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세정 기자]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가 제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 자동차업계와 철강업계가 직격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강조하고 있는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극단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와 철강 산업의 향후 전망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 '우려'가 '현실로'…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9일(한국시간) 진행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제치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선거인단제'라는 간접선거제도를 따르고 있다. 선거인단은 50개 대표주와 수도 워싱턴 콜럼비아 특구의 538명의 선거인으로 구성된다. 대선 후보자는 선거인표의 과반수인 270표 이상을 획득하면 당선된다.

이번 대선에서 선거인단 288명을 확보한 트럼프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며 힐러리(215명 확보)를 밀어내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국이익 우선과 보호무역, 고립주의를 강조해 왔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해서 트럼프는 '미국의 일자리를 좀먹는 조약'이라는 강력한 비판과 함께 재협상이 필요성을 수차례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시대가 개막됨에 따라 전문가들은 한미 FTA 재협상은 물론, 수입 규제가 대폭 강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러스트 벨트' 부활 예고한국 자동차 수출 규제 '강화' 전망
트럼프 당선에 따라 가장 우려되는 업종은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산업이다.

트럼프는 유세기간 동안 자동차 등 주요 공산품을 생산하던 중서부 공업지업인 '러스트벨트'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인디애나, 켄터키,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등의 주(州)로 이루어진 러스트 벨트는 과거 미국산업의 근간이자 대표적인 제조업 지역이었다.

하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한미FTA 등의 미국이 체결한 여러가지 협정으로 경쟁력을 상실했고 활기를 잃어갔다.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 계층을 대상으로 "미국 내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고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대통령 당선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러스트 벨트의 부활'을 위해서 트럼프가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무역정책을 펼치겠다는 행보는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138만8000여대를 판매했다. 이는 국내외 총 판매량 801만5000여대의 18%에 해당하는 수치다. 국내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 물량은 각각 44%, 63%를 차지한다.

특히 지금은 한미 FTA에 따라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에는 관세(한미 FTA 체결 전 관세 2.5%)가 부과되지 않지만, 트럼프가 이를 수정해 관세를 붙인다면 한국산 자동차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관계자들이 지난 9월 7일(현지시간) 기아차 멕시코공장 준공을 기념해 K3(현지명 포르테)에 기념 서명을 하고 있다.

가장 우려가 높은 것은 기아차가 최근 준공한 멕시코 공장이다. 기아차는 지난 9월 연간 40만대 규모의 멕시코 현지공장을 설립했다. 이미 5월부터 준중형자 K3(현지명 모르테) 생산을 시작해 공장을 가동 중이다.

기아차는 글로벌시장 접근성이 높은 멕시코 공장을 활용해 생산량의 20%는 멕시코 현지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80%를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트럼프가 멕시코산 생산품에 대한 수입 과세를 35% 수준으로 부과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해 온 만큼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또 미국 고급차 시장을 노리고 있는 현대차의 제네시스에도 걸림돌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제네시스 G90(국내명 EQ900)와 G80 모두 울산공장에서 전량 생산하는 만큼, 수출 제약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자국 최우선주의'에 발맞춰 미국에서의 수출은 비교적 쉽게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수입차 업체들은 뜻밖의 호재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한국으로의 수출량을 더욱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FTA에 따라 한국으로 들어오는 미국산 차는 무관세다. 이에 따라 수출물량을 늘리도록 트럼프가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또 미국 내 제조공장을 가지고 있는 일본차와 독일차 업체들도 수혜 대상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완성차업체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조심스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미국시장 전략을 수정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태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이사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국내 자동차 산업이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세기간 동안 주장한 내용들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되기는 힘들 것"이라며 "실제로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난 이후에 실제로 어떤 통상 정책들이 나오는 지 주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보호주의 성향 짙은 철강산업, 보복관세 우려
철강업계 역시 '트럼프 패닉'에 휩싸이고 있다. 철강산업은 미국에서도 보호주의 성향이 강한 업종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 수출량은 전체 13% 내외에 불과하지만 상대적으로 마진이 높은 시장으로 분류된다.

자동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를 되살리기 위해 한국 철강제품 수입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등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은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며 한국은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의 철강제품에 대한 규제를 높여왔다.

지난해 7건, 올해만 4건의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실시한 미국은 한국산 열연·냉연 강판 등에 최대 60%의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이 여파로 지난달까지 대미 철강 수출은 금액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 가량 감소했다.

코트라가 9일 발표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경제·통상정책 방향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철강산업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코트라가 인터뷰한 미국 현지 기업들은 트럼프 집권 이후에 자국 제품 이용을 의무화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규정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철강업계와 관련된 반덤핑 등 무역규제는 18건이다. 트럼프 당선에 따라 최종 판정이 나지 않거나 기존 판정 재심 중인 경우, 국내 철강업계에 불합리한 판결이 나올 확률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철강업체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 발빠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의 관세 부과 체계가 주관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높아 국내 업체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트럼프의 당선이 사상 최악의 수주절벽을 겪고 있는 조선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트럼프가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을 주장한 만큼 반사이익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세계 3대 석유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유전 및 천연가스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경우 국내 조선업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반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에 따라 수출시장이 침체되고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선박 수요 위축이라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란 잿빛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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