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올해 한국영화 기대작으로 꼽힌 ‘사냥의 시간’이 온갖 우여곡절 끝에 2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2018년 7월 촬영을 마친 후 약 1년 9개월만이다. 

‘사냥의 시간’은 영화 ‘파수꾼’으로 한국영화의 기대주로 불린 윤성현 감독이 9년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이제훈, 최우식, 안재홍, 박정민, 박해수 등 한국영화의 젊은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이다. 

'사냥의 시간'. [사진=넷플릭스]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청춘들의 일탈

‘사냥의 시간’은 가상의 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미래는 40대 이상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이 미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지원을 받은 시대로 1997년 외환위기 당시를 떠올린다. 경제는 피폐해지고 곳곳에서 집회가 일어난다. 거리와 상가는 폐허로 변했고 도심에는 짙은 안개만이 깔려있다. 살아있으나 생동감을 잃어버린 시대라는 점에서 이 배경은 외환위기를 반복하고 있다(영화에서는 실제로 외환위기와 비슷한 상황을 언급한다). 

절망뿐인 시대에서 청춘들은 살 길을 찾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준호(이제훈)와 기훈(최우식), 장호(안재홍)는 강도를 저지르다가 전과를 떠안게 됐다. 그 중 준호는 3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다 출소하고 친구들에게 불확실한 꿈을 전한다. 큰 돈을 마련해 대만으로 떠나자는 것이다. 

이들의 타깃은 달러를 보유한 사설 도박장이다. ‘휴지조각’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원화 가치가 폭락한 시대에 이들은 달러를 직접 털 계획을 꾸민다. 그리고 도박장에서 일하는 친구 상수(박정민)를 끌어들인다. 

강도는 성공으로 끝나지만 이들은 훔쳐선 안 될 물건을 훔치게 되고 이로 인해 암살자 한(박해수)의 추격을 받게 된다. 한은 “도망갈 수 있을 만큼 도망 가봐라.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기고 준호 일행을 쫓는다. 

‘사냥의 시간’은 저 옛날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킨다.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암살로봇 터미네이터가 사라 코너를 쫓는 모습은 SF 액션영화이면서 무자비한 공포영화에 가깝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끝까지 쫓아온다는 공포를 관객들이 고스란히 느끼게 한 것이다. 

‘사냥의 시간’의 플롯 역시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표면적으로 준호 일행을 쫓는 것은 킬러 한이지만 사실 이들은 불확실한 시대에서 늘 쫓기고 있었다. 어른들이 만든 경제위기에서 청춘들은 생존에 쫓기기 마련이다. 

사실 IMF 당시에는 모두가 쫓기는 시대였다. 그 시대에 좌절하고 무너진 어른들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배운 것, 혹은 가진 것을 발판으로 다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 청춘들은 아직 시작도 못해보고 위기를 맞았다. 당연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둑질 밖에 없었다. 

감독은 전작 ‘파수꾼’에서 청춘들 내부에서 비롯되는, 관계에 기인한 불안을 다뤘다. 이번 작품에서 청춘들이 갖는 불안은 외부에서 오고 있다. 결국 ‘사냥의 시간’은 청춘이 갖는 불안과 좌절은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며 그렇게 만든 시대에도 책임이 있음을 묻고 있다. 이를 위해 영화는 SF 액션영화의 장르적 요소를 가져와 긴장감 넘치는 추격극을 만들었다. 

‘사냥의 시간’은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그려내는 시각효과가 탁월하다. 특히 CG를 활용해 비현실적 미래를 만드는 대신 로케이션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실현 가능한 미래를 구현해냈다. 때문에 이 영화는 미래가 배경이지만 좀 더 현실감 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야기의 배경도 무려 ‘외환위기 시대의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사냥의 시간'. [사진=넷플릭스]

◇코로나19부터 법정싸움까지…험난했던 개봉기

영화 ‘사냥의 시간’은 관객들과 만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2018년 7월 촬영을 마친 후 후반작업에 오랜 시간을 소요했으며 드디어 올해 2월 말로 개봉일자를 잡았다. 그러나 1월말부터 번진 코로나19 여파로 극장들이 총체적 위기에 빠지고 상영관 내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영화들이 개봉일을 미루기 시작했다. 

‘사냥의 시간’도 당초 한 달 정도 개봉일을 미루고 3월 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자 또 다시 개봉을 미뤘다. 

이 기간 중 ‘사냥의 시간’ 제작사 리틀빅픽쳐스는 넷플릭스에 협상을 제안해 ‘사냥의 시간’에 대한 판권을 넘겼다. 구체적인 판매비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화업계에서는 제작비를 보전하는 선에서 판권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로 공이 넘어간 ‘사냥의 시간’은 이달 10일로 개봉일을 잡았으나 이번에는 해외 마케팅사인 콘텐츠판다가 이의를 제기했다. ‘사냥의 시간’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던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쳐스가 자신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넷플릭스에 판권을 넘겼다고 전했다. 

콘텐츠판다는 그동안 해외 영화배급사들을 상대로 ‘사냥의 시간’ 해외 판권판매를 진행했으나 영화의 소유권이 넷플릭스로 넘어가면서 해외 기업과의 신뢰도에 타격을 입게 됐다. 

콘텐츠판다는 법원에 넷플릭스 공개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해 ‘사냥의 시간’은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에 공개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넷플릭스는 이에 대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사냥의 시간’ 공개를 보류하겠다”라고 결정해 또 다시 공개 일정은 미뤄졌다. 

넷플릭스 공개가 보류된 사이 리틀빅픽쳐스와 콘텐츠판다는 협상에 들어갔고 리틀빅픽쳐스가 해외 배급사에 직접 사과하고 배상하는 선에서 합의가 됐다. 이어 다시 공개 일정을 잡은 ‘사냥의 시간’은 23일 관객과 만나게 됐다. 

‘사냥의 시간’은 극장 개봉 예정작에서 넷플릭스로 판권이 넘어간 첫 사례다.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영화시장이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앞으로 극장가 침체기가 장기화 될 경우 이같은 사례가 또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사냥의 시간’은 23일 오후 9시 관객들과 온라인 GV를 진행한다. 온라인 GV는 넷플릭스 유튜브와 네이버 V라이브 계정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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