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로나19 정국’ 속 기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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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코로나19 정국’ 속 기자의 역할
  • 여용준 기자
  • 승인 2020.02.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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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얼마 전 후배 기자와 이야기하다 문득 ‘대재난 속 언론의 역할’을 생각하게 됐다. 혈기왕성하던 수습기자 시절을 지나 이제는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생활인에 가깝게 변했다. 그러다 후배 기자와의 대화로 오랜만에 이 직업에 대한 열의가 생겨났다.

최근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정국은 나 역시 겪어본 적 없는 대재앙이다. 10여년의 기자생활 동안 크고 작은 현장을 둘러보며 취재하고 기사를 썼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기자가 하는 일 중에는 간단하게 말해 ‘잘못을 따지는 일’이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데 대한 책임을 묻고 잘못된 부분을 감시하고 알려서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런데 문득 “지금 상황에서 감시하고 알리는 일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것은 기자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아닌, “내 펜이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에서 건네는 질문이다. 

기자가 감시해야 하는 대상은 정부와 거대기업, 소위 말해 ‘권력’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하는 잘못된 일들을 알리고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다. 

잘못된 일을 알리는 일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진실을 은폐했다든지,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가 존재하지만 대기업이 이윤 목적으로 이를 은폐하고 있다든지, 구체적이고 무서운 사실들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 중대한 일이 아니라면, 펜이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펜이 사람을 구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해 많이 등장하는 기사들, ‘정부가 초기대응을 잘못했다’, ‘진작 중국인 입국을 막았어야 했다’ 등 지나간 것에 대한 비난이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나는 기자가 가진 펜의 자유를 내려놓자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기자의 펜은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수습기자 시절 선배가 들려줬던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기억한다. 자신이 쓴 기사 하나 때문에 작은 회사가 망했고 사장이 투신자살했다는 ‘다른 선배 기자의 경험담’. 

기자 하나의 영향력과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문장 한 줄 쓰는 것에도 손이 떨린다. 하나의 기사는 기자의 의도와 다른 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때로 정쟁의 도구로 쓰이기도 않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고치는 역할도 한다. 

적어도 내가 쓴 기사가 사람을 구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좌절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역할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기사가 파렴치한 인간들의 도구로 쓰이는 일도 없기를 바란다. 

‘국가가 멈췄다’는 헤드라인을 뽑아야 할 정도로 두려운 세상에서 기자의 원론적인 역할을 고민한다. 펜은 때로 백신보다 강력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쥐고 있는 펜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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