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 [사진=위키피디아]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과학은 어디로 향하는가. 많은 과학자들이 고민했으며 이미 답도 나와 있는 질문이다. 과학의 지향점에는 인간이 위치해있다. 모든 과학기술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의 장기적인 번영을 위해 과학은 자신의 목표로 향한다. 과학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과학은 인간을 연구한다. 생리학과 물리학, 화학 등 여러 학문에서 인간을 연구한다. 그럼에도 인간에 대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한 가득이다. 

20세기 최고의 SF소설가 중 한 사람인 필립 K. 딕은 과학으로 풀지 못했던 인간의 신비에 대해 소설로 풀어냈다. 그가 소설을 통해 그려낸 것은 인간의 기억과 의식, 시간이다. 이것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영역이다. 다시 말해 필립 K. 딕의 소설은 인문학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필립 K. 딕은 어린 시절 아이삭 아시모프와 존 캠벨, 하인리히 등 SF 거장들의 작품을 읽으며 성장했다. 이후 TV 수리공과 음반 판매상으로 일하며 소설을 쓴 그는 수많은 단편과 강연을 남기고 1982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필립 K. 딕의 소설은 여러 영화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이들 영화 중 상당수는 SF영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게 됐다. 그 중 대표작은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폴 버호벤의 ‘토탈리콜’,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이다. 

'블레이드 러너'. [사진=해리슨앤컴퍼니]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는 1982년 ‘블레이드 러너’로 영화화 됐다.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경계가 모호하게 그려지면서 인간성의 정의에 대해 묻는다. 

이는 감정의 경계가 인간에게만 머무르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필립 K. 딕의 원작이 ‘복제’에 키워드를 맞추며 복제동물과 실체에 대해 묻는 것에서 좀 더 발전한 화두다. 

실제로 필립 K. 딕은 리들리 스콧의 촬영분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SF영화의 클래식으로 인정받는 이유 중에서는 필름느와르 풍으로 구현한 미래도시가 당시로써는 뛰어난 영상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현대 영화들이 CG를 통해 미래도시를 구현한다면 ‘블레이드 러너’는 철저하게 미니어쳐를 이용하면서 영화의 감성을 살려낸다. 

이 영화는 30년 후 드니 빌뇌브에 의해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만들어졌다. 속편은 전편의 화두와 연장선상에 머무르면서 안드로이드가 아닌 인공지능(AI)과 인간의 경계에 대해 묻는다. 

'토탈 리콜'.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블레이드 러너’ 못지않게 폴 버호벤의 ‘토탈리콜’ 역시 중요한 SF영화다.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샤론 스톤이 출연한 이 영화는 가상체험 서비스를 이용한 한 남자가 가상현실과 실체 사이에서 혼돈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90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필립 K. 딕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기억을 사고 팔 수 있는 미래에서 기억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경험과 정체성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이며 이것이 뒤엉킴에 따라 자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묻는다. 

우리가 소위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된다. 육체가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영혼은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된다. 정체성은 환경과 그에 따른 기억에 의해 형성된다. 즉 기억이 조작됨에 따라 인간은 얼마든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토탈 리콜’은 그런 물음에서 시작한다. 

영화 ‘토탈 리콜’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구조를 띄고 있다. 주인공 퀘이드(아놀드 슈왈츠네거)가 가상현실 체험을 겪은 후 일어나는 일이 진짜인지 가상체험인지 계속 의심을 갖게 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관객들이 헷갈리며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재미를 준다. 

‘토탈리콜’은 2012년 콜린 파렐 주연으로 새롭게 리메이크됐다. 이 작품은 이전 영화에 비해 비교적 명쾌해진 반면 화려한 액션으로 볼꺼리를 제공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필립 K. 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미래를 예측해 범죄를 막는 최첨단 범죄예방 시스템인 프리크라임과 이를 둘러싼 음모에 대한 이야기로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지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윤리에 대해 묻고 있다. 

여기에 인간의 의지와 행동,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와 당위성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의지는 행동을 하려는 동력이지만 이들이 온전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의지만으로 물을 수 있는지 질문한다. 이는 ‘의식’의 실체에 대해 묻는 것으로 시간(예언)을 통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들 작품 외에도 ‘스크리머스’, ‘임포스터’, ‘페이첵’, ‘스캐너 다클리’, ‘넥스트’, ‘컨트롤러’ 등 영화가 필립 K. 딕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밖에 2015년 미국에서 방송된 드라마 ‘더 맨 인 더 하이 캐슬’ 역시 필립 K. 딕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 작품은 무려 2차 세계대전에 독일과 일본이 승리해 미국을 점령하는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필립 K. 딕의 작품은 인간의 의식이 불완전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것은 외부의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되고 뒤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체성이 뒤바뀌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인간성은 나약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의지는 과학을 이겨내고 삶을 영위한다. 결국 기술은 인간을 향하고 인간성은 보전 받는다. 필립 K. 딕의 소설은 과학과 인문학으로 인간을 탐구해 인간성의 진정한 근원을 찾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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