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기차 진단, 어디까지 와 있는가?
2024년 말 기준, 국내 전기자동차 등록 대수는 68만대를 넘어섰다. 친환경 정책과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전기차 모델 출시, 그리고 소비자 인식의 변화가 이러한 보급 확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바로 ‘전기차 진단’의 문제다.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할 새로운 주력 이동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금, 중고차 시장에서도 전기차의 거래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현재 연간 2만4000대 이상이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2025년부터는 완성차 업체들이 전략적으로 운영해온 전기차 리스 및 렌트 차량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유입되면서 그 수는 급격히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중고 전기차를 진단할 수 있는 법적 제도와 기술 기반은 여전히 초보적 수준이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성능상태점검제도는 내연기관 차량에 맞춰 설계된 체계로, 전기차의 핵심 부품과 고유한 작동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성능점검 기록부에서도 전기차 관련 별도 진단 항목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단을 수행하는 현장에서도 배터리만을 부분적으로 확인할 뿐, 전기차 구동계 전반에 대한 정량적 진단 체계는 마련되지 않았다.
특히 전기차에서 가장 고가 부품인 배터리는 진단의 핵심임에도,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전기차는 배터리 상태를 나타내는 SOH(State of Health)조차 측정되지 않은 채 판매되고 있다. 배터리의 잔존 용량 외에도 셀 간 전압 편차, 셀 온도 차이, 절연 저항 상태 등 복합적인 진단이 이뤄져야 하나,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요구하는 유통구조는 아직 없다.
더욱이 SOH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셀 불량이나 케이스 파손 등으로 인해 안전성이나 실질 주행 가능 거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단편적 수치에 의존하는 진단은 소비자에게 위험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장비와 시스템의 부재에서도 비롯된다. 대부분의 전기차는 제조사 고유의 진단 프로토콜을 사용하고 있어 범용 스캐너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며, 테슬라와 같이 자사 정비망을 통해서만 진단이 가능한 구조도 존재한다. 결국 민간 진단업체나 중소 정비소에서는 전기차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전기차 진단은 내연기관 차량과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전기차에 특화된 진단 기준이 정립되어야 하며, 최소한 배터리 SOH와 더불어 셀 상태, 절연 상태, 충방전 사이클 수, 고전압 배선 계통 이상 여부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이 같은 진단을 위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장비의 국산화 및 표준화도 시급하다. 배터리 진단의 경우, 차량 정지 상태에서의 수치 분석은 제한적일 수 있으므로, 충전 또는 고출력 가속 환경에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이 병행돼야 한다.
배터리 외에도 구동 모터, 인버터, 감속기, 완속충전기, 직류변환장치(DC-DC 컨버터) 등 전기차의 핵심 부품군에 대해서도 자가진단 혹은 외부 진단 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며, 특히 고장이 잦은 충전구, 고전압 커넥터, 배터리 케이스 파손 여부 등은 화재와 직결될 수 있어 우선적인 진단 항목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전기차의 화재 위험성을 고려할 때, 단순한 점검 수준을 넘어선 ‘안전 진단’ 체계가 필수다. 국토교통부를 포함한 관련 부처는 전기차 진단 기준을 조속히 정립하고, 수입차량(특히 테슬라 및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서는 진단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명문화해야 한다. 아울러, 전기차의 배터리 성능은 주행 중에 더 정확히 파악 가능한 만큼, 일정 조건 하에서의 실시간 주행 진단 장비 설치 및 활용에 대한 기준도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전기차 진단의 기준 수립과 장비 보급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소비자 보호와 국민 생명 안전이라는 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중고 전기차 시장이 성숙해지기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이 과제를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풀어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