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지금까지의 일상과 완전 다른 ‘뉴 노멀’의 일상을 맞이하게 된다. 언택트 사업이 활성화되고 생활 속 방역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예상해 본다. 이 글이 미래를 준비하는데 작은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사진=연합뉴스]

‘5월 30일 오전 9시 37분. 김.현.수. 님의 오늘 체온은 36.9도 혈당은 구십-오.입니다. 가벼운 조깅으로 활기찬 아침을 준비해보세요.’

‘AI 닥터’의 낭랑한 기계음은 언제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초기 음성 AI에 비하면 꽤 사람다운 목소리를 낸다고 하지만 녀석에게서는 여전히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도 아닌 것에게 인간미가 느껴진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김은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일정을 확인했다. 김은 대단히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었다. AI가 건강관리를 해주고 4단계 자율주행차가 자리 잡았지만 김은 여전히 종이로 된 다이어리를 열어 일정을 점검했다. 

“아리아, 오늘 스케줄 알려줘.” / ‘김.현.수. 님의 5월 30일. 스케줄은 종일 일정으로 엄마.집.방문.이 있습니다.’ / “오케이, 고마워.” / ‘별말씀을요.’ / “...싱거운 녀석.”

다이어리와 AI의 일정을 모두 확인하는 것. 아날로그 인간인 김이 디지털 시대를 사는 방법이었다. 

김은 오늘 고향에 방문하기로 했다. 4개월 만에 내려가는 길이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발병한 코로나19 탓에 집에 내려가는 일은 유난히 조심스러웠다. 

코로나19의 대재앙도 벌써 12년이 지났다. 백신과 치료제는 진작 개발됐지만 여전히 산발적으로 발병되는 탓에 외부 이동은 조심스럽다. 이 병은 말라리아나 에이즈와 달리 전염성이 강력해 ‘생활 속 거리두기’는 평생 안고 가야 할 일상이 돼버렸다. 

김은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쓰는 일은 없어졌지만 매일 아침 AI가 체온을 측정해주고 집과 자동차를 살균 관리하는 일은 익숙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만간 코로나19 종식을 알린다고 했지만 그것도 벌써 2년 전 일이다. 이 전염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모양이다. 

김은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샤워실로 들어섰다. 전날 밤 ‘미용수’로 샤워한 덕에 피부가 다소 미끈거렸다. 아날로그 인간인 김은 샤워하는 물이 따로 존재하는 세상에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귀가 후 샤워는 ‘미용수’라 불리는 물로 한다. 

그러나 말이 ‘미용수’일 뿐 이 녀석은 외부에서 묻은 세균과 바이러스, 미세먼지를 씻어내는 소독수다. 인체에 무해하고 피부관리도 되는 녀석이다. 김은 미용에 큰 관심이 없지만 ‘소독’이라는 다른 목적 때문에 억지로 이 물에 샤워를 한다. 그리고 이 물은 아파트 옵션이다. 아침 외출 시 샤워하는 물은 ‘청정수’라고 불린다. 이 물은 미용수를 씻어내고 피부 보호막을 형성에 세균과 미세먼지를 막는다. 이것도 아파트 옵션이다. 

김은 10년째 적응이 되지 않는 ‘샤워전용물’로 씻고 외출을 했다. 밤새 살균 중이었던 UV LED 램프를 끄고 차 문을 열었다. UV LED 램프가 자동차의 기본 옵션이 되면서 주차장 풍경이 꽤 재미있어졌다. 예전에는 어두컴컴했던 지하주차장이 지금은 온통 푸른 빛으로 살균하고 있어 마치 옛날 TV프로그램 ‘토요미스테리극장’ 속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오싹함을 전한다. 심지어 주차장 입구까지 차량용 소독수와 UV LED 램프가 있어 더 무섭다. 

“아리아, 엄마집.” / ‘네, 엄마집으로 안내를 시작합니다.’

미래가 꽤 오래된 것 같지만 아직도 ‘완전 자율주행’은 꿈의 이야기다. 자동차 회사들은 AI가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윤리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운전자를 지키기 위해 무단횡단 중인 어린 아이를 치는 것이 정당한지 AI는 여전히 판단하지 못한다. 

심지어 보험회사의 AI조차 이것을 판단하지 못해 자율주행은 4단계에서 멈춰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AI에게 운전을 맡기지만 돌발상황이나 사고위험이 있을 때는 운전자가 직접 조작해야 한다. 정부는 완전 자율주행이 확보되기 전까지 도로를 정비해 인명사고를 최대한 막겠다는 방침이다. 

세종시 시험운행 자율주행차. [사진=연합뉴스]

김은 4단계 자율주행차를 타면서 완전 자율주행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에게도 두려움을 느낀 김은 그보다 더 고도화 된 AI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자주 걸린다는 ‘AI공포증’의 초기증상이지만 병원에 가야 할 수준은 아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김은 잠시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은 AI를 통해 미리 가까운 휴게소에 접속하고 음식을 주문했다. 5분 뒤 휴게소에 도착한 그는 미리 준비된 돈가스를 받아 식사를 했다. 

코로나19 이후 휴게소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었다. 휴게소에 미리 도착해 느긋하게 앉아서 음식을 주문하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대신 공원을 산책하고 매일 살균관리하는 안마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쉬는 시간이 늘어난 대신 먹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김은 그런 휴게소조차 ‘인간미가 없다’고 느꼈다. 

대도시를 벗어난 시골은 그래도 꽤 아날로그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들판에는 원격조정 트랙터가 논을 갈고 있었고 AI 드론이 참새를 쫓고 있었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들판에서 조화롭게 뛰어논다. 그 모습은 김이 바랬던 이상적인 미래였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비대면 일상은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미래였지만 그 과정이 인간을 그리 억압하게 될 줄, 김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몇 가지 생각에 잠긴 사이, 김은 고향집에 도착했다. 김의 고향집은 얼마 전 형제끼리 사비를 모아 리모델링했다. 옛날 집의 향수가 남아있는 어머니를 위해 새롭게 짓는 대신 기존 집의 구조를 살리면서 새롭게 공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IoT 디바이스와 AI를 적극 활용해 원격으로 어머니의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했고 AI 디바이스가 될 로봇강아지는 어머니의 친구가 돼주고 있다. 녀석은 4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뽀삐를 대신하기 위해 뽀삐라는 이름을 얻었다. 새로운 뽀삐는 꽤 똑똑하게 어머니의 일상을 도와주고 있었다. 

김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디지털이 일상이 된 전원마을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 냄새에 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어머니표 된장찌개를 먹을 생각에 김은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 설렘은 김의 목소리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김은 현관문을 열며 설렘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엄마! 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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