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하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국영화 기초체력인 영화관이 대거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티켓 수입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계가 관객수 급감으로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에 영화계는 여행‧관광숙박‧관광운송‧공연 등 4개 업종 문화산업처럼 정부 차원 지원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6일 CGV가 임원 등 임금삭감과 대대적인 상영관 영업 중단을 예고한 ‘CGV 쇼크’에 코로나19 직격타를 맞은 영화계 심각성이 드러났다.

국내 영화인들이 일제히 영화산업붕괴 위기를 언급하며 정부 지원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지난달 9일(현지시간) 미국 LA현지에서 거둔 ‘기생충’ 오스카 4관왕 쾌거가 빛바랠 위기에 처했다.

◇ 불안이 집어삼킨 객석

1월 3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성북구 CGV성신여대입구점에 영업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1월 3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성북구 CGV성신여대입구점에 영업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1위 극장사 CJ CGV가 경영난으로 26일 전국 직영점 30%를 28일부터 ‘문 닫겠다’고 밝혔다. CGV는 확진자 방문에 휴업과 소독을 반복하, 일부지점 잠정 휴업을 선언했으나, 최근 상영관 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까지 진행하며 관객 유치에 힘을 쏟은 터라 충격이 더했다.

영화관이 코로나19 의심지역으로 눈총받기 시작한 것은 국내 발생 초기다.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1월 20일 불과 닷새뒤, CGV 성신여대입구점에 방문한 32세 남성이 5번째 확진자로 밝혀졌다. 성신여대입구점은 방역 후 3일간 영업 중단을 거친 후 오픈했지만 ‘폐쇄된 공간인 영화관은 위험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실제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영화관 관객수는 △1윌 1684만3696명 △2월 737만2112명 △3월 1일~27일 165만6671명 등으로 2달새 90%가량 줄어들었다.

‘극한직업’, ‘캡틴마블’, ‘돈’ 등 인기작이 대거 등장한 2019년 △1월 1812만2443명△ 2월 2227만7733명 △3월 1467만1693명과 올해 관객수 또한 차이가 현격하다. 지난해와 올해 3월을 비교하면 관객수가 88% 줄어든 수준이다.

CGV뿐만 아니라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도 일부 지점 영업을 중단하고 임원 급여 삭감, 상영 회차 줄이기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블록버스터 개봉이 불투명한데다 국내 영화도 투자‧제작사 등이 손익분기를 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신작 기근 현상이 지속되며 관객수는 더더욱 쪼그라들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은 65%가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직영점이며, 35%는 3사 위탁점으로 운영된다.

◇ 5000억원 가져가고도 꼼짝 안 한 영진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월 26일 서울 동작구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찾아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문체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월 26일 서울 동작구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찾아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문체부]

16일 고용노동부는 ‘여행‧관광숙박‧관광운송‧공연 등 4개 업종에 대한 특별고용지원 업종 지정 고시’를 제정한 바 있다. 4개 업종 모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소속 업종이지만, 문체부 한축인 영화계 지원은 빠져있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될 경우 고용유지지원금, 무급휴직 근로자 지원금, 직업훈련, 고용‧산재보험 납부 유예와 더불어 대출 혜택 등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받지 못한 영화계는 영진위에 날을 세웠다.

영진위는 1973년 한국영화 진흥과 영화산업 육성 및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로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영진위가 영화산업 전반 문제를 돌아봐야 하지만, 타 문화산업이 보호받을 때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이유다.

특히 영진위는 티켓값에서 3%(VAT 포함)를 영화발전기금 명목으로 2007년 7월부터 떼가기 시작했다. 이는 업계에 따르면 5000억원에 상당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기금이 조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계는 이렇다 할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

문체부는 지난달 영화계 지원으로 소규모 극장에 손소독제 5000개를 보급하고, 영화발전기금을 연말까지 체납금 없이 분할‧지연 납부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일부 극장사 관계자는 “1회 상영에 관객에 5명도 안 오는데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더해 현재 영화 스태프나 제작‧배급‧마케팅 등 여러 영화 산업 관련 정부 대책은 전무하다.

비난이 쏟아지자 영진위는 24일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코로나19 전담대응 TF’를 만들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영화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지원 업무를 전담하겠다며 대응 창구를 만들었다.

◇ 한국영화 톱니바퀴를 굴리는 극장

영화 티켓 1장을 1만원으로 책정했을 때 영화계가 가져가게 되는 몫. [사진=이하영 기자]
영화 티켓 1장을 1만원으로 책정했을 때 영화계가 가져가게 되는 몫. [사진=이하영 기자]

25일 영화단체연대회의를 비롯한 영화인 단체와 극장사업자를 포함한 ‘코로나대책영화인연대회의’가 코로나19 이후 한국영화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주요 내용은 △영화산업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선정 △정부의 금융지원 정책 마련 △정부 지원 예산 편성 및 영화발전기금 지원 비용 긴급 투입 등이다.

이번 성명 발표는 그간 스크린 독과점과 멀티플렉스 극장 제작 참여 등으로 반목해왔던 영화계가 한 목소리를 내 더욱 주목받았다.

영화계가 하나로 똘똘 뭉친 이유는 ‘극장이 무너지면 영화산업이 붕괴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코로나대책영화인연대회의는 성명서를 통해 “영화 관람객은 하루 2만명 내외로 작년에 비해 85% 감소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한국 영화산업 전체 매출 중 영화관 매출이 약 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영화관의 매출 감소는 곧 영화산업 전체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는 영화 수입이 티켓을 기준으로 나눠 갖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티켓값을 1만원으로 봤을 때 부가가치세 10%와 영화발전기금(영진위) 3%를 가져가고 8700원이 영화계에 돌아가는 전체 수익이다.

8700원에서 극장사가 45% 배급사와 투자사, 제작사가 나눠 55% 가져가는 구조다. 국내 극장이 무너지는 것과 영화 산업이 직결되는 이유는 영화계가 톱니바퀴처럼 연결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영화인은 “불과 지난달 봉준호 감독 ‘기생충’ 오스카 4관왕을 축하하며 관계자들이 청와대에 초청됐다”며 “이래서는 제2의 봉준호도 ‘기생충’도 나올 수 없다”며 허탈한 심경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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