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미를 장식했던 한 드라마의 흥행은 추억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을 대중이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드라마 방영이후 감각적인 최신 곡들을 밀어내고 노래방에서 10대들의 마음까지 점령해버린 드라마 OST 속 많은 옛 노래들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88년을 그리워하는 것만큼 20년 후엔 2016년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그 때만큼 그리워할 사람냄새가 남아있을까? 오랜 시간 최고의 자리에서 대중을 울리고 웃게 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킬만한 자타공인 최고의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 해답을 찾아본다.

 

Talk? Talk!

"왜 음악에 축구에 열광해? 그건 인간의 본능이거든. 스포츠나 음악이 행복을 느끼는 직접적인 방법이 되는 거죠.

"짐승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열광하는 걸 찾고 그런 열광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투자가치가 있는 것도 생기는 거고 거기서 직업도 만들어지고 돈도 되는 거지.“

 

 

변진섭은?
1987년 <홀로 된다는 것>을 부르며 가수로 데뷔한 변진섭은 다음 해 1988년부터 1990년까지 3년 연속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는 등의 놀라운 기록을 남기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았으며 1993년엔 KBS가요대상본상수상 외에도 타방송음악순위프로그램 1위를 차지. 최고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최고의 가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시작을 장식한 ‘새들처럼’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너에게로 또다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희망사항 등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불리는 명곡들이다. 역대 최고의 청취율을 남긴 KBS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부터 수많은 DJ경력을 자랑하는 변진섭은 현재 <판타스틱듀오> <히든싱어> <무한도전 못친소> 등의 다양한 TV프로그램들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Q: 얼마전 <판타스틱 듀오>에서 감성적인 노래로 엑소의 백현씨를 소름끼치게 하셨어요. 요즘 방송 많이 하시죠? 어떠세요?
A: 드라마 <응답하라 1988> 특수로 방송이 많아지긴 했죠. <히든싱어> <판타스틱듀오> 참 기억에 남는 출연자분들과 기억에 남는 방송이었어요.

Q: 변진섭씨의 노래 <새들처럼>이 인기 드라마<응답하라 1988>의 첫 장면을 열었었죠. 혹시 드라마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보신 적이 있다면 등장인물들 중에 본인을 가장 닮은 캐릭터가 누구인가요?
A:‘고경표’가 그래도 가장 잘 맞지 않나 싶어요. 공부도 잘하고 엄마에게 잘하는 타입의 아들. 노래하기 전까지는 부모님 속을 썩이는 일 없이 자랐었죠.

Q: 부모님 속을 썩이셨다면 가출이라도 하신 건가요?
A: 성적이 떨어졌죠. 가출은 생각도 못 했었죠. 아버지가 무서우셨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때리시는 것도 아닌데 존재 자체로 무서우셨어요. 참 희한하죠? (웃음)

Q: 학창시절 무서우신 아버지 때문에 노래는 생각도 못 하셨겠네요?
A: 몰래 밴드를 했어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노래로 나름 유명하기도 했고…. 고등학교에서는 이글스, 딥퍼플, 레드제플린, 송골매형들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탈무드(경희대그룹사운드)에서는 레드제플린, 게리무어, 나자레스 이런 것들도 많이 했고….

Q: 학창시절 밴드만 보면 락커가 되셨어야 할 것 같은데요
A: 친구들이랑 합주할 땐 그랬지만 혼자 있을 땐 빌리조엘의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Q: 만일 변진섭씨가 요즘 10대를 살고 계신다면 어떤 타입의 가수를 꿈꾸셨을까?
A: 그래도 발라드를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난 발라드로 데뷔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밴드 아니면 음악을 할 수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룹 곡들을 했던 거죠.

사실 기자에게 변진섭씨는 까마득한 탈무드 보컬 선배님이다. 변진섭씨가 5기 보컬이었고 기자는 11기 보컬이었다. 풍문으로 들어온 변진섭 선배님은 무너져가던 탈무드를 일으켜 세운 전설 속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

Q: 전해 듣기로는 변진섭 선배님께서 외부 공연 다니며 번 돈으로 다 기울어져 가던 탈무드를 살리셨다고 선배님들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A: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악기도 사라지고 4기가 흐지부지 흩어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5기 멤버들이 텅 빈 연습실에 사비를 털어 악기도 사고…. 그래요. 살리긴 했죠. 제가 한 게 아니고 우리 5기가 의기투합해서 이뤄낸 거죠.

