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온라인 개학, 더 나은 미래 향한 ‘대환장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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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온라인 개학, 더 나은 미래 향한 ‘대환장파티’
  • 여용준 기자
  • 승인 2020.04.02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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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1965년 만화가 이정문 화백이 상상한 21세기 미래 풍경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보면 꽤 놀라울 정도로 들어맞는 몇 가지 것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나 움직이는 길, 들고 다닐 수 있는 소형 TV, 청소 로봇 등이다. 

여기에는 실현된 듯 실현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EBS 수능특강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습의 한 형태가 됐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 역시 일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공부하는 것’은 낯설 때가 있다. 진짜 공부는 학생과 교사가 마주보고 앉아서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은 아직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대학의 온라인 개강은 진정한 ‘집에서 공부하는 것’의 실험이었다. ‘강의실’이라는 공간 대신 온라인 서버에 모여서 학생과 교수가 마주보고 질문과 대답을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부득이하게 마련된 공간이지만 대학은 새로운 영역의 가능성을 점검하게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져보면 온라인 개강 이후 여러 에피소드들을 볼 수 있다. 교수가 출석체크 하는데 마이크가 켜지지 않아 스케치북에 “네”라고 적어 카메라에 보여준 학생, 반대로 카메라가 꺼진 상태에서 밥을 먹으며 강의를 듣는데 마이크가 꺼지지 않아 교수와 모든 학생들이 숟가락으로 밥그릇 긁는 소리까지 다 듣게 한 학생, 아예 과제로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를 요구한 교수. 

‘대환장파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사이버 강의실에서는 온갖 일들이 일어난다. 교수와 학생 모두 낯선 상황에서 당황하다 일어난 에피소드들이다. 이 ‘대환장파티’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퍼지면서 코로나19로 각박한 세상에 소소한 웃음꺼리를 준다. 

온라인 개강은 어쩌면 전초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보다 더 막강한 ‘온라인 개학’이 기다리고 있다. 

교육부는 그동안 미뤘던 개학을 9일부터 단계적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고학년부터 온라인으로 수업을 시작한 뒤 저학년으로 내려간다는 방침이다. 

이미 아저씨가 된 기자는 온라인 개학에 걱정부터 앞선다. 만약 학생이 공부를 좋아하고 집중력이 뛰어나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 비춰봤을 때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학교까지 꾸역꾸역 갈 수 있었기에 책상에 앉아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이 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개학을 맞이한다면, 바로 옆에 좋아하는 만화책이 미소 짓고 고개만 돌려도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가 ‘이리 오라고’ 손짓할 것이다. 카메라 바로 앞에 선생님이 있지만 딴 짓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청소년기의 ‘딴 짓’은 더 과감해질 수 있다. 

결국 아이들이 공부하도록 책상 앞에 앉히는 것은 학부형의 몫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는 “선생님, 이 녀석을 잘 부탁합니다”라며 맡겨두고 잠시나마 학부형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당분간 부모는 육아에서 벗어나는 휴식시간을 내놓게 됐다. 

만에 하나 재택근무 중인 부모라면 더 심각한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옆에서 부모는 온라인으로 일을 하고 있고 옆에서 아이는 온라인으로 공부하고 있다. 본인의 일을 하면서 옆에 아이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가 만든 기이한 가정풍경은 섣불리 상상하기 어렵다. 어쩌면 온라인 개강 이후 일어난 ‘대환장파티’는 애교 수준일 정도의 ‘울트라초대환장파티’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이정문 화백이 상상한 미래는 소위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곳이다. 과학이 만든 편리를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누리며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산다. 그러나 행복하고 안락한 삶에는 대가가 따른다. 

몇 년 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글을 창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한 것처럼 편리를 누리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드라마처럼 거창하고 비범한 희생이 아니어도 익숙한 삶을 내려놓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혼란을 감수하는 것 역시 희생이다. 

코로나19의 광풍이 걷히면 마스크를 벗고 환한 미소로 서로를 맞이할 수 있길 기원한다. 그때가 되면 혼란스럽고 불편한 현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돼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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