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최진경 기자]한국여성미디어클럽은 7월 '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평화의 길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리더들을 만나 기획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고려인돕기운동본부 이광길 대표
‘고려인’ 러시아어로는 ‘까레이스끼(한국인)’. 고려인은 1860년대 함경도 주민들이 대기근을 겪으며 배고픔에서 해방되기 위해 국경을 넘어 간 것으로 시작된다.

해외이주 역사는 한의 역사라고 불릴 만큼 설움을 겪어야 할 일이 많다. 이들은 러-일 전쟁 때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에 의해 기차에 실려 8000km를 달려 카자흐스탄에 옮겨졌다.

일제치하 때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던 독립투사들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대우도 받을 수 없었다. 배가 고파 떠난 나라이지만 국가도, 언어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지난달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기념해 고려인 124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제는 한국인의 모습이 많이 없어졌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에 감격하는 모습들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이 가운데는 고려인돕기운동본부 이광길 대표가 있었다. 모두가 고려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서 말할 때 이 대표는 고려인들은 남북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며 ‘가능성’을 제시했다.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고려인들은 남북한 방문이 가능하고, 남북에 상관없이 ‘독립군의 후손’이기에 함께 공감할 수 있기에 루트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애를 썼고 지금은 평화통일의 연결고리의 역할, 나아가 통일 후에는 식량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고 내다보는 것이다.

지난 한국 방문 후 고려인들의 반응에 대해선 “조상 땅을 밟아 봤다는 자체로 꿈만 같고 소원을 풀었다고 하더라. 러시아에서는 한국사람이나 고려인이나 ‘까레이스끼’라고 부른다. 단지 우리만 구별하고 있을 뿐”이라며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표가 고려인들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연해주에서다. 그는 해외농업을 시작하면서 연해주에 55만 명의 우리 동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또한 이들이 독립투사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대표는 역사를 잃지 않기 위해 ‘고려인돕기운동본부’를 설립하고 한글학교와 문화교류지원 등에 힘썼다.

이 대표에 따르면 1930년대 일제 폭압이 극에 달했을 때 독립군의 본거지인 연해주에는 한글학교가 380여개에 달했고 한글신문, 잡지도 발행이 됐지만 강제이주로 인해 한글학교가 사라지면서 고려인은 언어를 잃어버리게 됐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려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고려시대 사람’인줄 아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 바친 독립투사의 후손들이지만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CIS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민족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 가운데 상당수의 고려인들을 ‘러시아 인’이라며 쫓아냈다고 설명했다.

여권이 발급되지 않아 국가가 없는 채 살아가야 하니 아파도 병원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고려인들은 “한국은 올림픽도 열고 잘 사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내버려 두느냐..”고 원망하기도 했다고...

▲ 러시아 농업 개발 관련 자료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 이광길 대표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데, 정부의 지원은 없었을까?

이 대표는 “당시 정부는 고려인들을 빨갱이로 인식했다. 독립운동 했던 것 신경 쓰지 않고, 껍데기만 한국 사람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지난 2007년 도입된 방문취업비자제도 시행이후로 조국 방문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25세 이상이라는 규정이 있고, 취직도 마음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는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한국 방문에 이어 또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평양, 서울, 부산으로 이어지는 1만5000km의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이 다. 지난 7일부터 8월25일까지 50일간 진행되는 대장정에서 고려인들은 광복절에 맞춰 군사선(MDL)을 넘는다.

이 대표는 “행사 자체만으로 고려인의 존재와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위상에 대해 알릴 수 있지 않겠나. 쫓겨났던 길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사무실 곳곳에는 고려인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과거 강제이주로 버려졌던 카자흐스탄의 허허벌판과 농업으로 정착해나가는 모습, 비자문제와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고려인들을 도와왔던 이 대표의 마음이 인터뷰 내내 묻어나왔다.

국가도 돌보지 않던 연해주 땅의 독립투사의 후손들과 동고동락하며 결국 한국 방문까지 성사시키며 고려인의 소원을 풀어준 이 대표. 통일로 가는 시대에 발맞춰 고려인의 역할을 제시하는 이 대표는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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