Q: 그런데 굉장히 지저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좀 씻는 걸 싫어하시나요?
A: 아니 누가? 저 얼마나 깨끗한 사람인데요. 그때야 밤새 합주하다가 시청각실에서 자고 그랬으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밤새 합주하고 수업 듣고 다시 모이고 했으니까. 학교에서 양치 세수하고 며칠씩 밤을 새우고 시청각실 커튼 뜯어서 이불로 덮고. 그건 애정이 있었던 거라고 해야겠지.

Q: 집에도 가지 않고 합주하게 하는 밴드음악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A: 같이 한다는 것에 많은 시너지가 있죠. 나 혼자 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맞춰보는 것. 그러니까 싱크로나이즈드가 함께 하나의 동작을 맞춰 예술적인 활동을 하듯 여러 악기가 합주를 통해 하나의 곡을 완성해 가는 느낌에 굉장한 희열을 느끼죠.

Q: 프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함께 했던 밴드가 아쉽지는 않았나요?
A: 늘 내 밴드가 있었어요. 요즘 솔로 가수들과는 좀 다르죠? 더 근사한 악기로 더 근사한 실력자들과 만든 밴드였어요. 지금까지도 쭉 콘서트를 메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학창시절 밴드가 아쉽지는 않았죠.
하지만 그야말로 추억 돋는 거죠. 옛날엔 좋은 환경이 아니어도 이렇게 했다. 하는 유년의 그리움 같은 건 분명 있죠.

Q: 방송에서도 최선을 다하시지만, 콘서트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변진섭씨의 마음을 아시는 걸까요? 팬분들이 콘서트를 찾는 이유가 뭘까요?
A: 팬들과의 소통의 습관 익숙한 습관인 것 같아요. 팬들도 공연의 구성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나 혼자만 하고 사람들은 듣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죠.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지층이 여러 가지 작용 때문에 쌓여 완성되듯 꽤 오랜 시간 그려진 풍경이라 생각돼요. 저와 관객들이 함께 누리는 호흡은 콘서트만의 기쁨이죠.

Q: 변진섭 콘서트에만 있는 나만의 무대매너가 있으세요?
A: 공연 때는 방송에서 짧은 동선의 그 틀을 깨고 팬들과 함께하죠. 그때그때 필에 따라 팬들의 손을 잡고 노래도 하고 무대에 걸터앉아서 할 때도 있고
즉흥적으로 필에 충만해서 하다 보니 우리 팬들은 그런 자연스러움에 더 매력을 느끼고 편안해 하시는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것을 꿈꾸었고
제일 좋아하는 것을 제일 좋아함으로
꿈을 이루었다.
평생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며
살고 있는 그야말로
진정 성공한 자가 아닐까.

Q: 성공하셨다고 생각하세요?
A: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저는 거지처럼 살아도 음악만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치고 혼자 음악에 빠지면서 공부는 싫어지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음악은 놔야하는 것이란 생각에 오히려 더 큰 갈증이 있었어요.
그때는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성공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음악이 너무 좋으니까 거지가 돼도 음악을 하고 싶단 생각 멈출 수 없었어. 객관적인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거지처럼 안 살면서도 음악을 하며 사니까 성공했다 생각해요.

Q: 돈이란?
A: 돈이 몇천억 있다고 가정해볼 때 그건 숫자에 불과해요. 하루하루가 모여 내 인생이 되는 건데 사는 걸 재밌게 해줄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거지로 살아도 노래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던 노랜데요 그런 노래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A: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귀찮아진 순간이 있었어요. 다른 내 길을 찾아볼까 호기심도 생겼던 때가 잠깐, 정말 잠깐 있었어요. 2000년대 결혼 이후.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고 나를 정신 차리게 해준 건 역시 팬이었어요. 그때가 미니홈피 유행할 때에요. 매니저가 깔아준 미니홈피에 팬들이 들어오면서 오빠를 잊고 있었다. 나에겐 오빠가 있었지. 지금까지 오빠 노래를 듣고 있다. 오빠 공연에 가고 싶다. 이런 팬들의 글을 보면서 아~ 내가 잠시 딴생각을 했다고 했죠. 그리고 다시 앨범을 냈어요.

