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대우증권을 매각하는 대신 산은의 투자은행(IB) 업무를 대우증권에 넘겨 산은이 투자은행을 선도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6일 발표된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은 개편방안 논의 초기단계에서 논의됐던 은행 통.폐합 등의 충격적인 조치 없이 역할을 일부 조정하는 수준에서 시장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은행은 민간부문을 축소하거나 자회사로 이관해 불필요한 시장마찰을 줄이고 투자금융(IB) 업무도 자회사인 대우증권으로 이전해 선도 투자은행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금융 전문은행'이란 비전에 따라 장기적으로 민영화하기로 했으며 수출입은행은 대외정책금융 지원역할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은 산업은행의 5개 자회사를 모두 매각해야 한다는 지난해 감사원 권고와 다른 내용이며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의 역할 조정도 기본 원칙만 제시하는 등 두루뭉술한 수준에 그쳐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 정책금융 효율적 역할 강화 = 국책은행은 장기 설비투자와 중소기업, 선박 금융 등 중장기 수출입금융 등 민간영역에서 하기 어려운 정책금융업무를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경제환경이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정책금융수요가 감소하고 있어 국책은행들의 역할 재정립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또 정책금융수요가 줄어듦에 따라 국책은행들은 민간 영역으로 업무를 확대하기도 해 민간 금융사들의 반발을 부르며 시장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부터 국책은행별로 외부 연구용역을 실시했으며 관계부서와 학계, 금융계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방안을 연구해왔다. 그 결과 정부는 그 동안 장기설비.개발금융과 광범위한 공적업무를 해왔던 국책은행의 중점 분야는 변화했지만 정책적 수요는 아직도 상당하다고 보고 국책은행들이 정책금융역할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민간과의 불필요한 마찰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기본 방향을 정했다. ◇ 산은 정책금융 주력..시장마찰 축소 = 이번에 발표된 방안은 국책은행들이 본래 설립 취지대로 정책금융 역할을 효율적으로 하도록 하는 동시에 국책은행들의 민간금융업무 확대에 따라 민간 금융사들과의 시장마찰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산업은행은 프라이빗 뱅킹(PB)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량기업의 회사채 인수.주선 등 민간 영역에 까지 발을 들여놓아 시중은행들로부터 '문어발 은행'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시장과 마찰을 빚어왔다. 이에 따라 개편안에서는 시장마찰을 줄이기 위해 민간 금융사와의 경쟁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업무를 선정해 축소하거나 자회사로 이관하는 안이 제시됐다. 또 인프라펀드를 운용하는 자회사인 한국인프라자산운용도 민간 금융사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조기에 매각을 추진키로 했으며 비우량회사채 인수 등 정책금융 수행과 밀접한 업무를 제외한 상업적인 IB업무는 대우증권으로 옮겨 역시 시장마찰을 줄이기로 했다. 기업은행의 경우 장기적으로 민영화하는 안이 제시됐지만 단기적으로는 혁신형 중소기업과 지방기업 지원 등 중소기업 정책금융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만 향후 민영화 진전 상황에 따라 중소기업 정책금융 기능을 산업은행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중소기업지원제도 전반에 대해 체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 선도투자은행 육성 추진 = 관심의 초점이 됐던 대우증권은 감사원의 권고와는 다르게 매각하지 않고 산은의 IB 업무를 이관받아 선진 IB 등장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쪽으로 결론지어졌다.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이제 IB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지만 아직 국내 증권사들은 IB 업무의 노하우가 부족하고 자본력이 미흡한 탓에 경쟁력이 낮다고 보고 대우증권을 국내 IB의 모범 모델로 정착시키겠다는 의도다. 정부는 파생상품거래와 M&A 자문, PF 주선 등 주요 IB 업무에서 산업은행이 외국계와 실질적인 경쟁이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산업은행의 IB부문이 대우증권으로 이관되면 대우증권의 IB 업무 비중은 현재 9.1%에서 39.9%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은은 대신 대우증권 등 금융투자회사와 연계해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운영자금 대출 등 지원기업에 대한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 수은.산은 갈등 해소방안은 미흡 =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업무 중복 문제는 양 기관간 고위급간 정기적인 간담회와 새로 설치될 정책금융심의회에서 조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산은은 지난해 5월 김창록 총재가 자원과 에너지 확보를 위해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지원하고 아시아.동유럽 등 신흥시작 개척과 주요 지역별 거점 점포 육성을 통한 해외업무 추진 체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베이징 구상'을 발표했다. 또 중국 지린성(吉林省) 등 동북 3성과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업무를 강화하면서 수출입은행의 반발을 사왔다.
 
그러나 정부는 양 기관의 업무영역을 일률적으로 규정할 경우 금융환경 변화에 효율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로 결국 사안별로 양기관간 협의를 통해 역할을 조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셈이어서 실제 쟁점사항이 생겼을 때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수출입은행은 정책자금을 활용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산은은 코파이낸싱(co-financing)을 통해 상업적 조건으로 보완한다는 원칙도 정책자금의 성격상 '상업적 조건'이라는 부분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창용 기자> creator20@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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