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의 각 조항은 국민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의 각종 권리·의무를 정하고 있는데, 다른 직역에는 적용되지 않는 까다로운 규제가 다수 존재한다. 이를 통해 환자와 그 보호자들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때로는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어 주의를 요한다. 오늘은 의료법 제21조 제1항의 진료기록 사본 발급 의무에 관해 기억에 남는 케이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의료법을 살펴보면 진료기록부 사본 발급 의무를 위반할 경우, 시정명령에 더해 벌금형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의료법 제21조(기록 열람 등) ① 환자는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및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본인에 관한 기록(추가기재ㆍ수정된 경우 추가기재ㆍ수정된 기록 및 추가기재ㆍ수정 전의 원본을 모두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열람 또는 그 사본의 발급 등 내용의 확인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및 의료기관 종사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거부해서는 아니 된다.

제63조(시정 명령 등) ①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의료기관이 제21조제1항 후단을 위반한 때에는 일정한 기간을 정해 그 시설ㆍ장비 등의 전부 또는 일부의 사용을 제한 또는 금지하거나 위반한 사항을 시정하도록 명할 수 있다.

제90조(벌칙) 제21조제1항 후단을 위반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서울 소재 대학병원의 주치의 A에 대한 형사고발 건이다. 치료 및 입원 과정에서부터 의료진, 행정인력들과 여러 번 충돌을 일으킨 소위 블랙리스트 환자가 있었는데, 이 환자가 예약도 없이 진료실에 찾아와 주치의 A에게 진료 기록 복사를 요청했다. 이에 주치의 A는 병원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1층 접수창구에서 신청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그러자 환자는 “지금 사본 발급 거부하는 거냐?”라고 되 물었고, A는 “거부 하는 것이 아니라 1층에 가서 발급받으시면 된다는 말이다”라고 재차 설명했다.

하지만 환자는 그 직후 녹음파일을 가지고 경찰서로 달려가 “대학병원 의사 A가 진료기록부 사본 발급을 거부했다”라는 취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황당한 것은 담당 수사관의 태도였다. “그니까 환자가 요청하는데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하신 건 맞잖아요”라면서 반복적인 질문을 하면서 유죄의 심증을 내비쳤다. 결국 이런 어이없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이후 변호인이 검사와 면담을 신청해 병원의 시스템을 설명해 줬고, 담당 검사가 별 다른 고민 없이 A에게 불기소(죄가안됨) 처분을 내려주면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처분이 나오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그 과정에서 이 어이없는 사건에 신경 쓰느라 의뢰인이 많이 힘들어 했던 기억이다.

다음 사례도 상상 이상으로 황당한 케이스다. 모 보험사 직원이 실손의료보험 청구와 관련해 환자의 동의를 받아 B의원에 기록 사본 발급을 신청했는데, 마침 그 시간에 B원장이 수술 중이었다. 이에 간호사가 그런 사정을 설명하고, 2시간 뒤에 다시 오시면 발급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보험사 직원은 연락처를 남기고 자리를 떠나더니, 그 길로 보건소에 민원을 접수해 B원장이 기록 사본 발급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보건소에서 소명 요청을 받은 B원장은 혼비백산해 자문변호사인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듣고 보니 위 A주치의 케이스처럼 의료법 위반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사례가 분명했다. 하지만 대응을 허투루 했다가는 불의의 타격을 입게 될 수도 있어, 투 트랙으로 변호사는 보건소에 대한 소명서를 준비하고, B원장은 보험사에 민원을 접수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보험사에 대한 민원이 더 빠른 효과를 발휘해 담당 팀장이 사과하고 민원을 취하했으나 우리는 뒷맛이 찝찝했다.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서 민원에 놀아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무고죄 고소를 강력히 검토해 보았으나 고소 이후의 귀찮은 절차들을 고려해 더 이상 사건을 키우지 않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처럼 굉장히 사소해 보이는 법조문 하나 때문에 민원이나 형사 고소 등에 시달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사소한 법위반이 치명적인 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민원인을 대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더 잦아지고 있기에, 나는 “무고죄 고소”를 강력하게 추천하곤 한다. 적어도 서면으로 진정서, 고발장 등을 접수해 무고한 사람을 형사처벌의 위기에 몰아넣었다면, 형법상 무고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의 요건도 충분히 충족한다. 이런 무고죄 고소를 통해, 가볍게 던진 돌이 상대방에게는 큰 고통이 될 수 있고 그로 인해 본인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성 민원인들이 인지한다면 앞서 언급한 어이없는 민원, 고소·고발 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이와 관련해, 사본 발급 비용을 안내하지 않거나, 2019. 12. 30.부터 시행된 보건복지부 고시, ‘의료기관의 제증명수수료 항목 및 금액에 관한 기준’ 에 맞지 않는 금액을 청구했다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오승준 변호사 약력>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외래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의료,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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