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삼겹살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육전식당 경영인 김모 씨(가명)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중국 항저우에 자신도 모르는 육전식당 체인점이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지인을 통해 접해서다. 상표는 물론 고기 써는 스타일, 메뉴, 반찬 세팅 등 어느 것 하나 ‘원조’ 육전식당과 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중국 지식재산국(상표국)으로부터 한글‧한자로 상표 출원까지 받았다. 알고 보니 자신이 한국에 차린 육전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중국 유학생이 모든 노하우를 그대로 동원해 차린 것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해외 특허 분쟁을 전담하는 특허사무소를 통해 유학생을 상대로 승소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유성원 대표변리사는 21일 본지와 만나 “특수관계인이었던 자가 타국에 가 악의적으로 브랜드를 등록한 경우에 해당됐으며 해법을 찾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지심특허법률사무소는 중국 진출 기업의 특허권과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법률 업무에 특화된 특허사무소다. 현재까지 200건 이상 특허소송을 전담해 90%에 근접한 승소율을 기록하고 있다.

육전식당 상표를 되찾아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중국에는 이미 선출원주의가 통용되고 있었고 유학생이 상표를 대량으로 등록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한국에 있을 당시 1회의 은행 송금 내역만 존재해 한국 육전식당에서 일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작업도 어려움을 겪었다. 유 변리사는 상표 개념만으로는 승소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부정경쟁을 제지하는 중국의 법과 제도를 이용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실제로 상표법 침해 여부를 따지기보다 중국의 반부정당경쟁법에 의한 민사소송과 수출입공평무역국의 행정 제재를 통한 우회적 해결 방식은 통했다. 유 변리사는 “유학생이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외신 광고에 자신을 ‘한국 육전식당의 노하우를 전수받은 중국 지사 총지배인’이라고 칭한 문구를 캡처하고 공증까지 받았다”며 “그의 행위 자체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중국 상표국에 호소한 것”이라고 했다. 법과 규제를 위반한 것이 입증되면 부정행위를 단속하는 상표국도 이를 부정하지 못할 거란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유성원 변리사가 21일 서울 강남구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이뉴스투데이'와 만나 중국 진출 기업의 특허 침해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경선 PD]
유성원 변리사가 21일 서울 강남구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이뉴스투데이'와 만나 중국 진출 기업의 특허 침해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경선 PD]

외식‧뷰티‧패션…상표권 침해 부지기수

중국 현지에 상표권 약용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감염자들을 진료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진 우한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이름을 딴 상표 출원 신청이 44건, 코로나19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상표 출원 신청도 63건에 달했다.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 상표국은 상표법에 따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상표 출원을 불허했다고 전했다. 유 변리사는 “리원량 상표가 유행하면 돈이 될 것이라 본 악의적인 브로커들이 상표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상표브로커 문제가 한국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은 2014년경이다. ‘별에서 온 그대’ 드라마가 중국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류 문화콘텐츠와 더불어 패션, 뷰티산업이 동반 진출했다. 유 변리사는 “중국 사람들은 차가운 음료를 좋아하지 않지만 전지현씨의 대사 ‘비오는 날엔 치맥’이 유행을 타면서 차가운 맥주와 치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이 흐름을 타 한국 외식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 외식, 뷰티, 패션 브랜드의 중국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중국 선출원주의 시스템을 악용한 상표브로커들에게 상당수의 상표권을 빼앗겼다. 상표권 등록조차 쉽지 않을뿐더러 상표권 하나에 10억원씩 요구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중국에 상표브로커를 제지하는 판례나 제도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협상을 통해 따오는 게 최선책이었다. 심지어 중국 현지 기업들도 상표브로커 문제에 상당히 시달리며 국가적 문제로 불거졌다.

기술특허 출원 견제하는 현지업체

고충이 있는 분야는 상표권만이 아니다. 유 변리사는 “한국의 고도의 산업기술력이 중국 현지에 뿌리내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중국 현지의 동종 기업들이 한국 기업의 중국 특허 출원을 제지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무선충전패드의 전자파 차폐시트 원천 기술을 보유한 한국의 A사는 최근 중국 현지 기업들로부터 두 건의 특효무효심판소송을 당했다. A사가 독자개발한 원천 기술은 무선충전 시 자기장의 와류를 잡아주기 위해 금속 리본을 바삭하게 만들어 조각조각을 내는 고도의 공법이다. 기존 페라이트에서 한 단계 진화한 이 기술은 최근 출시된 애플 아이폰11에도 적용됐다. 기존 페라이트를 공급해오던 중국업체들은 애플이 A사 제품을 쓸 수밖에 없게 되자 손을 쓴 것이다.

중국 업체가 현지에서 한국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탓에 승소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중국 업체들은 비정질 금속 리본을 이용한 기술은 이미 공개된 것이라 기존 특허와 별반 다른 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허의 성립 요건인 신규성과 진보성을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소송을 담당한 유 변리사는 특허무효심판소송 역시 승소로 이끌어 냈다. 그는 “중국 업체들이 기존 특허 예시로 제시한 일본 업체의 원천 기술과 A사 원천 기술의 특성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파헤쳐 제기했다”며 “문헌상 기술의 성질은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 공정상 비용과 시간을 줄여 우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중국 특허심판원에 설득했다”고 했다. 결국 설득이 받아들여져 단 한 항도 권리 범위가 축소되지 않고 특허를 지켜냈다.

성숙한 중국, 이젠 법으로 다뤄야

잇따른 지식재산권 침해 사례에도 중국은 한국이 놓지 못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진출을 포기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중국에 진출하지 않고 동남아나 미국, 유럽에 진출해 교역을 할 때에도 최대 경쟁 상대는 중국 업체다. 지리상 가장 가깝지만 우리 기술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 업체들에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방책 마련이 시급하다.

유 변리사는 초기에 특허‧상표 출원을 해놓기를 권했다. 그는 “중국 업체가 우리 기술을 모방하려 할 때 제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어는 특허권과 상표권 출원”이라며 “출원된 특허권과 상표권은 상품의 판매는 물론 생산도 금지할 수 있는 막강한 권리이자 현지 업체를 견제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장애물은 중국에 대한 불신이다. 중국 진출을 꿈꾸고 있는 한국 중견‧중소기업들에 ‘중국은 법과 제도가 통용되지 않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게 사실이다. 유 변리사는 “중국이 무법천지에 뇌물로 해결되는 곳이라는 의식은 선입관”이라며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국제무대에 나왔고 미중무역분쟁을 겪으며 지식재산권 보호를 굉장히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표권 침해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마련됐다. 2017년에는 상표법에 근거해 ‘진실한 사용 의사 없이 타인의 상표를 대량으로 선점한 상표는 등록하지 않는다’는 심리기준을 마련해 상표브로커 행위에 대한 규제에 쐐기를 박았다. 타인의 상표를 대량 선점한 브로커들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손쉬워진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상표법 개정을 통해 상표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이 강화되면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그 결과 중국 내 특허소송의 원고 승소율이 60% 이상까지 올랐다. 중국 업체를 상대하는 외국 업체의 승소율도 70%를 넘어섰다. 외국 업체에 대한 승소율은 미국이 50~60%, 한국이 30%에 불과한 점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유 변리사는 “중국은 특허 분쟁에서 ‘원고인 권리 지향적 판결’을 내리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며 “중국에 대한 우리의 불신과 오해가 벗겨져야 법리적으로 지식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조언했다.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만난 유성원 변리사. [사진=안경선PD]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만난 유성원 변리사. [사진=안경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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