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미를 장식했던 한 드라마의 흥행은 추억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을 대중이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드라마 방영이후 감각적인 최신 곡들을 밀어내고 노래방에서 10대들의 마음까지 점령해버린 드라마 OST 속 많은 옛 노래들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88년을 그리워하는 것만큼 20년 후엔 2016년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그 때만큼 그리워할 사람냄새가 남아있을까? 오랜 시간 최고의 자리에서 대중을 울리고 웃게 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킬만한 자타공인 최고의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 해답을 찾아본다.

talk? talk!
"합창을 하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그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죠." 
"사고도 쳐보고 실수도 했던 나를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마음을 열어주었어요. 너무 감사 했어요."    

이승철은?
19세에 ‘부활’의 보컬이 된 이승철은 그 당시 모든 여 중,고생의 이름을 ‘희야’로 바꿔놓았다. 이승철이 ‘희야’ 하고 노래하면 모든 여학생이 TV앞으로 몰려들기 마련이었다. 락 그룹의 보컬임에도 대중적으로 성공을 이룬 이승철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활동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지만 최근 방송을 통해 대안학교 학생들, 교도소 재소자들, 탈북청년들의 합창을 이끌면서 독도, UN, 하버드대학교까지 방문했고 문화예술인상까지 수상했으며 지금까지 <희야>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my love> <서쪽하늘> <인연> <말리꽃> <잊었니> <마지막 콘서트> <네버엔딩 스토리> 등 30여 년 한결같이 한국의 대표가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이승철은 아이돌 대표 작곡가 용감한 형제와 특별한 케미를 자랑하며 용감한 형제가 이승철만을 위해 작곡한 <일기장>을 발표했다.

Q: 축하드려요.(웃음) NGO컨퍼런스 홍보대사님이 되셨어요.
A: 감사해요(웃음)

Q: 정말 좋은 일 많이 하고 계시는데요. 통일, 독도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A: 모든 출발이 합창에서 시작된 거예요. 김천교도소 대안학교 비행청소년 탈북청년 합창하다가 방송 프로그램이 계기가 돼서 하게 된 거죠.

Q: 가장 보람됐던 순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A: 정말 뿌듯했던 게 함께 합창하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는 거죠.  출소해서 교회 목사님이 된 친구도 있고 마음 잡고 렉카차 기사가 돼서 결혼한 친구도 있고, 대안학교 친구들 중엔 실제 오디션 프로에 나왔던 친구도 있었고 그 친구가 실용음악대학에도 진학했죠.

Q: 누구보다 이승철이었기 때문에 더욱 성공적으로 합창을 지휘했다고 생각되는 게 있으세요 ?
A: 아마 샌님같은 사람이 갔다면 마음 못 열 친구들 많았을 거예요. 사고도 쳐보고 실수도 했던 나를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고 마음을 열어주었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Q: 독도는 어떻게 가게 되신 거예요?
A: 탈북청년들이 북한에서도 꿈꿔왔다고 독도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하니까 그럼 한 번 가자 했던 거죠.

Q: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해서가 아니라 인연처럼 순리대로 주어지는 일을 그저 열심히 하시며 사시는 것 같아 더 좋아 보이세요.
A: 네. 사역이라 생각해요. 아프리카 생각도 안 했는데 교회 다니면서 차드에 학교 짓는 일도 하게 되었고 프랑스 참전용사분도 우연히 알게 되어 한국 유엔묘지에 모시게 되었죠. 그 분을 한국에 모시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보훈처에 탄원서까지 내가며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모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Q: 독도에서의 합창 일로 일본공항에서는 열사대접을 받으셨어요. 혹시 정치에 마음 있으신 것 아니세요?
A: 제안은 받아봤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정치는 한번 건너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강 같아요. 전 지금의 제 일과 제 삶을 사랑해요. 정치엔 관심 없어요. 

Q: 이런 이승철 삶의 변화가 공연에도 반영되고 있나요?
A: 이젠 좋은 일에 대한 브리핑시간이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요. 예전엔 새 앨범 나왔어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했지만 이젠 공연 수익금이 모두 아프리카로 가죠. 

Q: 너무나 귀하시네요. 분명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A: 저 위에 계신 분 때문이죠. 하나님이요. 사랑과 봉사에 대한 생각은 확실히 종교의 힘이 컸던 것 같아요. 불교신자였던 제가 6년전 마리아님을 세 번 꿈에서 만나고 크리스찬이 됐죠.

