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사진=한국관광공사]
서대문 형무소. [사진=한국관광공사]

지난해 1만명이 참석했던 3.1절 국가 기념식이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로 인해 참석인원을 최소화한 60명 규모로 개최된다. 이에따라 코로나19 범정부 대책을 총괄하고 있는 국무총리와 핵심 부처인 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장관은 불참한다.

아울러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인 만큼 해마다 3.1절을 전후로 그 의의를 돌아보는 현장교육이 됐던 3.1운동 테마투어도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그 의의와 역사를 되새겨 보는 것은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별도로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아도 우리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종각역과 종로3가, 광화문 등 일대는 3.1 운동 시발점이 된 탑골공원을 비롯해 보신각, 덕수궁 대한문, 태화관 터, 보성사 터 등 유적지가 즐비하다.

3.1운동 101주년을 맞아 일부러 찾지 않아도 우리 가까이 있는 역사 현장을 되짚어보기로 한다.

삼일독립선언유적지. [사진=서울관광재단]
삼일독립선언유적지. [사진=서울관광재단]

◇서울 탑골공원·삼일문·보신각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종로 탑골공원에서 ‘대한독립만세’ 함성이 울려퍼졌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식민지로 전락하자 우리 선조들은 대한제국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했다. 

이날 학생대표가 탑골공원 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운집한 군중은 태극기를 꺼내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삼창을 외친 시위대는 공원을 빠져나와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도심 전체로 확대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또 종로 보신각 앞에 집결한 군중도 보신각 타종을 시작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보신각 앞 정원 일각에는 ‘3.1 독립운동 기념터 비’가 세워져 있다.

3.1운동 역사를 상기시키는 삼일문을 통해 공원으로 들어서면 3.1운동 기념탑을 비롯해 이모저모를 기록한 부조와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만해 한용운의 시비 등을 만나게 된다.

탑골골원. [사진=서울관광재단.]
탑골골원. [사진=서울관광재단.]

◇태화관·보성사터

서울 종로구 계동 옛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독립선언서가 모의되기 시작했다. 3.1 운동이 발발한 당일 보성사에서 조선독립신문 창간호가 발간됐다. 옛 보성사 터는 현재 조계사 경내의 극락전 앞마당으로 추정된다. 보성사는 당시 보성중학교 인쇄소로 1919년 2월27일 독립선언서 2만1000매를 인쇄했던 곳이다.

인사동 태화관에서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민족대표 중 29인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지금 이곳에는 태화빌딩이 있다. 이 건물 앞에 ‘태화관 터’라고 적힌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태화관은 3.1운동 당시 인사동의 유명 요리집 명월관의 분점이었다. 민족대표 33인 중 29인은 한용운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이곳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덕수궁 대한문·옛 미국영사관

1919년 3월 3일은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 인산일로 예정돼 있었다. 3.1운동 당일 덕수궁 대한문 앞은 고종 승하를 애도하며 자주독립을 외치는 인파로 들끓었다. 고종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 자리에 오르는 등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세계 만방에 알리려 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만세 시위대는 종로를 거쳐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까지 전진했다. 고종 인산일에 맞춰 덕수궁 앞으로 모여든 수많은 이들이 시위에 가담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고종황제 빈전 근처까지 들어가 조문을 하거나 덕수궁 인근에 자리한 미국총영사관으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1918년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내세웠던 민족자결주의에 관한 연설이 독립선언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옛 서울역. [사진=서울관광재단]
옛 서울역. [사진=서울관광재단]

◇옛 서울역·서대문형무소역사관

3.1운동이 시작된 이후부터 만세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서울역광장에서는 3월 5일 대대적인 독립만세 시위가 펼쳐졌다. 조선 자주독립을 간절히 열망하며 운집한 군중을 뚫고 인력거를 탄 학생대표가 ‘조선독립’이라 쓴 깃발을 휘두르자 군중이 일제히 이 대열에 합세했다.

서울역은 3.1운동 당시 남대문역이라 불렸다. 1900년 7월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생긴 철도 역사로 염천교 부근에 자리하고 있었다.한 때 ‘경성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 서울역으로 개칭됐다. 옛 서울역사는 현재 ‘문화역 서울 284’라는 이름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1945년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가 수난을 당했던 곳이다. 유관순 열사, 강우규 의사 등을 들 수 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친 인사들이 옥고를 치렀던 현장이기도 하다. 한동안 서울 교도소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던 이곳은 1998년 11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역사관에는 옥사 7개 동과 사형장, 전시관(보안과 청사)가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이상 서울 소재 3.1운동 관련 역사 현장 정보는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비짓서울’ 웹사이트에서 테마투어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참조할 수 있다.

유관순 열사. [사진=한국관광공사]
유관순 열사. [사진=한국관광공사]

◇천안 독립기념관·유관순 열사 유적·아우네 장터

천안에는 독립기념관이 있다. 높이 51m에 이르는 ‘겨레의탑’, 동양 최대 기와집인 ‘겨레의집’ 등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우리 역사와 일제의 침략, 독립운동을 시기별로 전시한 7개 전시관은 다양한 문헌 자료와 체험 시설로 방문객을 맞는다. 병천은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된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을 더듬어보는 공간이다.

1902년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돼 옥사했다. 당시 전소된 가옥과 헛간을 복원한 유관순 열사 생가가 있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유관순 열사 유적에는 그 영정이 모셔진 추모각과 동상, 기념관 등이 열사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군산 한강이남 첫 3.1운동 발상지 기념 동상. [사진=한국관광공사]
군산 한강이남 첫 3.1운동 발상지 기념 동상. [사진=한국관광공사]

◇군산 3.1운동 기념탑·구암동산

군산은 한강 이남 최초 3.1운동 발상지로써 역사적 의미가 깊은 지역이다. 또한 근대 역사 건물이 다수 남아 있기도 하다. 3.1운동기념탑,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구암동산(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등이 주요 역사 현장이다.

경남 밀양 의열기념관. [사진=한국관광공사]
경남 밀양 의열기념관. [사진=한국관광공사]

◇경남 밀양 김원봉과 의열기념관

경남 밀양은 정선, 진도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아리랑 고장이다. 밀양향교에서 추화산성을 지나 충혼탑과 밀양대공원으로 이어지는 밀양아리랑길은 3.1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영화 ‘암살’을 통해 재조명된 의열단장 김원봉 생가터가 있다. 이곳에는 의열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김원봉과 윤세주 등 밀양 청년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의열단 활동,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으로 이어지는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의열기념관 앞을 흐르는 해천 일대 산책로에는 밀양 만세 운동과 다양한 독립운동 모습을 벽화로 생생하게 표현했다.의열기념관과 500m 거리에 있는 밀양 관아지는 1919년 3월 13일 밀양 만세 운동이 벌어진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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