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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계에 폭풍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간 증권사들은 자체적으로 소액결제 등의 은행 업무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은행 결제시스템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고객 입장에서 특정 은행을 거쳐야 증권 거래가 가능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자통법 시행 이후 금융업종의 경계가 무너짐에 따라 소액지급결제가 가능해진 것이 가장 기대된다”고 말했다.

자통법 시행 이후 혜택을 볼 수 있는 업종은 투자은행업과 자산관리업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IB업무를 강화하고 신규 증권사 설립 이후 시장 경쟁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발빠르게 수수료를 인하하는 등 몇 달 사이 증권가에는 폭풍전야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 신설 증권사 “안그래도 많은데…”

금융위원회는 9일, 신규 증권업을 신청한 13개사에 대한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8개의 신규증권사 설립을 허용했다. 
 
이로서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증권사는 54개에서 62개로 증가할 전망이다.

세부적으로 종합증권업은 기업은행, SC제일은행, KTB네트워크등 3개사가, 자기 매매와 위탁매매업은 LIG 손해보험과 토러스 증권의 2개사, 위탁매매업은 ING은행, 코린 교역, 바로증권중개(박준형)의 3개사가 신규로 허가됐다.

또한 위탁매매업에서 종합증권업으로 업무 전환을 신청한 BNP파리바증권과 지점에서 현지법인으로 전환하겠다고 신청한 리먼브라더스에 대해서도 예비허가를 승인했다.

그렇다면 신설 증권사들은 안착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증권업계의 장기적 경쟁 심화가 불가피할 것이나 신규 증권사의 진출로 인해 특별히 수익모델에 타격이 올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선호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시장참여자의 증가로 인한 경쟁심화가 단기적인 수익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신규진출사의 초기 설립규모를 감안시 기존 대형사와의 본격적인 경쟁이 이루어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신규진출사가 IB업무 중심의 증권업을 표방하고 있고 단기간에 가장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위탁매매 시장도 초기 진출시 시장 접근이 용이하고 비용측면에서도 부담이 적은 온라인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실질적인 경쟁은 대형사보다는 신규진입사와 중소형, 그것도 온라인 증권사 간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브로커리지 시장이 이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고객 세분화가 이루어진 상태라 기존 대형 증권사가 대규모의 고객 기반 이탈로 수익이 훼손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분석했다.

■ 신규 설립? 우리는 그냥 사버린다

2009년 시행될 자통법에 대비해 중견 기업들의 금융기관, 특히 증권사에 대한 러브콜이 뜨겁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3월, 신흥증권을 인수해 HMC투자증권으로, 국민은행은 한누리투자증권을 인수, KB투자증권으로 사명을 변경 했다. 솔로몬 저축은행도 KGI 증권을 인수했다.

매각작업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CJ투자증권과 CJ자산운용의 매각 입찰에 현대중공업, ING그룹, 포스코 등의 업체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 CJ투자증권 이외의 대형매물이라 할 수 있는 건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연초 몇몇 증권사의 이름이 거론되며 매각설이 돌았으나 실제로 현재 매각이 완료된 증권사는 신흥증권과 한누리투자증권, KGI투자증권 뿐이다.

증권가 관계자는 “인수된 증권사들은 업계 하위권이다. 대형사와 비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 또한 신흥증권 인수 당시 “신규 설립과 인수 사이에서 증권업 허가를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기운 것 뿐”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현재 각 기업들은 증권사 인수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인수된 뒤 HYUNDAI IB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가 소송에 휘말려 HMC투자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한 신흥증권만이 모그룹에서 7조7천억원에 달하는 금융거래로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받을 예정이다.

KB투자증권의 경우 올 하반기에나 지원이 있을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확실하게 일정이 나오진 않았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재 인가를 받지 못한 회사들이 이대로 증권업 진출 의지를 접을 리는 없다는 전망이다. 또한, 산업은행 민영화로 인해 대우증권의 매각이 추진될 경우 증권가에 다시 한번 M&A바람이 휘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증권사가 너무 많다”며 “내년이나 내 후년쯤에는 몇 개나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10개 이하로 줄어들 것이며,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 수수료 인하, ‘신참이 어딜 넘봐’

하나대투증권이 위탁매매수수료를 인하한 뒤 곧바로 동양종금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동참하며 결국 키움증권과 이트레이드 증권 등 온라인 증권사들의 연쇄적인 수수료 인하로 이어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하나대투증권의 인하 소식에 “한판 해보자는 것 아니냐”며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이후 그 증권사도 수수료 인하를 강행했다.

현재 업계는 “수수료 인하로 중소형 온라인 증권사에는 타격이 있을 것이나 대형 증권사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수수료 인하를 시작한 증권사들은 공통적으로 위탁매매 이외의 부문에서 수익창출 비용이 높다.

하나대투증권의 위탁매매 수수료가 전체 수익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온·오프라인 포함, 12월 말 기준으로 42%, 동양종금증권의 경우 35%다. 전체 증권업종의 평균 수익구조에서 위탁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48%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은 수준이다.

수수료 인하로 인한 위탁매매 부문에서 수익이 감소한다면 타격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전체 이익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업계에서는 수익구조 경쟁력을 보유한 증권사가 수수료를 인하한 것은 현 고객층의 대규모 이동 가능성보다 자통법 이후 주식시장 신규 진입자의 선점과 신설증권사들과의 경쟁 상황에서 시장을 미리 선점하려는 의도가 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최종원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신규증권사의 영업은 수수료 인하와 함께 위탁수수료 부문에서 발생할 것이므로, 하위권 증권사가 경쟁의 대상이 될 것”이며 “신규 증권사들도 기존 증권사들의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당초 계획했던 영업전략을 펼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몇몇 증권사는 “인하 예정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관계자들은 “최근의 유관기관 수수료 인하는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나 하나 같이 “수수료 인하를 하는 것 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고객을 위해 더 좋은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그들이 시큰둥한 이유는 투자은행으로의 성장을 꾀하고 있는 대형사에게 위탁수수료 수입 부문은 더 이상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핵심 시장이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박선호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규제완화와 수익구조 개선을 통한 고위험 고수익업무로의 진출이 본격화된 시점에서 기존 대형사들이 추가적인 출혈을 감내하며 수수료 인하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IB 능력 강화, ‘몸집 불리기’가 최고

최종원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향후 증권사들의 방향에 대해 “자기자본 확대, IB 업무의 경력, 그리고 전문인력 확보와 리스크 관리능력이 제고 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통법을 대비해 증권사들은 IB업무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서를 신설하거나 인력을 충원하고 있지만, 전문성을 위해서는 조금 더 몸집을 불릴 필요성이 있다.

최근 발표된 자통법 시행령에 따르면 현재의 증권사, 자산운용, 선물, 종금사, 신탁 등의 업무를 모두 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 설립에 필요한 요건은 2,000억원의 자기자본이다. 이는 당초 업계에서 1조에서 2조 정도로 추정됐던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파격적인 조건이지만 정부가 원하는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보통 35조에서 36조원에 달하는 자기자본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현재 자기자본 비율로 국내 5대 증권사의 모든 자기자본을 합쳐도 글로벌 5대 투자은행의 1곳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규모의 확장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IB업무는 자기자본비율이 클수록 유리하다. 그렇다면 몸집부터 불리는 것이 수순이며, 가장 손쉽게 몸집을 불리는 방법은 인수 합병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금과 조건만 맞는다면 M&A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제 증권사들이 금융투자회사로 거듭날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2월 시행될 자통법, 여의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쟁을 이미 시작했다.
 
<유병철 기자> dark@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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