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도입부다. 18세기 파리와 런던 두 도시를 배경으로 프랑스 대혁명 속에 벌어지는 인간의 거칠고 무딘 내면을 세상 그 어느 문장보다 유려하게 그려냈다.

찰스 디킨스를 꺼내든 건 이태원 발, 코로나19 집단 확진자 발생의 단상이다. 시민들의 평화롭던 일상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흩날려 갔기 때문이다. 개학도 연기됐다. 서늘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속절없이 연장됐다. 심장이 뜨거운 청춘들에겐 감염병에 의한 움츠려든 일상이 못내 답답했을 것이다. 소강상태로 접어든 감염병의 추세는 젊은이의 거리로 이들을 이끌었다. 서울 도심 하늘 아래의 어느 날 밤 풍경의 휘황찬란한 빛의 시간들은 이윽고 어둠의 시간을 불러들였다.

4월 경북 경산의 60대 내과 의사는 외래 진료 중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 후 감염돼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의 숭고한 죽음은 가뭇하다. 흐르는 것은 시간뿐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의 희생에 기대는 것이 아닌 체계화된 감염병 대응의 과제를 남겼다. 이 몹쓸 감염병은 반드시 종식될 것이지만 의료진들의 노력과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가족이 무사하다면 ‘누군가가 우리 대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배려의 진실 앞에 숙연해져야 한다. 이태원 발 집단감염의 확산으로 의료진들은 엄혹한 채비를 다시 요구받고 있다. 서울과 경산, 두 도시는 같은 하늘 아래였지만 슬픔의 시절은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고 있다.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꾼 코로나19는 1956년 처음 어버이날이 지정된 이후 자식들이 마음대로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 불효의 시절을 잉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시는 요양병원 입실자 대부분이 코로나19에 취약한 어르신이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드레스 코드가 됐고 비대면 서비스가 트렌드로 떠올랐다. 병원과 공공기관과 은행, 상점의 문 앞에는 여지없이 '마스크 없이 입장 금지'라는 문구가 서슬 퍼렇게 붙여져 있다. 건조하지만 비장하다. 사람에 대한 믿음의 세기였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불신의 세기이기 때문이다.

CNN을 통해 본 뉴욕 도시의 풍경도 생경하다. 세계 경재의 허브를 자처하던 최고의 도시 뉴욕은 다시 최악의 도시로 치달았다. 맨해튼의 호텔 발렛 요원과 도어맨은 사라지고 프런트 데스크에서는 호텔리어 대신 의료진이 고객을 맞는다. 체크인을 할 때도 정해진 구역에 서야 하며 엘리베이터도 한 명씩만 탑승할 수 있다는 보도에 찰스 디킨스의‘두 도시 이야기’를 떠올린다. 최고의 시절을 보낸 뉴욕은 모든 것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인류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시의 공간은 인간의 자만함을 비웃듯 무너져갔고 빛나는 세계 유수의 도시들은 이내 슬픔에 잠겼다. 파리에서 베네치아 그리고 도쿄까지 그 어리석고도 허망했던 화려한 도시의 이름들 앞에서 바이러스에 서서히 무너지는 인간의 생명을 우리는 목도했다. 우리 곁에 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교실에서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행인들로 북적이던 거리의 풍경들은 이제 그리움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바이러스의 완전 종식까지는 아마도 긴 시간이 걸릴 터이지만 웃음을 잃어버린 도시는, 다시금 환한 얼굴로 우리를 대면할 것이다. 그날은 올 것이다. 엄혹하고 시린 시간을 살고 있는 도시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되살릴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들을 이어가야 한다. 바이러스에 대한 사회적 긴장감으로 말이다.

바뀐 우리의 일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봄날의 하늘은 맑고, 훈풍은 불며 꽃들은 핀다. 봄날이 향기에 취해 느슨해진 거리두기는 위기로 찾아왔다. 코로나19는 아직도 서슬 퍼렇게 진행 중이다. 아직은 조금 더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하며 지금까지의 기울인 사회적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바이러스와의 최전선에서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의 헌신이 있다. 공간은 다르지만 체감은 같은 도시에서 현재 진행형인 고귀한 헌신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모두의 소중한 일상의 복귀를 늦출 수 있다. 

이태원에서 아주 잠시,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두 도시가 아닌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

안태환 원장 약력

▪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 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前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 레이저 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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