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신동호 기자] 설 연휴가 끝나고 본격적인 일상으로 돌아왔던 2월의 첫 날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인력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상징적 서민층'인 일용직 노동자들의 밥벌이를 책임지는 곳이다. 날이 춥고 경기가 어려울수록 힘든 이는 서민이다. 최근 날씨는 얼어붙은 경기를 대변하는 듯하다. 춥고 어려운 현재, 인력시장의 분위기가 궁금해졌다.

1일 새벽 4시쯤 도착한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엔 아직 발길이 뜸했다. 듬성 듬성 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 근처 한 인력사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인근 행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일용직으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중 20대로 보이는 한명이 연변사투리로 친절하게 답을 해줬다. "시다(건설현장 보조) 하려면 사무소 가야 돼요. 4시 반에 문 엽니다."

인력시장의 새벽, 역 출입구 부근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사진=신동호 기자>

4시 반쯤 되자 비로소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러는 미리 약속이 돼 있었는지 어디선가 온 승합차를 타고 먼저 장소를 떠났다.

젊은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남구로역 앞에 모인사람들은 대부분이 50~60대 이상은 돼 보였다. 그들은 서로 안면이 있었는지 인사를 나누며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천막이 쳐졌다. 저마다 입고 있는 조끼에는 '볼런티어'(volunteer)라고 쓰여 있었다.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가운데 난로를 두고 따듯한 차와 커피 등이 놓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기 위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줄지어 늘어섰다.

4시 45분이 되자 역 입구 뒤편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에게 "춥지 않느냐"고 묻자 "추운 게 대수냐. 그래도 일 못해서 밥 못 먹는 것보단 낫지 않냐"고 되물었다.

일주일에 며칠 정도나 일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 "겨울은 여름 절반 수준이다. 여름엔 일이 계속 생기지만 겨울엔 새 일감이 없다. 기존에 있던 일을 이어서 하는 정도"라고 답답해 했다.

그는 이어 "기공(기술공)들은 중국 동포가 많다. 돈 많이 벌어가는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다. 우리 조공(단순 노동자)들은 많이 못 번다"며 아쉬워 했다.

중국 동포가 밀집해 있는 남구로역 4번출구 건너편. <사진 = 신동호 기자>

이곳에는 조공과 기공이 있다고 했다. 조공은 튼튼한 몸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기공은 철근, 형틀·목수, 미장 등 특정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다. 조공과 기공의 실제 수령가능 액수는 각각 8~10만원, 13~15만원정도다.

조공 초보자의 경우, 인력사무소에서 10%, 정부에서 요구하는 세금 1000원~2000원, 담뱃값 등을 빼고 나면 하루 일당 6~8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다고 했다. 몸을 축내며 버는 액수임을 감안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못된다.  

최근 건설경기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60살 이상은 돼 보이는 김모씨는 "요즘 정치상황 알지 않나. 그런 것 때문에 건설경기도 별로인 것 같다. 땅이 얼어서 삽도 안 박힌다"며 "특히 2월은 일수가 적어 걱정이다. 작년 2월에도 11일정도 밖에 일을 나가지 못했다"고 푸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 남성이 얘기에 끼어 들었다. 그는 "경기는 상관없다. 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어영부영 해선 안 된다.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들이나 이런 일 하지 요즘 누가 이런 일 하나"고 따져 물었다.

그는 경기 상황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탓하는 듯 보였다. 열심히 하면 모두 300 만원 이상은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을 못 버는 사람은 그만큼 게으름을 핀다는 얘기다.

5시 5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쪽은 6시가 넘어가면 거의 '파장 분위기'라고 했다. 일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아가고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답답한 표정으로 사무소 직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6시가 넘어 갈 때 쯤 일용직으로 10년간 일했다는 박모(58)씨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벌이가 괜찮냐"는 질문에 "단가가 안 맞는다. 중국동포들이 많이 들어와서 임금이 안 올랐다"며 "그래도 일하려고 하면 벌수 있다. 매일 나와서 열심히 하면 돈 못 벌겠나"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또 "근데 일이 힘들지 않나. 베테랑도 사실 무척 힘들다. 새벽에 일찍 나가 늦게 들어간다"며 "아침에 별보고 나와 별보고 들어가는 게 이 일"이라고 털어놨다.

이때 그는 건너편을 가리키며 중국 동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 단가가 안 오른다. '불체자'(불법체류자)가 많다. 단가가 안 맞으니까 우리 일자리를 점점 뺏기고 있다."

이 대목에선 정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불체자가 20만9000명이라더라, 제주도에만 5000명이 있다는데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2011년~2016년 불법체류 외국인 현황 <표=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이뉴스투데이 취합>

실제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2월 기준 국내 체류외국인 204만9441명 중 불법체류자 수는 20만8971명이다. 정부의 국내 체류 외국인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 한국계 중국인은 62만7004명으로 전체 체류외국인의 4분의 1을 넘는 수준이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재작년에 금천구 아파트 건축현장에 출입국 관리사무소직원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고 했다. 당시 그쪽에서 25인승버스 두 대를 가져왔는데 현장에 있던 사람들로 버스 두 대를 꽉 채워갔다는 것이다.  

그는 "큰 현장이라도 지속적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힘줘 얘기했다. "가격경쟁력이 중국동포에 비해 낮기 때문에 일이 안 잡히고, 그러다보니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 부처에서 사회 하층에 대한 신경을 너무 안 쓴다"면서 "건설사에서 100명이 할 일을 70명을 뽑고 100명분 일을 시킨다. 그런 식으로 줄어든 건설비용을 우리한테 떠넘기니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번 명절도 외롭게 보냈다고 했다. 보통 '잡부'들은 가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데다, 벌이도 일정치 않다보니 집안이 화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와 얘기를 마치고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이던 곳을 다시 찾았을 땐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마지막 희망'을 찾아 사람들이 보였다.

40여 개의 인력 사무소가 밀집해 있는 서울 남구로 일대는 하루 평균 2000여명이 모여든다. 요즘같이 비수기엔 이중 절반 정도만 일터로 나갈 수 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오후 6시 이후에 사람을 구하는 야간작업을 찾거나, 그마저 없으면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인력시장은 파했으나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최후까지 남아 마지막 희망을 기다린다. <사진 = 신동호 기자>

취재를 마친 시각은 오전 8시. 대부분 출근길 직장인들이 전철에 오르는 시간이었다. 분주하게 출근길을 걷는 많은 직장인들 사이로 그들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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