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엄정권 기자] 여성 여러분, 화장품 선택에 자신 있습니까. ‘정보의 홍수’라는 말은 화장품업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내에 화장품을 제조하거나 유통하는 회사는 4천개 안팎이다. 브랜드는 수천 개에 이르고 품목은 말할 것도 없다. 신제품 출시는 쉬는 날이 없다. 여기에 제품마다 성분이 다르고 콘셉트가 다르고 효용 범위가 각각이다. 여성 여러분, 어디에 가서 어떤 제품을 사는 데 망설임이 없습니까.

▲ 글로시박스를 공동창업한 박춘화 총괄이사. 사진 촬영을 위해 특별히 세련되게 입었다. <사진제공= 글로시박스>
화장품 업체 관계자 여러분, 마케팅에 자신 있습니까. 요즘 화장품 업체는 마케팅 전쟁이다. 정확하게는 유통 전쟁이다. TV나 잡지 광고는 여간해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돈 안 드는 마케팅은 서툴고 자신이 없다. 신제품 샘플링도 드는 돈이 가볍지 않다. 어디에 어떻게 신제품을 팔아야 할까. 화장품 업계 종사자 여러분, 걱정 많으시죠.

소비자인 여성과 업체 중간에 다리를 놓아야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법하다. 그러나 소비자를 신문 잡지처럼 구독자로 모으고 그들에게 화장품을 박스에 담아 제공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쉽지 않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뷰티 달인에게 제품 선택 맡기세요

특히 ‘박스에 담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는 생각은 기발하다. 즉, 내게 필요한 화장품을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골라 선택해주는 것이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라는 짧지 않은 영어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품 정보를 찾고 가격 비교를 하는 수고로움을 마치 쇼핑의 달인에게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로시박스가 대표적인 화장품 서브스크립션 커머스 업체다. 공동창업주라고 소개하는 박춘화 총괄이사를 만났다. 33세. 미혼. 기자를 맞아 회사 출입문을 열어주던 그 젊은이가 창업주라니. 마주 앉아보니 눈이 초롱초롱하다. 손에 쥔 볼펜을 돌리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듯 했다.

3년 전 창업했으니 나이 30에 일을 저지른 것이다. “글로시박스는 본사가 독일에 있습니다. 우리는 불과 한 달 늦게 시작했으니 거의 같이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글로시박스가 16개국에 진출해 있다고 한다. 박 이사는 국내 굴지의 화장품업체에 3년 몸담은 게 화장품과의 인연으론 전부다.

사업 모델은 두 가지. 말 그대로 화장품을 박스에 담아 매월 한차례 정기 구독자에게 보내는 정규 박스와 월 2, 3회 보내는 블랙라벨 박스, 민트라벨 박스 등 스페셜 에디션이 있다. 박스에 담기는 제품은 보통 5가지. 무게가 좀 나가는 기초제품 종류가 3개 정도, 색조 1가지, 그리고 생활용품 또는 시즌 용품 중에서 재미 있는 아이템 1가지다.

그러면 제품을 어떻게 고를까. 여기에 사업의 핵심이 담겨 있다. “먼저 매월 또는 시즌별로 콘셉트를 잡는 게 중요합니다. 내부 토론도 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따릅니다” 전문가는 박 이사는 뷰티 MD라 불렀다. 뷰티 잡지의 에디터가 하는 경우도 많다.

▲ 박춘화 이사가 직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회의실은 늘 제품이 넘쳐 마치 창고 같다. <사진제공= 글로시박스>
새로운 브랜드·새로운 제형·신기한 용기 등 품질에 재미 더해

콘셉트가 결정되면 다음은 제품 고르기. 여기서 글로시박스의 반짝이는 안목이 드러난다. 국내 유명 제품도 취급하지만 좀 더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제형, 신기한 용기 등의 제품을 고른다. 물론 품질 검증은 필수. “저는 판매보다는 마케팅에 관심이 많고 또 회사도 마케팅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박 이사의 설명이다. 여성 소비자들에게 품질 좋은 제품을 소개하되 좀 더 새롭고, 좀 더 신기한 제품을 보여주는 게 박 이사는 재미있다고 한다.

정규 박스는 월 1만6500원. 부가세와 배송비 포함이다. 싸다. “어째 이렇게 쌉니까” 얼핏 제품을 봐도 3~4만원은 훌쩍 넘어 보이기에 물었다. “업체와 직거래를 하니까 좀 싸게 공급받고요. 또 특별히 물류비용이 들지 않아 가능합니다” 박 이사는 또 굳이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정기 구독자 1만여명...박스 배달 때마다 열광

정기 구독자는 1만여 명. 회원 수가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충성도가 높은 탓이리라. “회원을 좀 더 늘리시죠” 묻자 회원은 지금 정도면 좋다고 한다. 회원이 많으면 그만큼 제품 확보가 어려워진다. 지금도 한 번에 한 품목 당 1만여 개를 맞추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월 2,3차례 나오는 블랙라벨은 어떤가. 좀 고급스럽다. 5만~10만원이다. 벌써 5번 나왔다. 보통 한번에 3천개 정도 나가는 데 한 번도 재고가 없었다. 한예슬과 함께 큐레이팅(제품 선별) 작업도 했었고 유명 헤어 디자이너 차홍과도 함께 한 적이 있다.

6번째 블랙라벨이 이달말 나온다. 궁금해 캤더니 박 이사가 맛만 보여준다. “수입 브랜드 코치에서 나온 손거울이 들어갈 겁니다. 지갑에도 들어갈 만큼 작고 예쁩니다” 또 뭐가 있습니까 다시 캐물었다. 팔찌라고 단답형으로 답한다. “여성들이 열광합니다.” 

사실 열광하는 것은 소비자뿐이 아니다. 제품 공급 업체도 열광한다. 브랜드 홍보에 이만한 수단이 없다는 것. 그래서 업체에서 박스에 넣어 달라는 의뢰가 쌓인다. 로레알,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이 믿고 준다는 것.

민트라벨은 블랙라벨보다 많이 싸다. 여대생들이 좋아할만한 브랜드숍 위주 제품이 많다. 월 1천개 정도 만드는데 순식간에 동난다.

여성 감성 자극 새 사업 아이템 준비…4월 개봉 박두

사실 올해 설 직전 글로시박스가 엄청 히트를 쳤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폭풍 인기를 끌었다. 다름아닌 럭키백 이벤트. 박스에 화장품 다섯 개 넣어 9900원에 판다고 하니 인터넷이 후끈 달아 오른 것. 들어가는 제품 5개 가운데 정품이 최소 3개였으니 소비자로선 수지맞는 일 아닌가. 30분만에 4천개 팔렸다. 몇십만명이 몰렸지만 행운은 4천명에게만 돌아갔다.

글로시박스의 눈은 화장품에만 있지 않다. 박 이사는 “화장품 말고..." 좀 뜸을 들이더니 "여성 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 받아서 행복한 것으로...". 4월에 공개된다.

박 이사 눈이 빛난다. 글로시(glossy)하다. 무엇보다 부러운 건, 패기 넘치는 그의 나이다. 그러나 나이 뒤에 숨겨진, 속 깊은 우물 같은 그의 내공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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