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은‘판매된 그림을 보조 작가가 그렸다’는 점을 고지하지 않아 사기죄로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 사기죄가 성립이 되는 건지 아닌지와 같은 법리 논쟁을 거론할 의도는 애당초 없다. 나름 건강하고 아름다운 코에 인생을 건 의사로서 인간의 미적 기준에 대한 미학적 입장이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의술과 미술은 아름다운 존재를 본래의 모습으로 치료하고 때론 형상화하는 가치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인체 관련, 많은 그림을 남겼다. 사실적 묘사를 위해 인체 해부를 직접 해보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해부학적으로도 매우 정확하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반 레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도 인체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미술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데 그는 뱀을 형상화한 지팡이를 들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지팡이에 뱀이 꼬여 있는 그림을 구급차에서 목도한다. 아마도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된다. 의술과 미술은 이렇게 연결된다. 인간의 질병을 다루는 의학과 인간의 신체를 표현하는 미술은 각자의 관점에서 유형무형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다.

조영남의 대작 논란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국내의 여러 작가들은 물론이려니와 데이미언 허스트 같은 세계적인 작가도 조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100명 이상의 작가를 두고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팝아트의 창시자로 불리 는 앤디 워홀의 경우“나는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았다”라고 대작 사실을 호언하고 다닐 정도였다. 조선 후기 문인 화가로 유압도와 비안도를 그린 홍세섭도 아버지와 함께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화가에게 있어서 조수의 존재는 작품 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거래 관행상 구매자는 작가에게 조수 사용 여부를 묻지도 않는다. 이점은 틀림없다. 

미술전공자가 아닌 내가 어디까지가 적법한 조수 사용이고 어디까지가 위법한 대작 화가를 활용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지난하다. 그 기준이 뚜렷하게 제시될 수 있느냐 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조수를 사용하는 화가들이 존재하는데 그런 화가들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불안감 속에서 지내야 되지 않느냐는 우려에 수긍이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의 심리 과정에서 어느 대법관의 입장도 그러했다. 

작가가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조수에 맡기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줄 곳 이어져왔던 미술계의 관행이었다. 더군다나 열린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조영남 논란의 경우 예술의 영역에 사법당국이 간섭할 수 있는 것인지도 선 듯 수긍이 안 간다. 조영남의 대작 논란이 행여, 난해하고 추상적인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참극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 

조영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미학자 진중권은“회화가 가장 회화적이었던 바로크 시대에서조차도 거장들은 자신의 서명이 담기는 작품의 물리적 실행을 조수의 손에 맡겼고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개념적 혁명 이후 자기 손으로 직접 그리거나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예술의 필수 요건으로 여기지 않게 됐다”라고 주장한다. 

서늘한 대중의 시선과 어긋난 발언일 수도 있는 그의 입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대중은 이 사건에서 화가가 자기 그림을 남에게 대신 그리게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라며 "하지만 그들과 달리 나는 외려 이미 수십 년 전에 창작의 정상적인 방법으로 확립된 그 관행을 여전히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미학적 관점으로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대작 유무를 떠나 조영남 대작 논란의 본질은 따로 있다. 협업과 대작의 기준점은 해당 예술의 사조와 작품 규모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고전미술, 서양화, 동양화, 추상화는 대체로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설치미술, 개념미술, 팝아트 등의 분야에서는 특성상 협업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논란의 당사자인 조영남 스스로도 자신을 팝 아티스트라고 호칭하며 협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17세기 유럽의 대표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조수들과 함께 작업한 것은 도제관계로서의 작품 참여였다. 그는 함께 작업한 작품을 팔아 제자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조력자에 대한 당연한 부양의 의무였다. 

그래서인지 조영남 대작 논란에 자리 잡은 대중의 분노는 이유 있다. 대작 작가가 그린 그림에 사인만 하거나 일부 덧칠만 하여 자신의 작품으로 팔면서, 조수라 칭할 수 있는 대작 작가에게는 정작 박하게 대우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조영남의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본인의 대작 사실을 정당화하는 '협업은 예술계 관행'이라고 항변했지만 정작 역사적 '예술계 관행'인 조수의 조력에 상응하는 합당한 대우는 도외시했다. 대중의 싸늘한 시선도 여기에 닿아 있다.

조영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는 미술계의 몫으로 남겨주는 것도 좋을 법하다. 사회적 논란은 거칠지만 않는다면 뜨거울수록 좋다. 그러나 이참에 낮은 곳에서 고단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화가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길 소망해본다. 그것이 조영남 대작논란의 인간적 본질이다.

안태환 원장 약력

▪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 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前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 레이저 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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