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왕별희>의 장국영(왼쪽), <매란방>의 여명(오른쪽)     © 이뉴스투데이
 

“15년전 내가 만든 <패왕별희>하고는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

첸 카이거 감독이 언론시사회에서 한 말이다. “왜 또 경극을, 그것도 ‘패왕별희’를 선택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다른 작품이며 사랑보다 경극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슬픔과 예술인으로써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산 ‘매란방’의 고뇌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감독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매란방>의 ‘원화(매란방의 유년기 이름)’에게서 <패왕별희> ‘데이’의 모습을 찾았다. 15년전 우리를 경극의 세계로 빠지게 했던 장국영(데이 역)의 아름다운 자태와 슬픈 눈빛을 떠올리며 여명(매란방 역)이 그때의 감동을 재현하길, 故 장국영의 연기를 뛰어넘기를 기대했다.

“1분 1초라도 함께하지 않으면 그건 평생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데이의 대사처럼 평생을 함께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여자로 살아야했던 여장경극배우의 숙명적인 삶과 절절한 사랑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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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는 절망적이다. 첸 카이거 감독의 영상미는 녹쓸지 않았지만 여명이 장국영을, 장쯔이가 공리의 연기를 뛰어넘지 못했다.

두 작품 모두 중국 전통 예술 ‘경극’과 경극 배우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패왕별희>가 살로(장풍의)를 향한 데이(장국영)의 사랑과 주샨(공리)과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매란방>은 사랑보다는 예술인으로써 매란방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는 유년기부터 일제에 항거해 무대를 떠나는 40대 후반의 모습까지 매란방의 반세기를 그리고 있다. ‘원화’로 불리는 유년시절과 스승으로 모시던 대배우와의 대결, 스승 구여백(손홍뢰)을 만난 후 경극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경극대왕’으로 불리며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시절, 남장 배우 맹소동(장쯔이)과의 만남과 가슴아픈 이별,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경극을 미국에 알리고 일본 침략 기간에 홍콩에 머물며 일본을 위한 공연을 완강히 거부했던 모습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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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 카이거 감독은 이 영화에 무리수를 두었다. 자신의 전작 <패왕별희>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위대한 경극 천재 ‘매란방’의 특별한 삶을 모두 영화에 담고 싶다는 욕심이 빚어낸 결과다.

11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매란방’의 반세기를 모두 담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매란방의 내면적 갈등이나 고난, 사랑의 격정 등을 버리고 매란방의 인생 줄거리에만 매달렸다. <패왕별희>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첫번째 이유다.

관객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분명 ‘매란방’의 일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패왕별희> ‘데이’가 무대 위에서나 밖에서나 여자로 살아갔다면, ‘매란방’은 무대 위에서만 여자고 무대 밖에서는 ‘남자’로 살아간다. 부드럽긴 하지만 저음의 남자 목소리를 내고 아내와 아이를 둔 ‘단’(여장경극배우를 일컬음).

물론 이것이 실제 경극배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패왕별희> 속 ‘데이’는 우리가 기억하는 유일한 ‘단’의 모습이다. 아쉽게도 여명은 우리 뇌리속에 박혀있는 장국영의 연기를 잊게 해주지 못했다. 15년이 지난 ‘데이’가 어제 본 ‘매란방’보다 또렷히 기억나는 이유는 관객의 탓이 아니다. 이게 <패왕별희>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두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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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개봉전부터 여명과 장쯔이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중화권은 물론 세계적으로 네임파워를 가지고 있는 두 배우가 주인공이라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영화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거기다 ‘경극배우’로의 파격변신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고취시켰다.

그런데 주인공 여명은 영화의 반이 흐를 무렵 등장하고 장쯔이 또한 하나에 에피소드처럼 짧게 등장한다. 조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두 사람의 사랑도 무미건조. ‘매란방’의 예술활동을 위해 할 수 없이 떠나야 했던 ‘맹소동(장쯔이)’의 발걸음이 너무 가볍다. “당신도 나도 그를 전부가질 수 없다. 그는 관객의 것이다”는 매란방의 부인 복지팡(첸 홍)의 한마디에 맹소동은 단박에 마음을 정리한다.

매란방의 자제이자 최고의 경극배우를 통해 직접 연기지도를 받으며 혹독한 훈련을 했다던 두 사람의 경극 모습도 ‘경극배우의 인생’을 다뤘다는 이 작품에서 너무 적게 등장한다. 영화에 사랑도 없고 경극도 없다. 경극 특유의 화려한 의상과 무대만이 있을뿐. 이게 <패왕별희>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세 번째 이유다.

영화 관계자들이 지적하듯이 편집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기술적인 부분까지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30분 분량을 잘라내야 했던 감독의 고충도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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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란방>을 ‘수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여명의 아역을 맡았던 배우의 연기 때문이다. 여성스러운 표정, 몸짓, 목소리 그리고 열정을 담은 초롱초롱한 눈빛, 경극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담은 그의 뛰어난 연기는 오히려 여명의 연기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매란방의 스승 구여백 역을 맡은 손홍뢰 또한 ‘중국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란 타이틀에 걸맞는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서편제>에서 소리를 잘 하려면 ‘한’이 었어야 한다며 딸의 눈을 멀게 만들었던 아버지처럼 구여백도 무대위의 그(매란방)를 만드는 것은 내면의 ‘외로움’이라며 맹소동을 떼어놓기위해 살해교사까지 한다. 순전히 예술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매란방이 ‘평범한 삶을 원했음’을 뒤는게 깨닫는 그의 쓸쓸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품은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백부의 편지다. 그 편지 속에 담겨진 메시지는 영화 전반을 관통하며 일관성 있게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이 길은 네가 생각한 것보다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러니 가지 말아라. 그러나 진정 네가 이 길을 원하고 가고자 한다면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어라. 그리고 부디 배우로서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백부가 찢지 못한 종이족쇄는 예술인이 갖는 고난과 속박을 상징한다. 결국 원화도 그 종이족쇄를 찢지 못해 그의 운명적 사랑 ‘맹소동’을 떠나보내고 관객들을 위해 무대로 돌아간다.

주연배우 여명과 장쯔이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버리고 천재 경극인의 삶과 영화에 담긴 메시지만을 본다면 분명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양미영 기자> myyang@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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