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도 피치오토앤컨설팅 대표
국토해양부는 지난 19일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몇 가지 사항이 있지만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제시·매도신고 수리의 위탁에 관한 사항이다. 제시·매도 신고란 매매업체가 상품용 중고차를 매입한 경우 혹은 그 차가 팔린 경우 관할 시장이나 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하는 절차다. 그런데 이 신고의 수리권한은 다시 법에 의해 자동차매매사업자 단체에 위탁돼 있다.

여기서 잠깐 용어의 정의를 살펴본다. 위임이란 행정기관에서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이나 보조기관에 권한을 맡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제시·매도신고의 수리는 위임이 아닌 위탁이 되어 있다. 여기서의 위탁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민간 위탁이다. 민간위탁이란 행정기관이 아닌 외부 법인이나 단체에 행정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자동차매매사업자 단체는 행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위임이 아닌 위탁(민간위탁)이다.

이번에 입법 예고된 사항은 위와 같은 제시·매도신고의 수리 권한을 중고차매매조합뿐 아니라 연합회 및 교통안전공단에도 위탁한다는 내용이다.

언뜻 보면 아주 대수롭지 않은 사항 같아 보이지만 매매조합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변경일 수 있다.

제시·매도신고가 법에 의해 의무화가 돼 있는 이상 중고차매매업체는 이러한 신고를 하지 않으면 중고차 거래를 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시장·군수, 구청장에 의해 제시·매도신고의 수리를 위탁받은 중고차매매조합은 그 업무처리를 위해 제시·매도용 전산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제시·매도 신고를 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조합이 지정한 전산시스템에 매입 혹은 매도 내역을 입력하는 절차를 말한다.

일반 매매업체들은 자신들이 입력한 제시·매도신고가 조합을 거쳐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보고되는지 알지도 못한다. 알건 모르건 전혀 관계기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국토해양부는 뜬금없이 위와 같은 입법예고를 했을까. 갑자기 불거져 나온 문제는 아니다. 업계 내적인 문제이지만 오랜 갈등의 역사가 있는 문제에서 비롯된 사안이다.

우리나라의 법 규정상 중고차매매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매조합에 가입해야 된다는 규정은 없다. 그렇게 가입을 강제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문제는 임의단체에 불과한 중고차매매조합에 제시·매도와 같은 행정권한을 독점적으로 위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매조합에 가입을 하지는 않을 권리는 있지만 만약 매매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떻게 제시·매도신고를 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권한을 위탁한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직접 제시매도 신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전산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해당기관은 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적, 인적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매매조합 쪽으로 일을 떠맡기게 되는 것이다. 조합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리를 해 주기는 하되 전산시스템이 아닌 수작업으로 해 주고 있다. 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에 조합원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전산시스템을 비조합원이 이용하게 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러면서도 수리를 해 주면서 건당으로 수수료를 납부할 것을 요구한다. 별도의 수작업 수리를 하다 보니 인건비가 소요된다는 논리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이용자들에게 분명한 차별 대우를 하고 이것을 그들이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위탁된 행정권한을 조합이 임의로 남용하거나 부당하게 처리함으로써 수 많은 민원이 발생해 왔다. 본래 조합의 권한도 아닌, 국가기관으로부터 수탁된 권한을 아무 근거도 없이 특정업체에 그 이용을 제한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사례가 비일비재 했다는 것이다. 조합이 아니면 안 된다 해서 아예 별도의 조합을 만들어서 기존 조합의 부당한 처사에서 벗어 난 사례도 있다. 수도권의 모 지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에 관한 법규를 보면 권한의 수탁자는 그러한 행위를 하면 못하게 돼 있다. 공정거래법의 규정에도 사업자 단체의 우월적 지위남용 금지 규정이 있다.

조합가입비나 지부 가입비를 턱없이 높게 책정해 놓아도 제시·매도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조합의 가입이 필수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가입비를 감수하며 조합에 가입한 사례도 있다.

조합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근 인력의 인건비나 기타 여러 가지 관리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소정의 비용을 징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비용 자체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비용의 요구 수준이다. 특히 상식적으로 맞지 않게 높은 가입비를 책정해 놓으면 그것은 신규진입을 막으려는 부당한 방해 행위로 인식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가입을 하려 해도 가입을 받아 주지 않는 행위다. 대기업 관련 업체들이 가입을 하려 할 경우에 흔히 가입을 받아 주지 않기도 한다. 조합의 정관이나 운영 규정에 아예 대기업 관련 업체의 회원 가입을 금하기도 하고 아니면 회원업체의 이익에 반하는 업체의 가입을 금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뒀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토해양부가 제시·매고신고의 수리권한을 복수의 경로로 해 놓은 것은 일부 조합이 특정 매매업체의 조합의 가입을 거부하거나 제시·매도신고의 수리를 부당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가입을 거부당한 업체들이 국가권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신고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신고는 결국 주무부서인 국토해양부의 부담으로 이어 진다. 담당 주무관들이 계속 민원 해결의 압박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국회까지 끌려가서(?) 답변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서면이나 인터넷으로 접수된 민원은 일정 기간 내에 반드시 회신을 해 주게 돼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일 중의 하나다.

결국 일부 매매조합의 특정 업체에 대한 조합가입 허용거부가 제시·매도 신고수리의 복수 경로화를 초래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매업체들이 조합을 탈퇴하거나 따로 교통안전공단에 제시·매도신고를 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혹은 소수의 업체들이 별도로 제시·매도신고를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매매사원증을 기존의 조합(법적으로는 연합회)이 발급해 주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여전히 조합 가입을 해야만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조합의 운영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비용요구 수준에 불만이 있는 업체들이 조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제시·매도의 신고 경로가 많아진다는 자체가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다. 위와 같은 문제점들이 시정돼 기존의 방식대로 조합으로만 제시·매도신고가 이뤄지는 것이 조합의 운영이나 대외적인 이미지상 바람직하다.

조합가입에 대한 규제를 없앤다면 향후 대기업의 업권 침탈은 어떻게 막고 영세업체의 생존권은 어떻게 사수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그 논쟁을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 단칼에 해결할 수 있을까.

문제는 ‘제시·매도신고 수리’라는 남의 집 칼을 더 이상 우리 집 부엌에 두고 쓰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제시·매도신고 수리는 중고차매매업계의 고유권한이 절대 아니다. 국가의 의무이자 권한이다. 이것을 이용해 매매조합의 생계를 이어가려는 생각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일부에서는 벌써 머리에 띠 두르고 조치원으로 모여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전체 매매업체의 사업자 등록증을 반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물론 결단적 행동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필요할 때는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 매매업계가 자초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명분을 가지고 그 때까지 위에서 예고된 입법을 유보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순서다.

공무원들을 상대로 대화하고 협상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해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들이 존중하거나 무서워하는 방식이 아니라, 귀찮아하는 방식으로만 일을 처리하려 해서는 안된다. 특히 공무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결코 실익이 없을 것이다.

‘제시·매도신고 수리 경로의 복수화’라는 불똥이 매매업계에 떨어져 있다. 지금은 관련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이다. 어떤 식으로, 어떤 의견이 수렴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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