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강봉균 장관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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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강봉균 장관을 떠나보내며
  • 임혁
  • 승인 2017.02.0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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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보내드리고 왔다. 영정 속 강 장관은 특유의 개구쟁이 같은 눈웃음으로 그를 떠나보내는 자리에 모인 이들을 맞았다. 그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더했다.

기자가 강봉균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90년 한 TV 시사토론 방송에서였다. 그 해 세제개편안을 놓고 강봉균 당시 경제기획원 차관보와 김용진 재무부 세제실장이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모 언론사 주필과 경실련에 참여한 L 교수가 정부 안에 대해 비판하는 형식이었다.

토론 도중 L 교수가 근거가 약한 논리로 정부 안을 계속 비판하자 강 차관보가 일갈했다. “교수님은 이런 토론에 나오려면 공부 좀 하고 오세요.” L 교수는 얼굴이 벌개졌지만 통계 수치를 앞세운 강 차관보의 조목조목 반론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이렇게 각인된 강 차관보의 인상은 단단한 차돌맹이 같은 이미지였다.

기자가 그를 실제로 만나게 된 건 1993년 초 경제기획원을 출입하면서부터였다. 선배 기자는 “기획원에 가면 강차(기자들이 부른 애칭)부터 만나 봐”라고 조언했다. 첫 만남에서 강차는 TV에서와는 다른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는 친근감을 주는 말투로 “임 형은 경제지표 중에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자가 성장률 물가 수출 등을 머리에 떠올리는 중에 그가 먼저 ‘고용’이라는 답을 내놨다. “국민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일자리”라는 설명과 함께. ‘성장 없는 고용’이 화두가 된 요즘 새삼 곱씹어 보게 되는 그와의 첫 문답이었다.

얼마 뒤 강 차관보는 갑자기 대외조정실장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차관 승진이 예상되던 그로선 뜻밖의 인사였다. 그 배경에 대해 기획원 내에서는 “강차가 박 수석을 들이받아서”라는 얘기가 돌았다. ‘신경제 5개년 계획안’에 금융개혁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강 차관보의 주장을 박재윤 경제수석이 수용하지 않자 “그렇다면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라”라며 일종의 사보타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사람을 따라 다닌다’라는 말처럼 그의 새 보직은 더 중요하면서도 골치 아픈 자리가 됐다. 정부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실무대표단장을 맡게 된 것.

당시 최대 이슈는 쌀 시장 개방 문제였다. 농민 단체 등에서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었고 김영삼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을 지키겠다”고 공약한 판이었다. 하지만 실제 협상의 흐름에서는 쌀 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어느 날 모 석간신문에 ‘일본 쌀 관세화(시장개방) 수용키로’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일본을 비롯, 전 세계 언론이 인용 보도하는 세계적 특종 기사가 됐다.

중요한 사실은 이 보도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쌀 시장 개방 불가피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최종 협상결과는 주지하는 대로 ‘최소시장 접근 방식으로 시장을 개방하되 유예기간을 둔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당시 그 특종 기사를 강봉균 실장이 의도적으로 흘린 게 아닐까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장 개방 압력에 우리보다 일본이 먼저 손드는 그림을 만들어 국내에서의 반대 여론을 다소라도 누그러뜨리고 국회 비준 과정에도 대비하려는 의도였다고 보는 것이다. 관료 세계에서 그의 별명이 ‘꾀 주머니’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그는 노동부 차관과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실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쳐 DJ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특히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그가 수행한 경제수석으로서의 역할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막중했다. 그가 아닌 다른 인물이 경제수석이었다면 경제부처 간의 정책 조율이 그만큼 매끄럽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당시 정부에 참여했던 관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그래서였을까. 조문 첫날 빈소에서 만난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강 장관의 딸 보영 씨에게 “너희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정말 대단한 일을 한 분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한 분이었는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크게 깨닫게 될 거다”라고 위로했다. 진 위원장의 말이 의례적인 위로의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평가였다고 공감하며 다시 한 번 고인의 영전에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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