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지금으로부터 꼬박 7년 전인 2009년1월15일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대검 중수부 역사에 오점을 남긴 날이다. 중수부에 의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복역 중이던 변양호 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 이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 후 그의 변호를 맡았던 노영보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판결은 신빙성 없는 진술만으로 수사를 하고 유죄를 인정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는 사회적 의미가 담긴 판결이다. 뇌물죄 수사 관행에 경종을 울린 대법원의 판단에 경의를 표한다.”

그가 지적한 뇌물죄 ‘수사 관행’은 훗날 변 전 국장이 저술한 ‘변양호 신드롬’에 소상히 적시돼 있다. 뇌물을 줬다는 진술의 신빙성을 부실하게 조사하고, 피의자에게서 원하는 진술이 나오지 않으면 별건 수사로 약점을 캐 협조를 유도하고, 구속 이후 추가 기소를 통해 원하는 진술을 압박하는 등등…변 전 국장이 검찰 조사를 받으며 겪은 생생한 경험담이다.

당시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하는 이유에 대해 “변 전 국장이 금품 로비를 받았다는 유죄 부분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주목해야 할 법정 용어가 바로 이 ‘합리적 의심’이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제기하고 있는 뇌물공여 혐의에도 합리적 의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는 삼성이 미르ㆍK스포츠재단과 최순실 씨 일가에 제공한 430억 원의 성격이다. 특검은 이 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는 대가였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합병과 돈이 실제 오간 시점의 선후 관계 등을 따져보면 특검이 주장하는 대가성에 합리적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기업과 정치권력 간의 힘의 관계를 감안할 때 그렇다. 기업이 먼저 자신의 청탁이 성사되는 지를 지켜 본 후 나중에 돈을 건네는 식의 ‘후불제 뇌물(?)’은 보편적 상식에 어긋난다. 그보다는 청와대의 요청에 압박감을 느껴 지원하게 됐다는 삼성 측의 해명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특검이 삼성 측의 금전지원이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것이라고 규정한 부분 또한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다. 우선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이익 공유 정황을 현 단계에서는 단정할 수 없다. 별도의 재판을 통해 다퉈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 설사 박 대통령과 최 씨의 이익 공유 관계가 인정되더라도 삼성이 돈을 건넬 때 이를 알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삼성이 몰랐다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논리 자체가 허물어진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이처럼 합리적 의심을 강조하는 것은 변양호 전 국장 같은 ‘사법 피해자’가 또 나와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다. 변 전 국장은 2006년6월 뇌물수수 혐의로 긴급체포 된 후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142회의 재판을 받았고 292일 동안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 중수부장이 지금의 박영수 특검이다.

임혁 편집인 lim54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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