Q: 그런데 이렇게 크리스찬임을 밝히시면 불교방송 출연하시긴 좀 불편해지시는 건 아닌가요?
A: 한번은 우리 매니저가 불교방송에 갔대요. 어느 PD님이 이승철씨가 교회 다닌다는데 사실이냐 묻더래요. 맞다고 대답했더니 그 분이 불교계의 큰 손실이라고 하셨다네요.(웃음)

사람은 어려서 내 꿈을 찾아 세상에 나간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늘어가면서 우린 나를 위해 살기보단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이승철이 그렇다. 나보다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고 그들에게 줄 것이 있어 행복하다. 

Q: 요즘처럼 오디션을 보신 건 아닐 텐데 노래를 하게 된 계기 좀 들려주세요?
A: 친구 그룹사운드 구경 갔다가 노래할 사람이 없는데 너 노래 잘해? 네가 한 번 불러 볼래? 해서 불렀다가 그게 계기가 됐지.

Q: 원래 잘 부르셨나 봐요? 원래 가수를 꿈꾸신 건가요?
A: 잘한다는 얘기는 들었었지만 이게 직업이 될 줄 몰랐죠. 그 시대엔 음악 한다고 그러면 근신 당하고 유기정학 당하던 때였고 우리 집안이 교육자 집안이었으니까. 상상도 못했죠.

Q: 고등학교 1, 2학년 때 노래를 시작하신 거네요? 그 이후로 계속 노래를 하신 건가요?
A: 그렇죠. 친구들은 이제 고3이 돼서 공부한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고3이 되면서 더 음악에 심취하고 빠져 이팀 저팀 싱어를 하다가 졸업하고 바로 부활 들어가고 결국 19살에 데뷔했죠.

Q: 그때 노래를 들어보면 굉장히 성숙한 감성을 가졌던 것 같아요
A: ‘슈스케’(슈퍼스타K)에서도 선천적인 재능이 중요하다고 하는 게 이거예요.  노력이나 열정만 가지고는 위험해요.

Q: 선천적이지 못한 열정이 위험한 건 어떤 게 있을까요?
A: 롱런을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Q: 선천적이라는 것이 나만의 목소리 톤을 얘기하는 건가요?
A: 그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음에도 노래를 감성적으로 잘할 줄 아는 능력을 얘기하는 거죠. 고1에 못했는데 연습해서 고2에 잘 하게 됐다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 천운을 타고 나야 한다고 봐요.

Q: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동요를 불러도 혼자만 바이브레이션을 했다고 들었어요.
A: 저만 특별히 그런 게 아닐 걸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다 그래요. 김창환 프로듀서가 한 말이 있어요. 김건모는 밤새 술 마시다 노래해도 잘 한다고..

Q: 그럼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 없었나요?
A: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음악 만들다가 안 나오면 짜증 나고 잘 나오면 신나고 재밌고... 그냥 일상일 뿐인 거죠.

Q: 혹시 연습도 안 한다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매일 연습하세요?
A: 저 같은 경우는 목관리 차원에서 매일은 오히려 안 좋은 것 같아요. 술을 좋아하니까(웃음) 만일 토요일에 공연이다 그러면 월요일부터 몸도 만들고 발성도 하지만 매일 연습은 안해요. 공부 잘 하는 사람이 공부하는 법이 있듯이 따로 연습을 하는 건 아니지만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거죠.

Q: 활동도 1년 내내 하시지 않는 것 같아요.
A: 5월 6월 7월 그리고 10월 11월 12월 6개월만 활동해요.

Q: 나머지 6개월은 어떻게 보내세요.
A: 가족들과 지내며 충전을 하죠. 내년엔 안식년을 가질 계획도 갖고 있어요.

Q: 19살 때도 지금도 노래를 부르고 계신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A: 그 때는 그냥 달렸죠. 음악을 위해서 더 큰 성공을 위해서...
    하지만 지금은 옆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Q: 내조의 여왕인 아내를 만나셔서 그렇게 느끼실 수 있는 것 아닐까요?
A: 그런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난 오히려 결혼해서 매년 히트곡 하나씩 나왔으니까. 사실 자기 자신을 바깥으로 나와서 봐야하는데 우리 직업이 그러기 쉽지 않죠. 가족이 생기니까 그게 가능한 것 같아요.
결혼 안한 친구들 보면 안타까워 결혼하면 음악적 에너지가 없어질 것 같다 막연히 걱정을 하지만 저를 보면 안정감있게 감성이 더 커지는 것 같아.

