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 분야에 걸쳐 트랜드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광의적으로 트랜드가 곧 '생활' 자체로 변화하고 있다. 트랜드를 통해 오늘날의 삶의 모습을 정의하고 내일의 삶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된 것. 이에 이뉴스투데이는 트랜드 전문가 인터패션플래닝의 박상진대표를 통해 트랜드 변화를 진단하는 장을 마련했다. 

박상진대표
(주) 인터패션플래닝 대표이사
(주) 트렌드포스트 대표이사
에이다임 인터패션플래닝사업부 前 본부장
매일경제리서치 / 트렌드모니터 前 경영이사


“요즘 트랜드가 뭔가요.” 
“지금은 인간이 지닌 근원적 희소성의 시대입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 대화는 트랜드에 관한 대표적 우문우답이다. 묻고 답하는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짜증이 뒤따르는 흰소리이기도 하다. 시비를 가릴 수도 없고 이해와 설득을 해야 할 이유도 없으니 상투적 대화에 불과하다. 묻는 사람은 트랜드 전문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드러낸 것이고, 트랜드 전문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최대한의 정답을 말했기 때문이다. 

즉, 질문은 트랜드란 것이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해 보다 구체적이었어야 했다. 최소한 “패션트랜드가 뭔가요” 정도는 돼야 한다는 얘기다. 답변은 질문자가 트랜드에 문외한임을 고려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상적 사례였어야 적절했다. “TV만 켜면 요리 프로그램인 걸 보면 패션이나 주거보다는 식문화가 주목받는 거 같습니다”와 같이 답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트랜드 전성시대다. 협의적으로는 ‘트랜드=패션’이었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트랜드를 얘기한다.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현실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부분(패션, 주얼리, 잡화 등)만 차용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유효했으니까. 반면, 이젠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트랜드가 중요해졌다. 광의적으로는 ‘트랜드=라이프’가 됐다는 뜻이다. ‘내 이런 전차로’ 트랜드에 관한 소소한 수다를 시작하는 바이다. ‘트랜드가 사람마다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인 어두운 현실에 촛불하나 켜두려는 마음이다. 혹여 누구라도 트랜드의 본질을 향해 정면으로 걸어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2015년도 한국영화의 흥행은 계속됐다. 이제 어지간한 할리우드 영화는 한국영화와 경쟁을 못할 정도다. 티켓파워를 발휘했던 영화를 되짚어보면 ‘악의 연대기’ ‘뷰티인사이드’ ‘량첸살인기’ ‘극비수사’ ‘검은사제들’ ‘더 폰’ ‘내부자들’ ‘사도’ ‘베테랑’ ‘암살’ 정도를 꼽겠다. 이외에 관심을 끌었던 영화는 ‘미쓰와이프’ ‘탐정-더 비기닝’ ‘히말라야’ ‘그놈이다’ ‘쎄시봉’ 등이었다. 장르도 스릴러, 코미디, 로맨드, 드라마, 범죄, 미스터리, 액션 등 다양했다. 이 정도면 ‘장르불문 한국영화만세’를 외칠만하다.

흥행영화는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 시나리오의 치밀함 등과 같은 성공요소 중 어느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니, 이러한 성공요소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흥행이유가 존재한다는 게 맞겠다. 영화의 기획자나 제작자는 물론 평론가와 관객 역시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은 트랜드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서 나열했던 흥행영화의 경우 트랜드 관점에서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책임감이다. 영화마다 주인공의 직업도 사상도 입장도 다르다. 그렇지만 모든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의 근저에는 책임감이 흐른다. 아버지, 남편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 시선에서부터 경찰, 종교인, 애국자와 같은 공공적 위치까지 각자가 지녀야 할 혹은 지니고 있었던 책임감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 ‘사도’의 경우 혜경궁 홍씨가 남편과 시아버지,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인 자신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각각에 대한 책임감을 살피거나 헤아리는 이야기로 전개됐다. 영화에서 책임감이란 단어를 빼고 본다면 뭐가 새로울까. 전 국민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익히 들어왔고, TV에서 수도 없이 봤던 사극 속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을까. 

책임감이란 주제어로 영화를 제작하고, 책임감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관객들 역시 책임감에 공감하기 위해 극장을 찾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이란 정서는 영화와 관객 사이에서 엄청난 공감대로 존재했다.

한국영화에서 책임감이란 트랜드 주제어가 꽃을 피운 건 2014년 개봉됐던 ‘명량’이었다. ‘명량’은 관람객들에게 너무 뻔했던 이순신이란 위인을 아버지로서, 신하로서, 존경받는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다하며 살았던 ‘사람’으로 각인시켰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잃어버린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유전자 즉, 근원적 희소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한 때 유행했던 ‘아이스버킷챌린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기부를 하는 것 중에 선택하면 되는데 왜 굳이 둘 다 하려 들었을까. 이제 사람들은 말로만 남을 돕거나, 돈으로 해결하려는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행위나 결과의 크기에 상관없이 스스로 할 수 있고, 꾸준하게 해나갈 수 있는 사회봉사 혹은 사회기여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땅한 책임감이라 믿는다.

2014년 Linked in에서 공개했던 조사 자료를 보면 이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프로필에서 가장 많이 보여주려는 단어는 무엇’이나면 ‘책임감’이었다. 답변의 순서를 보면 시대의 흐름이 뚜렷하게 보인다. 혁신(Innovative) => 창의(Creative) => 책임(Responsible) 순이다.

바야흐로 책임감의 시대다. 이제 소비자를 열광시키는 것은 영화나 TV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는 물론 디자인과 기능, 서비스 등에서도 책임감일 것이다. 공공정책이나 정치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얼마나 책임감 있는 언행을 보이느냐에 지지의 유무와 정도를 가를 것이다. 책임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 희소성 중 첫 번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태초부터 인간이 가졌던 근원적 희소성에 목말랐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책임감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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