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 사이언스] 인류는 지구에서 살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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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마 사이언스] 인류는 지구에서 살 자격이 있을까?
‘혹성탈출’ ‘나는 전설이다’, 종말 이후 치유하는 자연
  • 여용준 기자
  • 승인 2020.02.0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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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채널 다큐멘터리 '인류멸망 그 후' 중 한 장면. [사진=히스토리 채널 캡쳐]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본 연재코너에서는 11월 한 달 동안 ‘인류는 어떻게 멸종하게 될까?’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당시 키워드는 △이성의 상실 △태양 △임신·출산 기능의 상실 △스마트폰 △벌레였다. 

이 특집 당시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았다. ‘인류멸종’과 관련해 너무 흔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인류멸종’ 특집을 마련했을 때는 “이렇게도 인류가 망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류가 멸종하는 이야기는 그만 하려고 했다. 지나치게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이야기라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나 읽는 독자 여러분께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도저히 그 이야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언론 매체들이 보도한 상황과 엄청난 전염 속도를 봐도 인류멸망을 예견한 공포영화와 맞먹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거센 만큼 많은 루머도 돌고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루머 중에서는 “바이러스로 우한 일대 공장이 멈추면서 한국에 미세먼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은 설날 당일이었던 25일 밤부터 한반도 남쪽에 따뜻하고 수증기를 많이 포함한 저기압이 접근해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강풍의 방향이 남풍·동남풍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 중국 방향으로 공기가 흘러간 것이다. 이는 통상 겨울철에 한반도에서 부는 바람과 정반대 방향이다. 이 사실이 루머인 것을 입증하듯 31일 오후부터 다시 초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나마 “인류가 산업활동을 멈추자 자연이 정화되기 시작했구나”라고 믿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한 많은 SF영화들에서는 인류가 멸종 직전에 이르자 나무가 자라고 동물들이 도시를 뛰어노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혹성탈출’ 프리퀄 3부작이나 ‘나는 전설이다’, 드라마 ‘워킹데드’도 그와 같은 예시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채널인 ‘히스토리’는 2009년 ‘인류 멸망 그 후’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스타워즈’의 창시자인 조지 루카스가 만든 루카스필름의 시각효과 담당 기업인 ILM이 CG를 담당해 인류가 완전히 멸망한 이후 자연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인간의 관리를 받지 못한 건축물들이 붕괴되거나 동물들의 터전으로 바뀌게 된다. 야생에 적합하지 않은 애완동물들은 도태돼 죽음을 맞이하고 동물원의 동물들은 우리를 탈출해 도심을 야생삼아 삶을 이어갈 것이다. 인류가 남긴 전파는 정보가 훼손돼 소음으로 변해서 영원히 우주를 맴돌 것이다. 책과 USB, 디스크 등 물질 형태로 남은 정보는 모두 썩어서 없어지게 된다. 

‘인류 멸망 그 후’가 보여주는 것은 인류가 사라진 후 산업·정보화 된 문명이 사라지고 지구가 자연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다. 말 그대로 ‘인간이 사라지니 지구와 동물들이 제 모습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인간인 입장에서 ‘인류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조금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에게 실망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는 사라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보통 이런 생각은 히어로영화나 ‘007’ 시리즈의 빌런들이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 역시 빠르게 이 생각을 멈췄다. 나는 빌런이 아니고 빌런이 될 능력도 없다). 

국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7,8,9,10,1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31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신종코로나 감염 의심자가 구급차에서 내려 음압 병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된 원인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우한에 위치한 식료품 시장에서 무분별하게 거래되는 ‘식용’(?) 동물들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고 우한에 위치한 전염병연구소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 맞건 인간에 의해 창궐한 바이러스임은 분명하다. 점점 더 ‘인류가 멸종하는 것이 지구를 구하는 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다만 인류가 그 개체수만큼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류도 분명 지구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호주에 대규모 산불이 번졌을 때도 누군가는 동물들을 보호하고 자연을 구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오랜 유저로서 ‘오염된 피’ 사건을 잘 알고 있다. 북미 서버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게임 내 던전의 몹이 사용한 버프가 던전 밖에서도 사라지지 않으면서 서버 전체에 ‘오염된 피’라는 병이 퍼진 일이다. 이 버프는 캐릭터가 죽은 뒤 부활을 해도 사라지지 않아 서버 전체에 많은 유저들이 게임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게임 유저들은 감염된 캐릭터를 데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대도시에 가서 병을 퍼트리기도 했다. 누군가는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역할을 했고 누군가는 가짜 물약을 만들어 치료제라고 속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민폐를 끼치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다. 인류가 멸종하는 것이 반드시 지구를 구하는 길은 아니다. 이제야 나는 인류도 지구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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