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펙셀]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즉각 대답을 하는 대신 다소 음흉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것은 “은행 금고에 몰래 들어가 돈을 훔치겠다”던지 “나와 성별이 다른 사람의 탈의실에 들어가 마음껏 구경하겠다”는. 다소 은밀한 욕망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투명인간’은 그 아이디어 자체부터 은밀한 욕망의 상징과 같았다. ‘투명인간’이 창작물에 처음 등장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부터다. ‘템페스트’속 아리엘은 인간을 투명화하는 마법을 쓸 수 있으며 ‘파우스트’에서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자신과 파우스트 박사를 투명하게 만든 뒤 바티칸을 쏘다닌다. 

플라톤의 ‘공화국’에도 착용자를 투명화하는 마법 반지가 등장해 이를 착용한 목동인 기게스가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이처럼 ‘투명인간’은 책임으로부터 해방돼 이성으로 억제한 욕망을 발현할 수 있는 장치를 한다. 존재가 감춰지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저질러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26일 개봉을 앞둔 영화 ‘인비저블 맨’에도 투명인간이 등장한다. 재벌 소시오패스 남자친구가 자살한 뒤 그가 투명인간이 된 것을 느끼는 여자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야기다. 영화를 만든 리 워넬의 전작 ‘업그레이드’를 염두했을 때 이 이야기는 범상치 않는 반전이나 기가 막힌 과학적 근거가 있어 보이지만 우선은 ‘투명인간의 위협’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다. 

‘투명인간’은 소재 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는 만큼 창작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조지 오웰은 소설 ‘투명인간’을 통해 투명인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폴 버호벤의 영화 ‘할로우 맨’은 투명인간이 된 박사 케인(케빈 베이컨)의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존 카펜터의 영화 ‘투명인간의 사랑’은 사고로 투명인간이 된 남자가 자신을 원상복구 하기 위해 소동을 벌인다. 

이밖에 ‘데드풀2’에도 투명인간 능력자 배니셔가 등장하고 ‘원피스’, ‘인크레더블’, ‘드래곤볼’ 등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한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인터넷 소설 좀 봤다는 사람은 다 본 소설의 제목은 ‘투명드래곤’이다. 그리고 한국의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에는 많은 ‘클로킹’(투명화) 유닛들이 있다. 

영화 '인비저블 맨'. [사진=유니버설코리아]

그렇다면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투명해지는 투명인간을 만드는 일은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과학에서 세포를 투명하게 하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투명인간이 인류에게 필요한지도 불분명한데다 ‘할로우 맨’처럼 세포를 투명하게 하는 것은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세포가 모두 투명해지는 것은 망막과 시신경도 투명해진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빛이 망막에 닿지 못하고 바로 통과해버리기 때문에(통과해야 투명해지기 때문에)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남들도 자신을 못 보고 자신도 남들을 못 보는 비효율적인 상태가 돼버린다. 그런데 이것을 걱정하기 전에 애시당초 ‘세포를 투명하게 하는 방법’부터 완성해야 한다.

투명인간에 대해 조금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투명망토’를 입는 것이다.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에 등장한 이 마법 아이템은 머글들은 구경도 못할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구현하는데 한발짝 다가섰다. 

올해 초 박남규 서울대 교수, 조춘래 연구원 연구팀이 젠슨 리 홍콩과기대학(HKUST) 교수, 신화 웬 연구원과 공동으로 음향 파동 물성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는 ‘가상화 음향 메타물질’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로 ‘레이더’나 ‘소나’로부터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기술’ 이나 ‘방음 및 흡음 설계 기술’ 등의 개발이 가능하게 됐다. 

이보다 앞서 2018년 4월에는 남기태 서울대 교수팀과 노준석·김욱성 포항공대 교수팀, 장기석 LG디스플레이 연구소 연구원으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이 빛을 조절하는 금 나노입자를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머지 않아 어떤 군대는 ‘보이지 않는 적군’과 싸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투명한 옷’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입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는 옷이다. 

투명인간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투명인간이 되는 것은 의외로 쉽다. 인터넷상에서는 많은 투명인간들이 보이지 않는 익명성에 기대 자신의 은밀하고 못된 욕망을 발현시킨다. 집단에서 무리에 어울리지 못한, 소위 ‘아웃사이더’들은 오늘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질병관리본부는 행적을 감추고 투명인간이 된 코로나19 확진자를 쫓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투명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투명인간이 됐거나 투명인간을 만든 쪽 모두 욕망에 충실한, 부도덕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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