Q: 아내분의 마음을 혹시 요리로 사로잡으셨나요?
A: 음. 나랑 있으면 굶진 않겠다고 얘기해줬어요. 맞아요.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 하죠. 
Q: 2005년 요리책을 출판하셨어요. 너무 앞서가셨어요.
A: 그러게요. 지금쯤 냈으면 잘 팔리는 책이 됐을 텐데... (웃음)
   

Q: 슈스케에서 많은 친구들을 탑10 탑12 다 세워보셨잖아요. 이 인터뷰를 보실 분들을 위해서도 원포인트 레슨 하나 주세요.
A: 자신의 옥타브에서 노래를 부르면 되요. 노래로 승부를 걸지 말고...(웃음) 

Q: 이승철에게도 어려운 스타일의 노래가 있을까요?
A: 저도 높은 노래는 어렵죠. <She's gone> 못 불러요.

Q: 트로트는 어떠세요? 이승철과 잘 안 어울려 보이거든요.
A: 트로트 잘 하죠. 트로트 못하면 노래 못하는 거예요. 가요는 트로트의 뽕끼를 못내면 맛을 못내요. 

Q: 현재 10대나 20대를 보내셨다면 이승철은 어떤 가수가 되었을까요? 
A: 노래 잘하는 비(?)(웃음) 아니면 노래 잘 하는 싸이(웃음)

Q: 천하의 이승철도 부러운 사람이 있을까요?
A: 싸이가 부럽지. 저는 최소한 공연 전 5~6kg 감량도 하고 목 관리도 하는데  싸이는 공연전 순대국에 소주 마시고 올라가서 놀다 내려와. 팬들이 싸이에게 재밌는 공연외에 바라는 게 없죠. 살을 빼면 더 이상할 걸.

Q: 제 학생증을 친구들이 불티나게 빌려갔던 기억이 있어요. 이름이 ‘희’자로 끝나는 친구들은 할인을 해줬었거든요. 이승철 콘서트엔 이런 이벤트 없나요? 
A: 이벤트나 퍼포먼스 심지어 게스트도 없어요. 새로운 컨셉만 있죠. 이승철을 사랑하는 팬들게 오직 최고의 퀄리티를 드리려 음악과 무대에만 신경을 써요.  1년 6개월 활동을 하는데 그 동안 3번을 컨셉을 바꿔요. 사실 매 공연마다 95%가 새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까진 않해도 되지만 내가 싫더라구.
    
Q: 오랜 시간 참 궁금했는데요. 예전에 노래 하실 때 보면 손가락 마다 테이핑을 왜 하셨던 건가요?
A: 기 모으느라고 했었죠(웃음)

Q: 노래 부를 때 습관같은 거네요. 징크스? 
A: 그런 거였는데 요즘은 안 해요. 미신 같은 건 이제 내 삶에 없죠.(웃음) 

Q: 어려서 밖에서 놀다가도 집에 와서 하루에 3번씩이나 옷을 갈아입었다는 에피소드를 들었어요. 정말 그러셨어요?
A: 끼 있는 애들은 그러지 않나? 초등학교 때도 바지 혼자서 다려 입고 다녔는걸요.

Q: 이렇게 오래 시간 내어주시고 정말 감사드려요. 마지막 질문 드릴께요. 이승철 삶에 받은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A: 가족이요. 밖에서 아무리 힘들고 지쳐 들어와도 현관문에 딱 들어서서 애 뛰는 거 보면 그 피곤이 다 풀리는 것 같아요. 우리 애가 티저 찍었잖아. 씨도둑질은 못한다더니 가르치지 않아도 노래하는 거 보면 느낌이 있어요. 또 큰애는 엄마가 섬유 전공했던 것 그대로 지금 뉴욕에서 섬유전공하고 있고. 아무리 밖에서 특별한 삶을 살아도 그것에만 너무 집착하고 나이대로 살지 못하면 보기 좋을 수 없지. 살아보니 나이에 맞게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고 소중한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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