6년 만에 10집 앨범으로 그는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이젠 절대 뛰지 않을 겁니다. 대신 천천히 꾸준히 걷겠습니다.”
“밀리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는 그런 음반을 만들고 싶어요.”

Q: 10집 앨범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기억해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했을 것 같은데요. 가수로서의 보람 있으시죠?
A: 그게 결국은 나를 위한 삶인 거죠. 팬들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아요.
가수로서의 보람은 이럴 때 더욱 느끼는 것 같아요.
제 노래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 혹은 병이 나았다. 삶이 달라졌다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나의 존재감을 많이 느끼죠. 우울증을 고치고 새 삶을 찾았다는 분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럴 때면 더 열심히 마음을 담아 노래해야겠다고 생각하죠.

Q: 그리고 얼마 전 8년 만에 12집 앨범이 발표되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직접 쓰신 곡으로 활동 중이세요. 앞으론 싱어송라이터로서 변진섭만의 색깔을 더 강화해가시는 건가요?
A: 작곡은 늘 해왔던 거예요. 늘 하긴 했는데 항상 남들한테 받은 곡들이 더 좋아서 내 곡으로 타이틀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지. 그런데 이번엔 받은 곡들이 내가 쓴 것보다 더 좋은 게 없어서 내 노래가 타이틀곡이 된 거예요.

Q: 보통 가수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엄청난데 변진섭씨는 변진섭만의 색깔을 지켜나가시려고 더욱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음악부터 외모까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내 음악을 얼마나 했다고 변화를 주겠어요. 내가 죽을 때까지 한 장르로 가도 세상엔 여러장르가 존재하고 있어요. 각자 제일 잘하는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발라드가 그리우면 이 사람 노래를 듣고 그런 댄스가 필요하면 그 사람 노래를 들으면 되잖아요. 헤어스타일정도나 바뀌면 좋지 않을까요. (웃음)

Q: 본래 성격은 어떠세요?
A: 욕심 없어요. 그리고 조금 게으른 편인 것 같아요. 가장 욕심내는 건 콘서트에 관한 일들이고, 가장 부지런하게 하는 건 음악 일이죠. 곡을 쓰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하고 콘서트 준비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하죠.
예민한 면도 있고 민감한 면도 있는데 그런 건 모두 감성적인 면에서 그렇죠. 음악에 관한 것 빼고는 다 귀찮아하죠.
 

1994년도 싱크로 나이즈드 스위밍 금메달리스트인 아름다운 띠동갑 아내와 태권도와 수중발레에서 두각을 보이는 귀여운 두 아들을 보면 변진섭씨에게 욕심이 없다는 말보다는 더 욕심을 부릴 필요를 못 느낀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Q: 사모님 직업이 특별하세요. 언남초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감독님이시고 국제 심판으로 활동하시는데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A: 아는 후배랑 같이 밥 먹는 자리에 함께하고 그 뒤로도 여러 번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되고 친해지게 되었어요.

Q: 굉장한 미인이시던데 한눈에 반하셨나요?
A: 그런 건 아니지만, 인상이 참 좋았어요. 보면 볼수록 참해 보이고 순진하고 결혼해야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두 아들 키우면서 변하더라고요. 조폭으로 보일 때도 있어요. (웃음)

Q: 아빠의 재능을 쏙 빼닮은 아들이 있다면?
A: 남자싱크로 하는 둘째가 음악에 재능이 있어요. 절대 음감이 있어요. 피아노를 치고 너무 빨리 늘더라고요. 그래서 말했죠. 피아노를 하면 아빠가 밀어줄게. 하지만 싫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싱크로를 너무 재밌게 하고 있어요. 지 좋은 거 해야죠. 그런데 뮤지컬 배우나 연기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는 것 같아요.

Q: 자녀분들의 꿈도 그대로 응원하시는 입장이신가요?
A: 아직 어리니까 예의주시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하고 있어요. 뭐든 본인이 죽는 날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고. 두 녀석 다 스스로 결정해서 하고 있어요. 성공하고 돈 버는 길이 아니라 너희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아빠의 바람이다. 심지어 너무 하기 싫은 것을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 저는 정말 반대죠.
그렇게 말하면 큰 애가 오히려 무슨 일을 해야 돈을 많이 버냐고 묻기도 해요. 어리니까 하는 소리죠.

