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오 편집국장     ©이뉴스투데이

우리나라에서 흔한 풍경 중 하나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떤 구실로든 각종 정치적 소문속에서 몇몇 대기업 총수 혹은 공기업 CEO가 사정의 칼에 망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KT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중수 당시 회장이 이석채 회장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이석채 회장이 검찰 압수수색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털리고 결국 사표를 냈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도 조만간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험한 꼴 당하기 전에 거취를 정했다며 ‘지혜롭다’는 어처구니 없는 평까지 나온다.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공공기관 CEO 경우에는 대통령의 통치, 경제 철학과 코드가 맞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명분이라도 있다, 그러나 주식 한 주 갖지 않은 공기업 CEO 등에게 칼을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비판이 높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당연히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긴장하는 곳이 대기업이다. 정권이 바뀔 따마다 어떤 형태로든 대기업을 흔들었다. 어떤 칼에 맞을지 모른다. 걸면 걸린다. 국세청.검찰이 작심하고 뒤지면 온전할 곳 없다. 경제 논리 보다 정치 논리가 판을 친다. 과거 삼성자동차, 하이닉스 반도체, 대우그룹 해체 등에 온갖 설이 난무하고 뒷말이 끊임없는 이유다.

정부가 대기업을 어떻게 다루는가. 어떻게 재벌 개혁을 정권 홍보 수단으로 삼는가. 그 사례 중 하나. 99년 7월 7일, 삼성 이건희 회장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성자동차에 대한 채권단과 계열사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삼성생명 비상장 주식 400만주 (당시 주당 70만원 평가, 약 2조 8000억원)를 내놓기로 했다. 

당시 이헌재 금감원장은 “가능한 한 채권단이 손실을 부담하지 않아야 한다”며 채권단의 손실보전을 삼성이 책임진다는 것은 바로 삼성과 이 회장 모두 책임 당사자가 된다고 말해 이 회장의 추가 사재출연을 압박한 바 있다. 이러자 채권단은 삼성에 대한 대출만기연장 거부와 신규 여신 중단 등 금융제재 카드로 압박하고 나섰다. 당시 구조조정본부장이었던 이학수 전 부회장은 은행장을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98년 김대중 정부의 대기업 구조조정(빅딜)도 자유경제시장원리에 반하는 반 강제적으로 추진된 대표적 사례로 일컬어진다.

전경련과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추진한다는 모양새로 삼성,LG,대우,현대,한진 등 5대 그룹의 반도체,석유화학,발전설비,항공,자동차,철도차량 및 정유 등 7개 업종의 빅딜 구체화 작업이 진행됐다. 곧바로 채권금융기관들은 5대 재벌의 25개 부실 계열사에 대한 추가 퇴출을 결정하고 신규 여신 제공을 중단했다. 온나라가 떠들썩하게 추진됐지만 결국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현대정유는 한화에너지 정유부문을 각각 인수하고 항공은 삼성,현대,대우중공업 등 3사를 통합해 한국우주항공을 설립하는 데 그친 바 있다. 

그중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반도체 빅딜도 ‘반도체 공급과잉’에 의한 ‘기업 자율’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김 전 대통령이 “전경련에서 빅딜 결의를 해야 한다”, 이헌재 당시 금감원장은 “재벌이 빅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금감원이 나설 것”이라며 여신 중단, 대출 회수 등의 압박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평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벌어지는 ‘대기업 옥죄기’에 관련한 문제의 뒤에는 정권의 치적쌓기, 전 정권에 대한 보복설 등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수단으로서는 국세청, 검찰과 금융기관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우그룹 해체 과정도 마찬가지다. 당시 정부는 대우의 CP(기업어음) 발행 한도를 규제하고 이어 회사채 발행한도까지 축소시킨다. 결국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그룹은 해체된다. 

IMF외환위기 이전에 종합상사들은 수출지상주의를 내세운 정부의 요구에 무리한 실적쌓기로 부실이 크게 누적된 상태였다. 효성그룹 역시 같은 처지였다. IMF가 터지자 부실이 컸던 대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 파산을 하거나 공적자금을 받거나 스스로 벌어서 갚은 게 그것이다. 

최근 효성의 경우도 말이 많다. 15년전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효성그룹의 ‘부실계열사 파산 결정’을 못하게 정부가 개입했다는 소문은 경제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 당시 효성은 효성물산만을 파산시키고 계열사 채무보증 3천여억원을 갚는 방안이 그룹을 살리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이헌재 부총리와 주거래 은행이었던 한일은행장이 조석래 회장을 불러 “만약 효성물산을 파산시키면 모든 계열사 대출금을 회수하겠다”며 그룹 해체까지 들먹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조 회장은 그룹 해체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채권은행이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 합병 이후 경영이 안되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이행각서를 썼다는 후문이다. 그 후 효성은 그룹내 우량계열사 4곳을 합병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으로 부실을 정리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그룹을 다시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문제는 정부에서 사회경제적 파장을 우려해 효성에 어거지로 떠맡긴 계열사를 책임지고 살리기 위해 부실을 수년간 나누어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몇가지 문제가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 조세포탈로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지금껏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대표적 대기업의 창업자들과 그 뒤를 이은 기업인들 대부분 “‘애국심’이 역경을 극복한 힘이었다”고 술회한다. 개인의 치부를 위해 기업을 하지 않았기에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경제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기업인들의 의욕 상실이라는 진단이다. 경제 문제는 경제논리로 다루는 사회, 기업인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우리 경제가 활기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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