 칼럼] 전기차, 싸게 만들어 ‘캐즘’을 돌파하자
한동안 급성장하던 전기차(EV) 시장이 최근 ‘캐즘(Chasm, 성장 정체 구간)’에 직면했다. 중국 BYD, 독일 BMW, 현대차·기아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전기차 붐을 타고 질주했으나 성장세는 주춤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업체들은 대규모 해외투자까지 미루는 등 타격을 입고 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HEV)에 집중해 온 도요타는 전기차 수요 위축 국면에서 선두를 달리며 역설적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HEV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가 장기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탄소 배출 없는 ‘Zero Emission’ 차량이며, 내연기관과 절충형 하이브리드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이미 EU,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15~20년 내 내연기관 신차 등록을 금지하고, 전기차·수소차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환경 현실은 더욱 절박하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만년설이 사라지고 있다. 홍수·태풍·산불·폭설 같은 기후재해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며, 생태계는 무너지고 먹이사슬은 붕괴되고 있다. 전기차·수소차 같은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비싸다는 점이다. 충전 편의성과 안전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누구나 살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이 보급의 열쇠다.
따라서 글로벌 메이커들은 당장의 시장 위축에 흔들리기보다, 저가·실속형 전기차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원가 절감 여지가 크다. 부품 수만 해도 약 1만개, 내연기관차 대비 3분의 1 수준이므로 제작비·노동력·자재비 모두 줄일 수 있다.
따라서 강한 의지와 생산 효율화를 통해 20~30%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당분간 정부의 보조금·세제 지원, 노조와 근로자의 협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강력한 의지다. 초기 개발비와 규모의 경제 미비를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비전 있는 기업의 자세가 아니다.
전기차는 원래 소수의 고급 소비자를 위한 차종이 아니라, 대중의 차·서민의 차로 개발된 것이다. 전기차는 싸게 만들 수 있다. 싸게 만들어야 팔리고, 팔려야 보급이 확산된다.
그래야만 이 지긋지긋한 ‘캐즘’을 돌파할 수 있고, 그것이 곧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