Q: 두 아드님 다 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스스로의 선택에 힘들어하는 건 없나요?
A: 힘들어하죠. 하지만 어떤 일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거기에 따르는 약속과 책임이 있고 잘 하기 위해선 힘든 게 당연하죠. 노래도 그렇죠.

Q: 아들이 어느 날 가수를 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A: 한다면 하라고 할 것 같은데요. 물론 재능이 없으면 말려야지. 들어보면 알죠. 겉멋에 좋아한다면 말려야지. 프로로 하려면 자기만 좋아선 안 되죠. 남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프로가 되는 거니까. 재능이 있거나 운명이거나 이거 왜엔 죽을 것 같다. 그러면 해야죠.

Q: 운명인 줄 어떻게 알죠? 
A: 우리 아버지는 말리는 정도가 아니었어. 그때 난 딴따라였지 아버지에겐
보수적이고 엄한 아버지였는데 어느 부모가 성적이 떨어지는 데 좋아하겠어.
때리지 않아도 무서우신 분이 우리 아버진데. 난 그런데도 했잖아요. 내가 성격이 반항적인 성격이 아닌데도 하잖아요. 그러면 해야 돼. 우리 애들이 무당이 신병 걸리듯 그 정도가 아니면 제풀에 지쳐서 못하게 돼 있죠.

Q: 내 삶의 제일 잘한 일이 있다면?
A: 아내와 결혼하고 그래서 우리 애들을 만난 것. 그것이 가장 축복이죠.

피아노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음악이 새로워진 것뿐이죠. 사람이 살아있는 한 감성이 우릴 사랑하게 할 것이고 음악은 우리에게 가장 큰 힘과 기쁨이 될 거라 믿어요.

Q: 요즘 가요시장 어떻게 보세요?
A: 패션도 변하고 음악도 변하는 거죠. 피아노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것 같아.

Q: 자극적인 영상 위주의 미디어를 통해 이젠 음악이 힘을 잃었다는 의견들도 많은 데 정말 그럴까요?
A: 음악으로 인해서 많은 삶도 바뀌고 위로도 받고 음악을 쫓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영향력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세상 살면서 가장 큰 영향력이 아닐까?
요즘과 옛날이랑 다를 게 없죠.
그렇게 따지면 야구 축구는 왜 해?
왜 음악에 축구에 열광해?
그건 인간의 본능이거든 기쁨과 희열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건데 결국 행복을 감정을 얻기 위해 스포츠나 음악을 하는 거거든.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 직접적인 방법이 되는 거죠.
짐승과 다르기 때문에 행복을 찾고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열광하는 걸 찾고 그런 열광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투자가치가 있는 것도 생기는 거고 거기서 직업도 만들어지고 돈도 되는 거지.

Q: 어떻게 기억에 남길 바라시나요.
A: 노래 하나는 잘하는 가수였어.

Q: 발라드의 황태자 변진섭씨만의 노래연습법이 있으시면 좀 알려주세요
A: 노래는 자꾸 따라부르다 보면 되요. 난 골프를 치건 휘트니스에서 운동을 하던 노래를 계속 흥얼거려요. 오버해서 깊게 깊게 호흡을 하려고 신경 쓰고.
노래는 테크닉 빼고는 선천적인 게 크고…. 후천적인 연습은 호흡관리거든요.
많이 걷고 도라지 물 많이 먹고 그게 다지 뭐.

Q: 음악을 하고 있는 후배들 음악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A: 정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꿈을 꾸어라. 죽도록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도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오직 먹고살기 위한 일로 평생을 후회하며 살지 마라.
하지만 만일 또 다른 성공을 위해 음악을 하려는 저울질이라면 아예 꿈도 꾸지 마라.
 

기획/글 김태희
고려대 언론대학원 방송전공 석사.
1995년 ‘페이지’ 객원싱어. 
1993년부터 작사가로 활동. 김종국<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 주영훈<노을의 연가> 포지션<BLUE DAY> 박효신<메아리> 등의 가요와 <여우와 솜사탕> <장희빈> <히어로> <역전의 여왕> <태양을 삼켜라>등의 드라마 OST 350여곡 작사. 
현재 국민대콘서바토리와 서울문화예술대학, 한국 예술원,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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